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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11. 2019

정치적 입장의 결정

웨스트윙 시즌1 6화

* 5화는 할 얘기가 없어서 패스.


6화에서는 바틀렛 정부가 인구조사(센서스)와 예산안을 두고 의원 세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 에피소드는 지난 4화(링크)의 카운터펀치 격이다. "정치적 안온함과 사소한 친분, 위계의 결과"로 도출되는 정치적 타협이 아닌, 정말로 '토론'을 통해 입장을 정리하는,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정치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워낙 감명깊게 본 에피소드라, 이미 첫 주행 때 남겨놓은 글이 있다. 약간 손을 봐서 복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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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unusual) 사람을 만났어." 토비의 말이다. 이 유별난 사람이란 누굴까. 오하이오의 의원 자격으로 온 조 윌리스 얘기다. '의원 자격'이라고 굳이 한정지은 것은 그가 선거로 당선된 의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는 그의 아내, 제니스 윌리스가 의원이었지만 한 달 전 사망해 남편인 조가 대신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얼마나 탁월한 설정인가. 아내가 아니라 남편을 부수적 존재로 설정한다는 것. 아무튼간에 조는 직업 정치인이 아니다. 원래 직업은 중학교 사회과 교사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므로 명확한 의사를 갖고 있지 않고, 또 그렇게 행사할 수도 없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등장한다. 백악관이 추진하는 어떤 법안의 상임위 통과를 위해 표가 모자란 까닭에, 토비는 '부동표'로 언급되는 의원 세 사람을 백악관으로 불러 설득하려 했다. 조가 바로 그 부동표다. 다른 두 의원은 부동표라곤 하지만 백악관과 반대되는 의견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토비와 의원들은 그 자리에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양측은 이미 의견이 굳어져 있어서 토론은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한참 토론이 진행되다 마침내 파행될 즈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듣던 조는 "나는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말한다.


토비는 의원들만큼이나 당황한다. 갑자기 왜? 토비가 아는 '정치'는 정파적이고, '무대 뒷편'에서 이미 정해진 무엇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이 토론의 시작부터 토비는 "나는 당신들의 시간을 낭비시키고 싶지 않다"고 반 협박조로 말을 던지고 들어갔다. 그때도 조는 "전 시간이 많은데요"라고 말했지. 의원들이 먼저 떠나고 조는 천천히 짐을 챙긴다. 그런 조에게 토비가 다가가 묻는다. "왜 마음을 바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조의 대답은 간단하다. "당신이 첨예한 토론을 잘 이끌었다고 봐서요." 조는 떠나 의회에 복귀했고, 백악관의 법안에 'Yay'라고 대답했다.


토비는 그를 "유별난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정치적 의제를 갖고 회의실에 들어오지 않았어. 결심을 굳힌 채로 들어오지도 않았지. 그는 충심으로 자신이 최선이라 여기는 일을 하길 원했어. 그는 '난 모르겠어요'란 말을 하길 꺼리지 않았지." 정말이지, 유별난 사람 맞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확고한 입장을 지니고 있는 건 꽤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모든 토론에 아무런 입장을 갖지 않고 철저히 논리와 이성에 근거해 참여하여 판단하는 것이 반드시 유익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론 소킨이 보여준 이 에피소드가 왠지 마음을 울려서 장황하게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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