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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21. 2019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 정책

웨스트윙 시즌1 19화

19화는 웨스트윙 전체 흐름에서 몹시 중요한 에피소드다. 재선을 염두에 두며 적당히 온건하고 대체로 중립적인 정책만 일삼다가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느라 지지율이 떨어진 바틀렛 정부가 새롭게 각오를 가다듬는다. 리오는 바틀렛을 몰아붙이며 이런 말을 끌어낸다. "재선을 생각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하겠어." Let Bartlet Be Bartlet. 리오가 바틀렛에게 건네주는 말이다. 바틀렛을 바틀렛답게. 이 탁월한 이야기를 망치는 건 딱 하나, 번역이다. "소신있는 대통령, 바틀렛." 굳이? "바틀렛을 바틀렛답게"라고 직역하면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직역되어야만 하는 문장을 맘대로 의역하지 말라. 


바틀렛에게 다짐을 받아낸 리오는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간지폭풍을 남긴다. "공공연한 논쟁을 불러일으켜서 우리 유산으로 만들걸세." 보고 있나, '사회적 합의러'들? 사회적 합의는 정부가 가만히 있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정부가 공공연한 논쟁을 불러일으켜서, 그들의 유산으로 만들려 해야만 비로소 만들어질까 말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바틀렛과 이름이 비슷한 바틀비는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지. "그렇게 안 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실천의 의지가 배제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바틀비의 말과 그 의미가 통한다.


아무튼, 이 말이 나오는 상황 중 하나가 동성애자가 군인에 대한 당대의 정책인 DADT, "Don't ask, Don't tell"이다. 즉 동성애자가 군대에 입대하는 건 막지 않겠지만,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에게) 성정체성을 묻지 말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들에게) 성정체성을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처음 이 정책이 나온 계기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점점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예컨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아웃팅된 군인을 강제전역시키는 방식으로 말이다. 바틀렛 정부는 이 정책을 폐기하고 싶어하고, 군 간부들은 그것이 '군대의 단결과 화합'을 해칠 것이라고 주장하며 가로막는다.



이때 마침 합참의장인 피츠월러스 제독이 백악관을 방문해 이 논쟁 장면을 본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흑인이다. 부하 간부들로부터 각잡힌 경례를 받은 피츠월러스는 이렇게 말한다. "편견은 없지만 군대에 받고 싶지 않다는 얘긴가? 조직의 단합을 해쳐서? 내가 50년 전에 꼭 그랬다네. 흑인이 군대에 오는 걸 싫어했지. 하지만 보게, 나는 이제 해군 제독이고 미군 합참의장일세. 군대도 변한다네. 그럼 이만." 차별의 작동방식을 아는 사람들의 연대. 작중 피츠월러스의 대답은 '사이다'이고 이치를 깨우쳐주는 말이지만, 현실 속 DADT는 그 후로부터 10여년 이상 더 지속된 2011년 9월 오바마 정부에 들어와서야 마침내 폐지되었다. 


그리고 8년여가 더 흐른 2019년, 한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동성애 대위 징역형…인권단체 "사생활에 범죄 낙인 찍어"" (뉴시스), "“게이 데이팅 앱 써봐” 해군도 성소수자 군인 색출"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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