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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06. 2017

<누운 배>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누운배>를 읽었다. 좋은 소설이다. 첫 문장부터 흥미롭다.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앞선 과정들은 불필요하다. 배는 쓰러졌다. 애초부터 쓰러질 배였다. 명백하게도 이 소설에서 '배'는 '사회'를 은유한다. 다시 바꿔 말하면, 이 사회는 쓰러졌다. 애초부터 쓰러질 사회였다. 이미 쓰러져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그것이 쓰러지기 이전의 일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좋다. 왜 쓰러졌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소설도 그것이 왜 쓰러졌는지를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소설은 '누운 배'를 소재로 조선소의 풍경을 세밀하게 다룬다. 정확히는 '회사'의 풍경이다. 굳이 조선소로 한정짓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회사는 전혀 이상적인 회사가 아니다. 회장을 필두로 정치와 줄대기와 암투가 판치고, 원칙보다는 꼼수, 지속가능성보다는 당장의 편법이 채택되는 작은 사회다. 소설의 분기는 새로 사장이 취임하는 지점이다. 그는 원칙적이고,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며, 배를 사랑하는, 말 그대로 '뱃사람'이다. 이야기는 예상 가능하게 전개된다. 조선소의 운영을 바로잡으려는 사장과, 여기에 저항하는 적폐로서 임원들, 그리고 오히려 임원에 동조하는 아랫 사람들.


물론 예상 가능하다고 하여 재미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의 필치는 날카롭고, 속도감 있다.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임원들을 '조지는' 장면이 여럿 나오는데, 때로는 통쾌하고, 때로는 아슬아슬하다. 작가는 이 긴장을 정말이지 절묘하게 붙잡는 능력이 있다. 자, 여기까지. 다시 말하지만 이 소설은 당연하게도 우리 사회의 은유다. 그렇다면 굳이 스포일러를 적지 않아도 결론을 예상할 수 있을 게다. 이 뻔한 방향의 결론을 뻔하지 않게 메우는 작가의 솜씨가 좋다. 어떤 말인진 직접 읽어서 확인해보는 걸 권함. 아래에는 인상깊은 대목들을 인용한다. 


"그렇게 지었다고 그렇게 돌아가나.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야. 사람이 그만큼 관리를 하고 따라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말짱 도루묵 된 거지. 위치도 안 좋았고, 겨울에 앞바다가 언다던데 무슨 생각으로 거기에 조선소를 지은 건지. 조 상무는 아직도 카스 갖고 헛소리하지만, 웃기지 말라 그래. 그게 지금 우리 회사에 딱 맞고 중국이라는 데에도 딱 맞는, 그 수준이야. 관리력이 못 받쳐주면 아무리 크고 좋아봤자 혼자 사는 사람이 70평 아파트 사는 거나 마찬가지지. 청소하다 쌔가 빠지거나 아니면 먼지나 쌓이는 거야." (293p)


"황사장이 그렇게 쫓겨난 것도 너무 바람 풍, 바람 풍 한 탓인 거야." 최 부장이 말했다. 그러고도 떠난 사람은 황 사장이고 남은 사람은 조 상무였다. 조 상무는 이것이든 저것이든 바담 풍, 바담 풍, 온통 바담 풍이라고만 말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지혜이고 강령인 양 모든 사람에게 바담 풍이라고 말하게 시키는 사람이었다. 회사는 여전히 이런 회사고 현실도 계속 이런 현실일 것이다. 한국이라고 더 심한 것도, 중국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어느 곳에나 바담 풍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것이 세상이었다. 내가 있고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도망쳐도 되돌아오고 그만둬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294-295p)


"시스템, 시스템 해도 다 사람이 돌리니까 돌아가는 거야. 대기업은 다 갖춰놓고 시스템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웃기는 소리지. 일해본 사람은 알아. 같은 원칙, 같은 규정이라도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 다른 거고 빠져나가려면 빠져나갈 구석이 다 있는 거야. 당연하지. 사람이 만들었으니까. 십수 년씩 일 잘하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나니까 회사 개판 되는 건 순식간이드라." (296p)


분명한 것은 일을 일로 하지 않는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끼워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치였다. 이치란 무엇일까. 거대한 배를 쓰러뜨리고 또다시 끌어 올린 물리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관장하는 근본이다. 황 사장이 말한 순환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이치는 이상도 전망도 희망도 아니고, 사실의 표면조차 아니다. 이치는 사실들의 뿌리고 진실이다. 바람이 바람으로 불듯 이치는 이치대로, 수레바퀴를 순방향으로 돌리고 역방향으로도 돌리는 것이다. 회사를 부정할 마음은 없었다. 회사가 아니라면 비행기도 배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많은 위대와 경이가 회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조직을 이뤄 일군 것이다. 부정해야 할 것은 회사가 아니라 이치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회사, 회장이라는 우상을 따라 움직이는 회사, 직원을 맹신자나 사병으로, 사람을 노예나 기계 부속으로 만드는 회사였다. 그런 회사는 한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나라에서든 망할 것이고, 그런 회사에 다니는 한 나는 결국 저 배처럼 누워 썩어버릴 터였다. 그 명백한 이치가 비로소 나를 자유롭게 했다. 더는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가는 곳이 어느 회사, 어떤 나라라는 것에 얽매이는 대신 몰락에서 비켜서기 위해, 썩어가는 누운 배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것은 결정이었다. (3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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