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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07. 2017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들

<인사이드 잡>부터 <라스트 홈>까지

2007년에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이어져 꼬박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벌어먹을 거라곤 제조업밖에 없는 나라에서 세계금융위기로 물동량이 급감하니 해운업이 망하고 해운업이 망하니 조선업도 망해간다. 여러모로 중요한 사건인데, 사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게 대체 무슨 사건이었는지 알기 어렵다. 이럴 땐 영화가 답이다.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가 다섯 편이나 있다. 


순서는 시간의 흐름대로.


0. 인사이드 잡


0번인 데는 이유가 있다. 아래 1-4번의 영화가 한정된 시점들을 묘사하는 반면, <인사이드 잡>은 사태의 전후를 모두 훑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 그래서 공부용으로는 이 영화가 가장 낫다. 명백히 비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이므로 관점도 선명하다. 특히 금융위기의 책임이 있다고 할 만한 여러 기업가들과 정부 관료들을 성실하게 쫓아다니며 취재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때로는 후회에 차고 때로는 뻔뻔한 목소리들을. 금융위기가 어떻게 발생했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그들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등이 이 작품의 주제들이다. 헐리웃의 유명한 진보주의자 맷 데이먼이 나레이션을 맡았다.



1. 빅 쇼트


2005년부터 금융위기 발발 직후까지를 다룬 과거완료(?)형.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취약성과 거품을 미리 알아채고 빅 쇼트, 즉 공매도, 즉(...) 어떤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쪽에 배팅한 네 사람의 펀드매니저 이야기를 그렸다. 굉장히 파격적인 형식을 갖춰서, 정상적으로 서사를 풀어가다가 뭔가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난데없이 마고 로비가 나타나서 관객들에게 이것저것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준다. 영화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또 분위기 자체가 좀 광적이다. 어딘가 편집증이 있고 약간 도른(...) 주인공이 네 명씩(배우진이 겁나게 화려하다. 브래드 피트,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이 나온다)이나 나오기 때문. 편집증 있고 도랐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배팅을 할 수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남들이 다 조롱할 때 꿋꿋이 반대쪽으로 배팅한 주인공들이 결국은 승리하는 서사라서 관객 입장에선 '통쾌'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 감독은 윤리적이게도 스티브 바렐이 맡은 마크 바움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지점을 미리 차단한다. 이 배팅으로 인해 누군가들은 끔찍한 손해를 입을 것이고, 또 어쩌면 세계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인데, 그 불행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것이 결코 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마크 바움은 자신의 입으로 진술한다. 어쨌든, 영화 자체로도 굉장히 흥미로우니 꼭 관람하기를 권해본다.



2. 마진 콜


거품이 꺼지기 하루 전 뉴욕의 한 가상의 투자회사(-아마도 골드먼삭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시간도 한정적이고 공간도 한정적이라(그치만 뉴욕의 투자회사는 무지하게 커서 한 건물 안에서만 사건이 일어나도 장소가 꽤 다양하다...) 영화적으로 꽤 흥미롭다. <빅 쇼트>의 주인공들처럼, 이 투자회사의 한 직원은 퇴근 직전에 회사가 쌓아온 투자가 곧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낸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회사의 임원들이 모두 회사로 들어오고, 다음날 아침 주식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마라톤 대책회의를 이어간다. 영화는 이 하루의 시간 동안 자본가들이 나누는 대화들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역시 배우진이 화려하다. 케빈 스페이시, 데미 무어, 제레미 아이언스, 재커리 퀸토 등이 출연한다. 특히 케빈 스페이시와 제레미 아이언스, 중후함을 무기로 갖춘 두 배우가 새벽 어스름에 나누는 대화는 정말이지 카리스마라는 것이 폭발한다. 



3. 투 빅 투 페일


극장에 걸린 영화는 아니고, <HBO>에서 방영한 한 편 짜리 TV영화다. Too big To fail, 우리말로는 '대마불사'다. 본디 바둑용어인 이 말은 경제에서는 '큰 기업은 곧 파산할 것처럼 보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위중하기 때문에 결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살아날 수밖에 없다'는 뜻을 가진다. 제목 그대로 '대마'들이 '불사'하는 얘기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인, 미국의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는 과정부터 미국 정부가 결국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까지를 다룬다. 당시 재무부 장관인 헨리 폴슨이 주된 주인공으로 등장해, 미국을 넘어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행위자들과 치열한 정치싸움을 벌이는 것이 주요한 서사다. 중간중간 실제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구글에서 얼굴을 검색해가며 보면 재밌다. 진짜 배우 외모랑 실제인물 외모랑 미친듯이 싱크로율이 높다. 작중 대사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재무부 대변인: 이렇게 되기까지 왜 규제하지 않은 거죠?
헨리 폴슨: 아무도 규제를 원하지 않았어. 우린 돈을 너무 많이 벌고 있었거든.



4. 라스트 홈


2010년 즈음이 배경이다. 세계금융위기 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미국. 앞서 1-3번의 영화가 정말 놀랍도록 전혀 주목하지 않은, 금융위기의 파장을 얻어맞은 희생자들을 처음으로 주목한 영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빚을 갚지 못해 집을 빼앗겼으나, 그 과정에서 만난 부동산업자에 협력해 남의 집을 빼앗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앤드류 가필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중에서는 이 부동산업을 '방주'라고 부른다. 결코 속시원한 이야기가 아니다. 갑갑하고 어쩜 저러나 싶으면서도,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저러지 않을까 싶은 죄책감. 결론도 불완전하다. 극은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기에, 불완전한 결론은 한편으론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다. 주인공이 퇴거를 집행하러 다닐 때, 퇴거할 수 없다며 우는 십수명의 홈리스들을 시종일관 클로즈업한다. 그들 나름의 사연들을 흘러가듯, 하지만 빠짐없이 다룬다. 실제로 퇴거를 집행한 보안관과 부동산 브로커들, 그리고 실제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배우로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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