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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18. 2019

거대한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

웨스트윙 시즌1 12화

12화에서 바틀렛 정부는 국회 연설을 앞두고 있다. 이른바 연두교서. 새해에 대통령이 의회를 방문해서 한 해의 국정방침을 연설하는 행사다. 이 연설에는 말 그대로 행정부의 1년간 국정방침이 담기므로, 백악관 참모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갈고닦는 업무에 속한다. 바틀렛 정부도 연두교서를 위해 상당한 고생을 겪고 있다.


여기서 이제 조금 유명해진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연두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만큼, 행정부의 거의 모든 관료들이 의회로 초대되어 간다. 즉 대통령, 부통령, 비서실장, 각 부처 장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다는 얘기다. 여기에 하원의장, 상원의장 같은 입법부 수장들은 당연히 포함되고, 각 당의 대표들도 마찬가지다. 사법부의 수장들, 즉 대법관들도 참석한다. 다시 말해 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거의 모든 리더들이 한 날 한 시에 한 장소에 모인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기에 폭격이라도 떨어지면 미국은 한순간에 모든 리더를 다 잃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미국은 '지정생존자'라는 개념을 발명했다. 대통령 승계서열에 이름을 올린 사람 중 한 사람을 지정해서의회가 아닌 백악관에 대기시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우려는 사실상 없어서, 역대 대통령들은 부처 장관 중 별볼 일 없는 사람을 지정생존자로 지명해 왔다. 12화에서는 농림부장관이 지정생존자. 


(참고로 아예 이 지정생존자를 소재로 한 드라마 <지정생존자>에서 지정생존자이자 주인공인 톰 커크먼은 주택도시개발부장관이다. 하지만 <지정생존자>는 졸라 재미없으니 그냥 시작을 마십시오.)


아무튼, 이 연설문을 작성하다가 참모들 사이에서 논쟁이 붙는다. 포인트는 이것, "거대한 정부의 시대는 갔습니다." 이 드라마가 만들어지던 시점이 1999년이니, 한창 WTO 뉴라운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다. 2년 뒤인 2001년에 뉴라운드가 타결됐고, 전세계는 이른바 '자유무역'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바로 그 시점에 나온 문구, "거대한 정부의 시대는 갔습니다." 이건 신자유주의의 표어다. 정부가 사회와 경제에 깊게 관여하는 시대는 끝났으며, 이제 정부는 한 발 물러나 시장에 자유를 맡기면 다아- 좋아질 거라는 표어 말이다.



현실 속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그 흐름을 철저히 이끌었지만, 드라마 속 바틀렛 정부는 그 흐름에 대해 토론한다. 여기서 샘과 토비가 대립한다. 여전히 거대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샘과, 정략적으로라도 거대한 정부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토비.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친 끝에 토비는 '루즈벨트'라는 이름을 되찾고 깨닫는다. 여전히, 거대한 정부의 시대라는 것을. 여전히 정부가 나서서 사회를 이끌어야 하고, 불평등을 제거해야 하며, 소수자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일전의 자기 주장을 뒤집으면서 12화는 맺는다. 


그렇다면 바틀렛은 정말 '거대한 정부'의 길을 갔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추후 나올 시즌에서 다국적기업의 공장 이전으로 황폐화된 공업도시 얘기가 나온다. 그때의 대화가 흥미로운데, 이건 뭐 그때 가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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