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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11. 2019

총기규제와 입법의 내막

웨스트윙 시즌1 4화

시즌1 4화는 웨스트윙이 단지 '위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위대한 정치 드라마'인 이유를 증명하는 첫 에피소드다. 하우스 오브 카드라든지 지정생존자라든지 하는 드라마들을 '정치 드라마'라고 부르면서 웨스트윙과 같은 대열에 놓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4화는 그런 생각을 품게 만든다. 논리적이고 정합적이며 치열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입법과정, 이런 걸 대사와 눈짓으로 풀어내는 게 아론 소킨의 재주다.


4화에서 소재가 되는 입법안은 총기규제법안이다. 리버럴, 민주당의 영원한 숙제. 다른 모든 이슈에서 통일을 이루더라도 오직 이 이슈에 대해서만은 민주당은 늘 고뇌에 빠진다. (물론, 버니 샌더스 이후의 민주당은 경제에 관해서도 고뇌에 빠지기 시작했다.) 사실 총기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보기에 총기규제 이슈는 깔끔하게 반반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규제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래서 민주당 의원들도 총기협회(NRA)의 지원을 받느라 침묵하는 부류와 거침없이 규제하자는 부류 둘로 나뉠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4화의 이야기는 총기규제의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민주당의 평균보다는 진보적이지만 또 이상주의자들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실리주의적인 것이 바틀렛 정부,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모든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은 공화당의 온건한 총기규제론자들ㅡ그리고 민주당의 중립론자들ㅡ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확하게 모든 의원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표를 계산해서, 의회 내에서 통과 가능한 수준의 법안을 짠다. 어떻게? 특정한 총기사업자의 이익은 보전해주는 식으로. 그래서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6연발 권총은 규제하고, 5연발 권총은 허용하는 거다. 어처구니 없지만, 그런 발상이 먹히는 것이 입법의 장이고 미국의 자본주의다.


그런데 여기에 반기를 드는 민주당 의원 5명이 나타난다. 그중 3명은 대통령과의 거래를 위해 의도적으로 반기를 든 자들이니 차치하고, 나머지 2명의 논리가 흥미롭다. 한 사람은 흑인의원들로 이뤄진 흑인의원회의 대표격인 사람이다. 이 사람은 '어떤 총기는 허용하고, 어떤 총기는 규제하는' 법안에 대해 불쾌감을 호소한다. 지금도 흑인 빈민가에서는 총기가 자유롭게 유통되며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백악관에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도 없이 업적만 쌓아 올리려 든다는 것이다. 원칙론자의 주장이다. (아니, 사실 어떤 의미에선 그가 진정한 현실론자다. 그가 보고 겪은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모든 총기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다수인 지역의 정치인이다. 이 사람의 논리는 이렇다. "오늘부터 총기판매를 금지한다면, 지금까지 미처 총기를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제까지 총기를 구입한 사람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차라리 모두에게 총기를 공급해서 스스로를 방어하게 하는 것이 낫다." 현실론자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는 미국의 치안력에 대한 절대적인 불신이 깔려 있다. (무능한) 경찰은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않으며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러한 불신은 역설적이게도 앞서의 원칙론자 의원도 공유하고 있다. 흑인 갱들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들이대며 서로를 죽여댈 때, 백인 경찰들은 단지 시체를 수습하러 올 뿐이라는, 경험적인 불신 말이다.


아무튼, 비서실 차장 조쉬 라이먼은 이 5명을 '단도리' 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때로는 협박을, 아니 거의 대부분 협박을 한다. 네가 감히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도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라, 하지만 모두 들어주지는 않을 거다. 협박이 안 통하는 거물급 정치인은? 그와 친한 다른 실력자를 찾아 회유를 요청한다. 여기서는 부통령이다. 이것이, 아론 소킨이 고발하는 '입법 과정'의 내막이다. 본회의에서 서로 토론발언을 주고받고 투표를 하지만, 실은 본회의 이전에 모든 표가 계산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표는 신념의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실은 이렇게, 정치적 안온함과 사소한 친분, 위계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입법 과정의 내막을 리오 맥게리를 이런 말로 요약한다. "법을 만드는 과정과 소시지 만드는 방법은 공개하지 않는 게 좋지." 과연 그렇다. 한국의 입법과정을 다룬 흥미로운 기사가 있는데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다. "세상의 변화와 기존 제도는 늘 파열음을 낸다. 제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는 속도대로 속속 바뀔 수는 없다. 의회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가며 변화된 세상에 제도를 맞춰나간다. 이 과정은 속 터지게 느리기도 하고 실패할 때도 많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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