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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Feb 23. 2019

레고무비, 이 우월함을 보라!

영화 <레고무비1>, <레고무비2>, <레고 배트맨 무비> 리뷰

#1

<레고 무비>, 네이버 시리즈. 왜 이제야 봤나 싶을 정도로 내 맘에 쏙 드는 영화. 기존 히어로 영화의 문법을 따라가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쏙 빼버리고, 기존 아동 취향 영화의 교훈적 문법을 거부하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교훈을 왕창 쏟아붓는, 색다른 리듬이 있는 영화. 다만 '미국적인 것'이나 여러가지 미국 대중문화의 코드들에 대한 이해가 조금 깔려 있어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다행히 나는 그게 있는 편에 속한다. 2편이 열흘 전에 개봉했다해서 찾아 본 건데 정작 2편 상영관은 벌써 바닥.



#2

<레고 배트맨 무비>, 네이버 시리즈. 내가 본 배트맨 출연 영화 중 단연 Top 3 안에 들 만한 수작. 레고무비 시리즈의 매력을 이제야 알게 되어 너무 미안한 마음이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단지 레고의 외양을 빌렸을 뿐 일반적인 영화인 것처럼 전개되다가, 중요한 순간에 레고의 형식적 특성을 발휘해서 스토리를 풀어내는 데 있다. <레고무비> 1편보다는 조금 덜한 편이지만, <레고 배트맨 무비>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 매력을 드러내서 감탄사를 자아냈다.



#3

<레고 무비 2>, 서울극장. 갓레고무비 갓갓시리즈 갓갓갓. 다행히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챙겨 볼 수 있었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챙겨 보길 정말 잘했어. 나는 이 시리즈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1. 
나는 아메리칸 조크가 너무 좋고, 이 시리즈는 찐한 아메리칸 조크로 가득차 있다. 거기에 메타적인 대사들과 제4의벽 허물기, 뮤지컬이라는 형식의 자조적 활용 등등. 데드풀 시리즈와 같은 개그코드를 공유하면서도 데드풀보다 훨씬 깔끔하고 유려하게 재밌다.

물론 그 탓에 이 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 잘 어필되지 못할 것이다. 아동 취향이라기엔 미국 문화를 충분히 이해해야 웃을 수 있고, 어른 취향이라기엔 세상에 그래픽 탁월한 영화가 너무 많다. 결국 이 영화는 소수 마니아(그것도 미국 대중문화를 충분히 이해한 레고 마니아) 취향의 영화일 수밖엔 없는데, 뭐 제작진도 그걸 알면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일 테니 감당해야겠지.

사실 이런 점에선 데드풀 시리즈도 마찬가지겠지만 '황석희 번역'이라는 오리지널리티가 기대 이상의 흥행을 이끌어낸 측면이 있다. 또 데드풀 시리즈가 기대고 있는 메타적 코드가 이미 다수 한국인들이 충분히 접한 '마블/DC'라는 점도, 그 형식에도 불구하고 흥행을 이끌어낸 한 요인이지 싶다. 그러니까 <레고 무비> 시리즈는 데드풀 시리즈보다는 <굿 플레이스>의 코드에 좀 더 가깝달까.

2.
이야기는 최근의 경향을 반영했다. 예컨대 <주먹왕 랄프 2>에서 나타난 것처럼, '남성성'을 해체하는 것이다. 과거 디즈니 류의 '공주 동화'가 여자아이들을 오염시켰다는 반성에서 주디, 엘사, 모아나 같은 새로운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있듯이, 과거 '남성적인 영웅 서사'가 남자아이들을 오염시켰다는 반성에서 등장하고 있는 여러 애니메이션들이 무척 반갑다. <레고 무비 2>는 그 대열에 합류한 영화다. 

약간 고민이 드는 지점은 여성 주인공인 '루시'의 머리색과 관련한 스토리. 알록달록한 머리색을 하고 아이돌 가수를 했던 루시는 과거를 잊기 위해 의식적으로 '어두운 것'에 집착하고 머리색도 어둡게 염색해버렸다. 그러다가 모종의 계기로 원래 머리색을 들켜 부끄러워하다가 그 머리색도 자기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살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이걸 어떻게 섬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아직은 조금 고민이다. 


3.
아무튼 황석희라는 오리지널리티는 이런 류의 영화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는데, 이 영화의 번역가는 이 영화가 '마니아'들에게 소구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 자신이 마니아적인 배경지식이 전혀 결여돼 있다. 이쯤하면 떠오르는 이름 있다. 박지훈. 물론 그의 이름이 크레딧에 오르는 일은 없기에 확실하진 않지만, 아니, 확실히 박지훈이다. 

그는 철저히 '미국을 모르는 대중'을 잠재관객으로 두고 번역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미국 문화를 이해해야만 웃을 수 있는 농담들을 싹 다 삭제해버리고 직설적인 대사만 남긴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는 그런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고무비 시리즈에선 아니다. 데드풀 시리즈에서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어벤져스급 영화의 감각으로 번역에 임했고 그 결과 실패한 번역이 됐다.

그는 멍청해서 오역을 한다기보다 확실히 대중의 눈높이를 낮게 잡고 번역하느라 오역처럼 보이는 쪽이다. 예컨대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노래가사의 번역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가사가 이렇다. "Unbelievable - Super Cool - Outrageous and Amazing / Phenomenal - Fantastic - So Incredible." 비슷비슷하지만 약간씩 뉘앙스가 다른 감탄사들의 연속인데, 이 번역가는 이걸 이렇게 번역해뒀다. "언빌리버블, 슈퍼쿨, 그레이트, 어메이징 / 엑셀런트, 판타스틱, 인크레더블." 음차 처리한 셈인데, 보면 알겠지만 Outrageous, Phenomenal 같은 '낯설 것이라 예상되는' 감탄사는 '그레이트', '엑셀런트' 같은 또 다른 영어 감탄사로 대체됐다. 

그런데 이런 판단이 맞냐는 것이다. 고민을 한 흔적은 있지만 틀린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다 음차를 하든가 아니면 어설프게라도 번역을 했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건 박지훈이 번역한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종종 고민의 흔적을 남기지만 그 고민의 시간이 별로 길지 않았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흔적도 같이 남긴다. 영어 듣는 귀가 매우 약한 나조차도 알아차릴 정도면 문제 많은 것 맞다. 아이고, 영화 리뷰보다 번역 리뷰가 더 길어져부려따. 여기서 20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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