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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ug 08. 2019

내 개인정보가 트럼프를 만들었다고?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 리뷰

<거대한 해킹>, 넷플릭스. 제목이 쫌 촌스러운데... 페이스북 유저들의 개인정보를 빼돌려 브렉시트 운동과 트럼프 선거운동에 불법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보다 정확히는 CA를 고발하고 끝내 폐업시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크 주커버그를 의회 청문회에 세우는 데까지 성공한) 시민, 기자, 내부고발자들의 행보를 동행 관찰한 다큐멘터리다.


2014년에 개봉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내부고발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티즌포>와 전체적으로 유사하게 구성됐다. 둘 다 IT, 데이터, 감시와 같은 키워드를 주제로 한 것도 유사하다. <시티즌포>는 스노든이 내부고발을 결심한 직후부터 쭈욱 동행하면서 그의 행보를 다뤘는데, <거대한 해킹>이 약간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면 그 동행대상이 여럿이라는 점이랄까.


먼저 시민. 이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사람이다. 데이비드 캐롤이라는 사람이 우연히 페이스북의 한 앱에서 자기 데이터를 써먹을 수 있다는 약관을 발견하고서는 "내 데이터를 어떻게 썼는지 보여달라"면서 CA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 다음은 기자.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옵저버>지 기자 캐롤 캐드월래어가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건이 커지자 내부고발자가 나온다. CA의 임원급이었던 브리트니 카이저다. 이렇게 3주체가 함께 또 따로 CA를 폭로하는 여정에 촬영팀이 결합해 동행한다. 요컨대 '데이터-해킹'보다는 '폭로-공론화 과정'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라서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그래도 '거대한 해킹'이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나름대로 시각적으로 보여주긴 한다. 미국 선거를 예시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흥미로운 심리테스트앱을 만들어 페이스북에 배포한다. 언뜻 보면 단순한 심리테스트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기에 답한 사람의 사상과 행동양식을 분석할 수 있는 문항들이다. 앱은 소셜로그인을 통해 '간편하게' 접근가능하다. 간편함 뒤에 숨겨진 건 물론 이용약관이다. 이 앱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무제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뿌려진 앱으로 유저들의 데이터를 마구잡이로 수집한다. 그렇게 수집한 데이터가 8천만 개(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에 달한다.



이제 데이터를 분석한다. 분류하고자 하는 건 '설득가능자', 즉 확고한 성향을 갖지 않고 아직 어디에 투표할지 망설이는 유권자다. 특히 '스윙 스테이트', 즉 전통적으로 특정 정당에 치우치지 않고 그때그때의 선거운동 결과에 따라 표심이 흔들리는 주에 있는 설득가능자들을 찾아낸다. 이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바로 이들이 특정 주의 표심을 결정하는 자들이다. 이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면 그 다음은 집중적으로 선거광고를 투척하는 일이다. 페이스북이 친절하게 제공하는 광고 타겟팅을 이들에게 최적화해 설정한 다음, 힐러리 클린턴을 비난하는 광고와 트럼프를 치켜세우는 광고를 무분별하게 노출시킨다. 처음 몇 차례의 노출은 효과가 없지만,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 사람은 흔들린다. 그렇게 스윙 스테이트의 설득가능자들을 트럼프의 편으로 만들면, 짜잔, 선거의 판도를 결정하는 핵심 주들에서 트럼프의 승리가 결정된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CA는 이런 식의 데이터와 개인정보를 활용한 불법적인 선거운동 컨설팅을 제3세계 곳곳에서 우선적으로 실험해왔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 것이 트리니다드 토바고.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흑인계 정당과 인도계 정당이 대립하는 정치구도를 가져왔는데, CA는 인도계 정당의 의뢰를 받았단다. 이 나라에서 CA가 택한 전략은 흑인계의 투표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이른바 "DO SO" 운동, 즉 "(투표를 할 필요가 없다면) 그렇게 하자!"라는 운동을 흑인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펼치도록 종용했다. 예의 그 방식을 활용해 정치에 약간의 혐오감을 가진 흑인 청년들을 분류해내고, 그들에게 의도적으로 "DO SO"라는 메시지를 흘림으로써 운동을 조직해냈다. 그 결과 총선에서 흑인들의 투표율을 5% 이상 떨어뜨려 인도계의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얘기. 뭐, 당선된 인도계 총리는 이 사실을 부정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요컨대 이 '거대한 해킹'에서 중요한 것은 페이스북이다. 개인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입력하게 유도하는 시스템, 필요 이상의 데이터 제공을 제지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개인정보 정책, 계정에 입력된 데이터를 송두리째 넘겨주는 소셜로그인 시스템, 필터버블을 한껏 장려하는 엄청나게 세세한 광고 타겟팅 상품. 작년에 마크 주커버그가 미국 대선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의회 청문회에 섰던 것은 바로 이런 지점들 때문이었다. 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쓴다. 뽀꼬 있냐, 이 썌끼뜰아? 최근의 비슷한 사례로는 얼굴을 나이 들어보이게 만드는 앱 같은 경우도 원본 데이터를 보관할 수 있다는 약관이 걸려 있었다고 하지요. 개인정보 수집항목 등을 잘 보고 가입해서 건강한 인터넷 생활 합시다.


사실 나 따위의 개인정보를 넘겨주는 게 뭐 그리 대수냐,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다. 어차피 내 개인정보들은 대학시절에 여러 행사들 운영하느라고 웹에 자발적으로 노출시켜둔 마당에... 하지만 데이터라는 게 대부분 그렇듯 눈덩이처럼 굴려지면 굴려질수록 위태로워지는 것이고, 지금은 '나 하나쯤이야'지만 여기서 제지하지 않으면 '나 하나 때문에' 되기 쉽다. 게다가 그렇게 모여진 데이터가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의 당선을 위해 활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 터다. 앞서 처음 공론화를 시작한 데이비드 캐롤도 "데이터권(Data Right)"이라는 말로 이같은 주장을 펼친다. 우리의 데이터가 저들의 (나쁜) 정치에 활용된다면, 우리는 응당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그 활용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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