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Feb 23. 2019

사적인 비탄을 넘어서는 다큐

다큐멘터리 <스트롱 아일랜드> 리뷰


<스트롱 아일랜드>, 넷플릭스.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들 중에 가장 개성적인 스타일과 가장 강력한 정서를 지녔다. 이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것은 1992년 4월의 한 살인 사건. 죽은 것은 흑인 남성이고, 죽인 것은 백인 남성이다. 말다툼을 벌이다 백인 남성이 흑인 남성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경찰은 백인 남성의 기소를 위해 대배심을 소집했다.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23인의 대배심단은 불기소를 결정했다. 오히려 죽은 흑인 남성이 피의자로 몰렸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포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감독의 이름은 얀시 포드. 그렇다. 감독은 죽은 윌리엄의 여동생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얀시 포드가 그의 오빠가 왜 그렇게 죽었어야 했는지를 알아내고 지연된 정의라도 실현하기 위해 그의 엄마와 언니, 당시 검사와 경찰 등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는 장면들로 구성되었다. 단지 살인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듣지는 않는다.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오빠가 이루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따위의 이야기들도 폭넓게 듣는다. 일종의 구술사 작업인 셈이다.

장면 중간중간 얀시 포드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던진다. 첫 장면부터 놀랐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이야기들이 불편할 사람들은 지금 일어나서 나가도 좋습니다." 얀시가 관객들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그외에도 자신의 감정을 마구 쏟아내곤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라고 묻는 장면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관객인 우리는 단지 영화 속 이야기를 관전하는 제3자가 아니라, 얀시 포드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네듣는 적극적인 청자의 위치에 서 있다.

넷플릭스의 영화 요약소개문이 정말 적절하기가 이를 데 없어 따로 인용한다. 이 이상 이 다큐멘터리를 잘 요약한 문장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감독 얀시 포드는 사적인 비탄을 넘어, 인종차별이라는 미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포착한다." 사적인 비탄을 넘어, 라는 표현이 폐부를 찌른다. 이 말 외에는 더 무엇을 덧붙인들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힘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기에 여기서 줄인다. 이번 주에 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만 볼 수 있다면 바로 <스트롱 아일랜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오직 우리의 이야기만 알 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