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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13. 2019

이것이 정말 다큐멘터리란 말입니까

다큐멘터리 <테러> 리뷰


<테러>, 넷플릭스. 선댄스! 믿고 보는 선댄스! 근래 본 다큐멘터리 중에 최고로 재밌었다. 영어 원제는 (T)ERROR. TERROR(테러)에서 T를 괄호쳐 ERROR(오류)를 만든 거다. 이 탁월한 제목은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그 무엇보다 정확하게 함축한다. 너무 재밌고 긴장감 있게 만들어서, 중간부터는 혹시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검색까지 해봤을 정도.


이 다큐멘터리의 소재는 FBI의 대테러 민간 정보원이다. 9.11 테러 이후에 FBI는 테러 예방을 위해 잠재적 테러리스트 분자를 찾아내 사전에 체포하는 정책을 펼친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생각만으로 체포할 수는 없는 법(??? : 되는데요). 그래서 FBI는 민간 정보원을 고용하는데, 주로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가석방 조건으로 구슬러 정보원으로 만든다.


이 정보원들이 하는 일이란 이런 것이다. FBI가 SNS 탐문이나 도청 등의 방법으로 잠재적 위험 후보를 찾아낸다. 정보원에게 돈을 주고 시켜 그와 친구가 되도록 한다. 친구가 된 정보원은 그에게 은근하게 지하드를 지지하는 뉘앙스의 말들을 암시해서 그가 그 말에 호응하도록 유도한다. 그가 지하드에 대해 언급하거나 테러 음모, 총기 소지 등의 발언을 할 때 정보원은 그것을 녹음해 FBI에 제보한다. FBI가 그것을 근거 삼아 그를 체포한다. 다시 말해 함정수사다. 엔딩에 나오기를, 미국은 9.11 테러 이후에 500명을 테러 혐의로 체포했는데, 그 중 절반이 이런 방식으로 체포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이드 토레스라는 사람도 바로 이 정보원이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실력이 무척 좋아서 5~6명 정도를 체포시켰다고 한다. 한 도시에서 몇 명을 그렇게 작업하고, 뽀록날 즈음엔 다른 도시로 옮겨가 같은 작업을 한다. 그렇게 해서 FBI에게 받은 돈이 억대에 이른다. 보복당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는데다 그의 직업(?)이 신분을 숨겨야만 하는 것일 텐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제작진의 촬영에 동의한다. 그는 제작진의 질문들에 내내 냉소적으로 대답한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냉소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 때문에 내가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착각한 거다. 뭔 소리냐면, 보면 안다.


제작진이 촬영한 분량은 그가 뉴욕에서 '타리크 샤'라는 사람에게, 피츠버그에서 '칼리파'라는 사람에게 수작을 부리는 부분이다. 물론 그 둘은 SNS에서 탈레반을 지지하는 글을 쓰는 등 분명 잠재적 위험군이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인 무슨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이드(피츠버그에선 '샤리프'라는 가명을 쓴다)는 수완 좋게도 '타리크 샤'의 테러 지지 발언을 이끌어내고, FBI는 타리크 샤를 체포해 감옥에 가둔다. 이후 제작진은 놀랍게도 타리크 샤의 어머니를 동행취재한다. 어머니는 이것이 함정수사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타리크 샤는 무죄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이드는 '칼리파'에게 간파당한다. 칼리파는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샤리프'가 FBI의 끄나풀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그러면서도 의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쓴다(...) 물론 샤리프를 차단한 다음에 쓴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제작진은 또 놀랍게도 이 페이스북 글을 보고서는, 아직 자기들이 동행촬영하고 있는 사이드의 함정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불구하고, 칼리파를 찾아가 동행촬영한다. 물론 칼리파는 제작진이 샤리프를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샤리프는 제작진이 칼리파를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때부터 제작진의 두집살이가 시작되는데, 정말 극영화도 이렇게는 못 만들겠다 싶어지는 대목.


자, 자신이 수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니 칼리파는 이제 안전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뉴욕시 오산이다. 칼리파는 똑똑한 사람이다. 샤리프의 집에 찾아가 그의 우편함을 살펴보곤 그의 본명을 알아낸다. 그러고는 미국의 이슬람 인권단체의 협조 하에 폭로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그런데 기자회견 하루 전날, FBI가 그를 체포하러 온다. (이때 제작진은 그의 집 앞에 있었고 FBI가 체포하러 들어가는 광경을 다 찍는다. 진짜 미침.) 체포 근거는? 총기소지죄. 무슨 총기를 소지했냐고? 6개월 전에 실탄사격장에서 사격한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가 있더란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결국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거다. 졸라 억울한 상황이지만 형량 거래를 위해 변호사는 자백 전술을 제안하고, 별 힘도 없는 칼리파는 거짓으로 자백해 8년형을 산다. 이 모든 사건들에 대해 제작진은 FBI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하지만 FBI는 노코멘트.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T)ERROR다.


비록 기자회견은 그의 체포로 취소됐지만 사이드 토레스의 정체는 만천하에 폭로되고, 결국 그는 집을 팔고 다른 도시로 망명한다. FBI는 더 이상 그에게 일을 주지 않는다. 연락도 없다. 사이드가 "칼리파는 테러리스트 아닌 거 같아요" 해도 "테러리스트 맞으니까 열심히 작업해" 하고 시켰던 FBI다. 그런 FBI의 토사구팽을 사이드가 맹비난하면서 다큐멘터리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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