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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19. 2019

증오범죄

웨스트윙 시즌1 13화

13화는 이전 에피소드에서 폭행당해 사망한 동성애자 소년의 부모를 설득하는 것이 주요 이야기다. 뭘 설득할까? 인종·성정체성·젠더·장애 등의 이유로 발생한 표현이나 범죄를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안을 백악관이 입안하려고 하는데, 이 법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해달라는 것이다. 지지를 선언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대통령과 만나서, ‘우리는 이 법안에 찬성합니다’라고 한 마디 하면 된다. 그런데 이 부모, 특히 아버지가 지지를 망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참모들은 당장 분노한다. “아들이 죽었다는데 뭘 망설인다는 거야? 게이인 아들이 부끄럽다는 거야?”      


전형적인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아버지는 보수적인 사람이고, 게이인 아들을 받아들일 수 없고, 생각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미국의 정신에 맞지 않고... 그렇게 입장이 불분명하다가 결국 바틀렛이 부모를 만나러 간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음을 언급한다. 그 이유를 묻는 바틀렛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 생각을 처벌하는 일입니까? 동성애자의 군 복무를 인정하고, 동성애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게 당신들이 할 일 아녜요? 그런 중요한 일을 내버려두고, 이렇게 온건한 법안을 만드는데 동의해달라고 부탁하는 겁니까?”      


그렇다. 이 아버지가 법안에 반대한 건 동성애자인 아들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앞으로 다른 동성애자들이 정말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서였다. 보수적이라서가 아니라, 바틀렛 정부의 상한선보다 훨씬 진보적이라서 그랬던 거다. 아론 소킨이 이 에피소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 폭로된 건 ‘리버럴의 오만함’일 게다. 그들만이 가장 정의롭고 다른 자들은 그저 악할 거라고 믿는, 하지만 실제 정치적 실천에서는 온갖 정치적 고려 속에 본질적 문제를 접어두는, 리버럴의 오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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