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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09. 2019

부통령과 비서실장

웨스트윙 시즌1 2화

다소 뜻뜨미지근한 시즌1 2화에서는 부통령 존 호인즈가 대통령의 뒤통수를 때리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지금은 대통령을 도와줘야 합니다." 부통령이 대충 이런 말을 어떤 자리에서 흘렸다는 거다. 도와줘야 된다는데, 왜? 문제는 "지금은"이다. 무언가 행정부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를 은근슬쩍 내포하는 말이다. '행정부 내분설'을 지핀 다음, 부통령인 자신이 도와줘야 한다는 말로 정부 지지자들의 지지를 자신에게 끌어모은다. 이러자 바틀렛 정부의 관료들은 빡이 돌 수밖에. 


비서실장 리오가 부통령을 부른다. 부른다? 불렀다. 부통령을, 비서실장이 불렀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의전서열'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어떤 고위직들이 와글와글할 때 누구의 이름부터 부르는 것이 맞느냐는 거다. 1위는 당연히 대통령, 2위는 부통령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두 번째 권력자라는 얘긴데, 이런 부통령을 감히 일개 비서실장이 부른다는 것이 부통령 없는 나라의 시청자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리오는 작중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민주당의 보스 정치인이라는 점도 간과할 순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부통령은 정말로 이런 위치인 경우가 많다. 엄밀히 말해 부통령의 존재이유란 '대통령직의 안정적인 승계'밖에 없다. (아, 선거 때는 그래도 꽤 힘이 있다. 대통령이 얻을 수 없는 표밭을 대표하는 인물이 종종 부통령 러닝메이트가 되니까.) 물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이유다. 대통령제의 최대 문제를 보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변이 생기거나 혹은 정치적 이유로 대통령이 사임했을 때, 대통령제는 권력 공백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다시 새로운 대통령을 뽑으려면 갈등 많고 기간도 긴 선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의원내각제의 총리는 선거로 선출하는 것이 아닌 다수당에서 내부 지명을 통해 선임되는 것이므로 총리의 교체가 상당히 용이하다.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부통령제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자리를 신속하게 채울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다. 


그게 그렇긴 한데, 실상 대통령이 변고를 당하거나 엄청난 실책으로 사임을 하는 일은 미국 정치에서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JFK, 닉슨 등이 차례대로 변고와 사임을 경험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야 뭐. 지금 트럼프조차도 쉽사리 탄핵당하지 않을 만큼, 미국 정치에서 대통령직의 보장은 상당히 중요한 가치로 인지된다. 웬만하면 대통령을 유지케 하려는 마음이 미국 시민들에게 내재돼 있다나 뭐라나. 그러니 부통령은 슬픈 존재다. 해리 트루먼은 부통령일 적 이렇게 말했댄다. "부통령의 업무는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리오도 부통령을 오라가라 한 거다. 불러 놓고는 대통령에게 손해가 되는 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기까지 한다. 그러자 슬픈 부통령은 이렇게 항변한다. "당신이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 가혹한 리오는 자기가 명령할 수 있다고 비웃으며 말한다. 그러자 다시 슬픈 대통령, "내가 당신들 밑에서 얼마나 기어다니길 바라지?" 아, 정말 슬프네. 리오는 이렇게 응수한다. "몸과 마음을 바쳐서 대통령을 보좌하지 않으면 그게 얼마 동안이 알게 될 거요." 존 호인즈를 차기 대선 주자로 치켜세워줄지 아니면 당장 주저앉힐지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결정한다는 서늘한 한 마디.


아, 물론 모든 부통령이 이렇게 슬프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남다르게 권력을 행사한 부통령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역시 딕 체니, 아들 부시가 대통령 할 때 부통령을 역임한 자다. 이 사람을 다룬 영화, <바이스>가 4월 중에 개봉한다. <빅 쇼트> 감독이 연출했고 <빅 쇼트>의 배우들인 크리스챤 베일, 스티브 커렐 등이 출연한다. 네가 4월에 온다면 나는 3월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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