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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01. 2017

<JFK>와 <닉슨>

# <JFK>

충동적으로 결제한 넷플릭스 이용권을 충실히 뽑아먹기 위해 <JFK>(1991)를 봤다. 3시간 남짓한 이 길고 긴 영화는, 타고난 집중력 결핍 탓에 수차례 끊어보긴 했지만, 정말 지루할 새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뚜렷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존 케네디 암살 직후 과정을 간단히 보여준 다음, 3년 뒤 한 지방검사가 존 케네디 암살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문을 품고 진실의 조각을 모아가는 조사과정을 주로 다루고, 마지막으로 공판과정을 다뤘으니, 정치스릴러라기에도 뭣하고 법정영화라기에도 뭣하고, 따지자면 차라리 '취재기'에 가까울 것 같다.


그러니 뚜렷한 사건은 초반과 후반에만 위치하고 정작 이야기의 골격에는 그저 '말'들만 이어질 뿐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다큐 같기도 하면서, 또 극영화 같기도 하고, 이 둘이 교묘하게 섞이기도 한다. 빠르게 여러 장면들을 전환시키는 편집기법은,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빤히 알면서도 괜히 궁금하게 만든다.


나무위키 같은 델 찾아보니 이 영화가 제기하는 '음모론'이 이미 다 반박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련링크를 들어가봤더니 반박하는 데 있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음모론을 신봉하는 사람도, 음모론을 철저히 부정하는 사람도, 결국 '속는 것'이 싫어서 그러한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거울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1의 쾌감은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겠지만, 제2의 쾌감은 모두가 음모론에 빠져있을 때 태연하게 그것은 그저 음모일 뿐이라고 부정하는 데서 오는 어떤 우월의식이리라.


어쨌거나, 실제로 존 케네디가 음모에 의해 죽었거나 말거나 그건 이제 일종의 놀이 비슷한 게 되어버렸을 뿐이고, 이 영화는 우월한 각본과 탁월한 편집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 <닉슨>

<JFK> 보고 감독한테 반해서 본 건데, <JFK>와 비슷한 느낌이면서 훨씬 깊이가 있다. 영원히 한니발로 기억될 것 같던 앤소니 홉킨스는 완벽히 닉슨 그 자체였다. '금수저 엘리트에 인기 있는' 존 케네디와 대비하여 '흙수저 출신 자수성가 인기 없는 정치인'의 의식구조를 아주 명료하게 포착해냈다. 객관적으로는 전혀 아니지만, 박근혜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자기 정체성은 아마 닉슨의 그것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국에 한번 보면 좋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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