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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ug 08. 2019

남성의 땅 광산, 그곳의 여성 광부.

영화 <노스 컨츄리> 리뷰

<노스 컨츄리>, 넷플릭스. 보고 바로 자려고 했는데 여운이 깊게 남아서 뭐라도 쓴다. 미국 북부, 광산업으로 먹고사는 한 동네의 광산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남성 동료들의 상습적 성희롱과 관습화된 성차별을 고발하여 승리한 1990년대의 실제 소송을 영화화했다. 다소 거친 요약인데, 내 생각엔 꽤 정확한 요약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1990년대의 광산업으로 먹고사는 한 동네라는 것. 이게 뭘 의미하냐면, 쇠락해가기 일보 직전의 동네라는 것이다. 더 이상 광산업이 주력 산업일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고, 그래서 광부 일자리도 크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다. 안 그래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 광산 노동자들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내 자리가 없어지면 어떡하지? 내 자리를 누가 뺏어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상황에서 '금녀의 땅'이라 여겨지던 광산업에 여성 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여성의 취업을 금지하던 성차별 규정들이 1980년대를 거쳐오며 모두 폐지된 결과다. 자, 다시 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동네의 의미를 말하자면, 쇠락하니 뭐니 해도 어쨌거나 이 동네에서 여전히 최고의 일자리는 광부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성들, 특히 스스로 돈을 벌어야만 하는 여성들은 임금이 절대적으로 높은 광산에 취업하길 원한다.


이 두 가지 상황이 겹쳐진 결과 광산을 자기들의 텃밭으로 여겨오던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을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기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마녀들'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애초에 남성들만 바글바글한 일터였으니 그 문화 역시 엄청나게 마초적이다. 악의적으로 겁을 주고 위험한 일을 시킨 뒤 울거나 실패하면 '역시 여자들은' 하고, 울지 않고 성공하면 더 위험한 일을 시킨다. 그래도 버티면 노골적으로 괴롭힌다. 여성들은 그 괴롭힘을 태연하게 참아내고 '남성화'되어 그들 안에 녹아들어야 간신히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사생아를 둘이나 지닌 미혼모인 조시 에임스가 자기를 학대하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자립하기 위해 광산에 취업한 뒤 겪은 온갖 성희롱과 괴롭힘을 고발하는 이야기다. 그가 겪은 온갖 성희롱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그의 비참하고 절박한 현실 또한 미화되지 않고 표현된다. 그의 소송은 외롭고 어렵다. 지금처럼 녹음이 쉽지도 않고 사진기록을 남길 수도 없는 시대였다. 그는 그저 괴롭힘을 당했다는 자기 자신의 증언 외에 아무것도 가진 증거가 없는 취약한 고발자다.


첨부한 장면은 소송을 시작한 조시가 노조 집회에 조합원 자격으로 참석해 발언하러 가는 장면이다. 똑같이 조합비를 내는 노조원이지만 남성 조합원들은 그를 야유하고 이 자리에서마저 성희롱을 일삼는다. 당신의 소송으로 광산이 폐지되면 어떡할 거냐고 따진다. 여성은 발언할 권리가 없다고 외친다. 더 이상 발언기회를 주지 말고 회의를 끝내야 한다고 외치고, 발언 시간은 3분이며 시간이 끝났다고 따진다. 그런 그들에게 조시는 노조 내규에 입각해 차분하게 반박한다. 내규는 남성이나 여성(her)이나 모두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되어 있다고. 발언 시간에 제한이 없으며, 발언자가 있는 한 회의는 지속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고. 개인들은 지체되지만 조직은 앞서간다.


조시처럼 광산에서 성희롱에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한 동료 여성 노동자들은, 그것이 생계를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그들은 소송 이후에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조시의 편을 들어주길 망설인다. 그들은 광산이라는 직장의 '철저히 남성화되어야만 살아남는다'는 룰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온 평범한 여성들이다. 조시의 돌출행동이 자기들의 직장 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여성들이 조시 에임스의 고독한 용기를 목격하고 그의 편에 함께 일어서기(실제로 법정에서 조시 에임스와 공동 원고가 되겠다는 뜻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를 선택하여 승리하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그저 한 동네 한 직장에서 몇몇 여성들이 공동으로 제기한 소송이 승소로 결론나면서 미국 전체 직장에 '성희롱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하도록 만든 이야기다. 한 여성의 용기가 몇몇 여성들의 용기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용기가 모든 사람들의 용기를 이끌어낸 이야기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 나온다. 우디 해럴슨, 프랜시스 맥도먼드, 제레미 레너, 숀 빈 같은 이름들. 특히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정말이지 최고의 배우다. 그리고 주인공 역의 샤를리즈 테론. 원래부터 필모그래피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그 생각을 확실하게 굳혔다. 이제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한 영화는 예고편을 보지 않고 시놉시스를 보지 않아도 기꺼이 영화관에서 관람하길 택할 수 있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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