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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01. 2017

2017년의 뮤턴트

<로건>을 보고.

* 스포일러 있습니다.



엑스맨 시리즈, 영화만으로도 벌써 17년째다. (코믹스로 따지면 우리 엄마랑 나이가 같다.) 17년이나 된 이 시리즈는 매해 새로운 느낌을 준다. 그해에 가장 부각되는 소수자 이슈가 무엇인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엑스맨의 주인공들인 '뮤턴트' 자체가 애초 미국 내 인종차별을 모티브로 삼아 1963년에 만들어진 설정이니까 당연한 얘기. 언젠가의 뮤턴트는 흑인이었고, 언젠가의 뮤턴트는 성소수자였다. 그리고 <로건>이 개봉한 2017년의 뮤턴트는, 아무래도 이민자다. 트럼프 시대의 뮤턴트는 그럴 수밖에 없다.


<로건> 이전까지 시리즈에서 뮤턴트들은 나름대로의 조직을 꾸리고 있었다. 엑스맨 오리지널 트릴로지에서는 차별에 맞서 인간을 절멸하려는 '브라더후드 오브 뮤턴츠'와, 인간과의 공존을 꾀하는 '엑스맨'이 대립한다. 여기서 뮤턴트는 차별받지만 한편으로는 대항할 힘을 갖춘 자들이다. 오히려 위축되는 것은 인간이다. 위축되기 때문에 차별한다. (<아포칼립스>를 제외한) 프리퀄 트릴로지에서도 주제는 여전히 '인간과 뮤턴트의 공존'이다. 한편 울버린 트릴로지는 뮤턴트와 인간의 대립항보다는 '힐링팩터를 가진 뮤턴트 로건'의 사적인 이야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2017년, <로건>은 전에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뮤턴트가 전멸한 시대인 2029년이 배경이다. 살아남은 몇 명의 뮤턴트들은 쇠락해서 힘을 잃었다. 찰스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로건은 힐링팩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의 실험으로 탄생한 일군의 뮤턴트 무리들이 발견된다. 아이들. 연구실을 박차고 도망친 아이들. 기성 뮤턴트들이 없기에 이들은 보호받을 조직을 가지지 못했다. 뮤턴트가 사라진 시대이기에 그들은 존재 자체로 소수다. 차별의 대상이다. 아니, 소거의 대상이다. 이들은 도망치고 또 도망친다. 그들을 붙잡으려는 인간-어른들을 피해서 국경을 넘어야 한다. 이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초능력으로 저항하지만 결국 이기지는 못한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울버린의 도움을 받아서야 간신히 살아남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른에게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에덴에 이르러 나름의 규칙으로 삶을 이어갔고, 로라는 로건이 잠든 사이에 직접 차를 몰아 에덴으로 향했다. 로라가 잠든 로건을 조수석으로 옮기고 아무렇지 않게 차를 몰던 장면은 내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로라와 아이들이 지칠대로 지친 로건을 구원해 안식에 들게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자신들을 붙잡아 가두려는 이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는 점에서 <로건>의 뮤턴트들은 이민자를 직유하지는 않는다. 이민자들은 그들을 붙잡아 국경 밖으로 쫓아내려는 이들을 피해 국토 안에서 숨어드는 소수자들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 눈엔 뮤턴트들의 처지가 이민자들과 꼭 겹쳐보인다. 찰스와 로건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근처에서 숨어 살고, 아이들은 멕시코에 위치한 실험실에서 도망쳐 미국으로 왔다. 주연으로 나오는 로라는 스페인어를 주로 쓴다. 다른 아이들은 흑인이고, 아시아계고, 여성이다. 그러고 보면 상당히 직설적인 표현인 것 같기도. 어쩌면 두 처지가 완벽하게 상반된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역설적인 유사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일상으로부터 소거시킨다는 점에서는 같으니까. 찾아보니 많은 리뷰들이 이 지점을 언급하고 있으니, 내가 그리 잘못 본 건 아닌 것 같다.



찰스에서 로건, 다시 로건에서 아이들로 세대가 이어지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서사줄기다. 울버린-휴 잭맨이야기로 읽으면 이는 분명 울버린-휴 잭맨의 17년에 대한 리스펙트를 보내는 것이겠지만, 이민자의 서사로 읽으면 또 다른 얘기가 된다. 더 이상 스스로를 이민자로 정체화하지 않지만 뿌리를 거슬러 오르면 결국 모두가 이민자인 것이 미국인들 아닌가. 쇠락해서 뮤턴트로서 능력을 더 이상 제대로 쓰지 못하지만 여전히 찰스와 로건은 뮤턴트이고, 이들은 뮤턴트 아이들을 보고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게 외면하려고 했으나 끝내 로라를 외면하지 못한 로건의 복잡한 마음이 정확히 보여주지 않은가. 로건보다도 오래된 뮤턴트인 찰스가 로건에게 아이들을 도울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도 그렇다. 미국의 조상들이 오늘의 미국을 봤다면 꼭 찰스처럼 말했을 거라고 제작진은 생각했으리라. 결국 아이들-새로운 이민자들의 생존은 어른들-오래된 이민자인 미국인들이 연대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 나는 <로건>의 결말을 그렇게 읽었다.


물론, 2017년이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들은 또 다른 얘기로 읽혔을 것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생명력은 그렇게 끈질기다. 엑스맨 시리즈의 이야기는 그렇게 입체적이다. 내가 이 시리즈를 사랑하는 이유. 사랑하는 캐릭터 울버린이 영원히 퇴장한 것은 못내 아쉽지만, 그 퇴장이 더 없이 아름다워서, 마음이 나쁘지 않다. 고생했어요, 휴 잭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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