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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19. 2019

사형제도와 정치드라마

웨스트윙 시즌1 14화

14화의 주요 소재는 사형제도다. 무슨 주에선가 마약을 유통하고 두 사람을 살해한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집행일은 선고일로부터 3일 뒤인 월요일 0시 1분. 왜 월요일이고 왜 0시 0분도 아니고 0시 1분일까. 일요일은 안식일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에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이 소식이 백악관에 전해지고 주말 사이에 난리가 난다. 리버럴 정부의 참모들 개개인은 사형을 멈추고 싶지만, 이미 선고된 것을 멈출 방법은 마땅히 없다.   

  

딱 하나 방법이 있다면 대통령의 감형 명령이다. 대통령에겐 그런 권한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사형제에 반대하는 가톨릭의 신자인 제드 바틀렛은 권한 행사를 망설인다. 나랏일에 개인 신념을 투영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게다가 미국 국민의 71%가 사형제도에 찬성한다는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도 있다. 이 상황에서 사형을 막기 위해 감형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악수다.     


어떻게 되었을까. 드라마답게 묘수를 찾아내 일요일 23시 59분에 감형 명령을 내렸을까. 아니다. 아론 소킨은 그 상황에서 사형을 멈출 방법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단지 제드 바틀렛이 어릴 적 다니던 성당의 신부가 백악관에 방문해 교리에 입각한 조언을 하게 해줄 뿐이다. 그의 조언을 듣는 동안 사형은 집행되고, 이어 신부는 바틀렛에게 고해성사를 할 것인지 물으면서 에피소드가 막을 내린다.     


나는 이거야말로 웨스트윙이 진정으로 위대한 드라마로 불릴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억지로 뒤집지 않고, 단지 각 등장인물들의 내적 고뇌를 담담하게 표현하는 것. 정치적 묘수를 억지로 쥐어짜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려 드는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정치적 실패를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정치라는 것의 무거움을 보여주는 정치 드라마.     


대통령을 찾아온 신부가 이런 질문을 하는 장면이 있다. "제드라고 부를까요, 각하라고 부를까요." 보통의 작가라면 여기서 "제드라고 불러달라"는 전개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아론 소킨은 단호하게 후자를 택한다. 이유는 이렇다. "이 방에선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군대를 사지로 보낼지, 어떤 치명적인 질병 연구에 돈을 써야할지 말이죠. 그 상황에선, 제가 인간이 아니라 사무실이라 생각하면 도움이 되죠."     


내가 지정생존자 같은 드라마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정생존자는 정치드라마인 척 하지만 실은 스릴러드라마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려 애쓴다. 그러다보니 대통령은 고뇌도 갈등도 없다. 개연성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정치적 묘수를 억지로 찾아내 한 큐에 상황을 뒤집으면서 정치적 승리를 얻어내는 것이 지정생존자의 지겹도록 반복되는 전개다.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진 모르겠다. 시즌2 초반에 관둬버렸기 때문에.     


아무튼 간에, "3대 정치드라마" 운운하면서 웨스트윙과 하오카와 지정생존자를 한 대열에 놓는 자들을 보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3대 정치드라마 같은 건 없다. 유일한 정치드라마로서 웨스트윙이 있을 뿐이다. 모처럼 간증하고 갑니다. 아론 소킨을 HBO 지하감옥에 가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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