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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14. 2019

반성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 2 : 인터넷 속으로> 리뷰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일산CGV. 정말 영리한 이야기! 영어 원제("Ralph breaks the internet")가 조금 더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잘 담아내는 것 같다. 도입부는 좀 거칠고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인터넷 세상에 진입하자마자 펼쳐지는 이미지(첨부한 이미지)는 그 어설픔을 한 방에 잊게 만든다. 아래로 크게 중요치는 않은 스포일러들 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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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계를 표현하는 전반부의 묘사들이 정말 디즈니 상상력의 최대치를 보여준달까. 특히 검색엔진에서 자동완성 기능 농담은 최고였어. '슬로터레이스'를 통해 디즈니적 카체이싱 장면을 선보인 것도 무척 좋았다. 물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가 동의할 테지만, 최고는 바넬로피가 '오마이디즈니'에 진입한 뒤의 장면들일 것이다. 마블과 스타워즈와 픽사와 디즈니가 난무하는 그 세계란! 콘텐츠 제국의 승리선언처럼 느껴졌달까. 다스베이더 테마가 깔릴 때 정말 내적 감격.


후반부는 조금 괴랄했다. '주먹왕 랄프 바이러스'들이 마치 <월드 워 Z>의 좀비들마냥 우글우글 나타나고, 또 그것들이 한 데 모여 하나의 거대괴물 랄프를 만들어내고, 그 각각의 바이러스들이 꾸물꾸물대는 모습은... 우웩. 이게 정말 전체관람가에 합당한 표현인가 싶었음.


싸움의 마무리에 디즈니 공주들을 등장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최근 디즈니의 가장 뚜렷한 경향 중 하나인 페미니즘의 영향이다. 특히 여기서는 디즈니의 자기반성적 취지를 명확히 한다. 위험에 빠진 덩치 크고 힘 센 남성을 구조하기 위해 저마다의 능력을 사용해 협동하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패러디해 랄프를 눕히는 연출.



'20대 남성' 또는 '청소년 남성'들은 한국에서만 문제인 게 아닌지, 디즈니의 최근 표현들에는 '어린 남성'들에 대한 우려심을 꽤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새로이 등장한 '카일로 렌'이 그렇고, <주먹왕 랄프>에서는 집착적이고 자기파괴적이고 찌질한 랄프가 정확히 그렇다. 그런데 좀 더 각을 좁히면 카일로 렌이 일베충이라면 랄프는 오유충이랄까. 랄프는 호의에 기초해 행위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파국적이다. 스스로 호의임을 의심치 않기에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도 없다.


그들이 왜 저렇게 됐는가에 대한 디즈니의 진단은 조금 나이브했다. 진단이 드러나는 부분은 후반부 괴물 랄프와의 싸움에서 '위키피디아' 기둥이 박살난 뒤 최후의 위기가 도래하는 지점이다. 위키피디아(-는 사실 논쟁적인 지점이긴 하지만)가 상징하는 것은 '지식'이니, 여기서 디즈니는 반지성주의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맨 마지막의 싸움터가 핀터레스트인 건 왜인지 궁금. 한국에서 핀터레스트는 주류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랄프는 에필로그에서 다른 남성들과 책 읽기 모임을 가진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다고 뭐가 나아질진 잘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노골적인데, 노골적인 데 비해 그 진단이나 해법은 좀 나이브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며칠 전 박권일 씨가 한겨레에 기고한 글("대중을 낙후시킬 수 있는가")도 떠오르고.


레트로한 오락과 최신 인터넷이 마주친다는 점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과 유사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우려?)했는데, 그런 이야기가 되지는 않았다. 쉽게 예측할 법한 결말을 배신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디즈니답달까. 암튼, 재밌는 애니메이션이었다. 2018년 결산 시상식들의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대적할 만한 작품으로 꼽힌다는 평들이 납득이 됐다. 물론 그래도 역시 2018년의 애니메이션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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