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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27. 2017

웨스트윙 5x19

웨스트윙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방영된 작품인 까닭에 작중 세계화에 대한 언급이 곧잘 나온다.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시원시원하게 리버럴의 논리를 펼치는 아론 소킨이 유독 멈칫하는 이슈가 바로 세계화다. 특히 눈에 띄는 흐름이 있는데, 시즌2~3에서 세계화에 대해 언급할 땐 '미국의 부를 위해 당연한 것'이라고 가볍게 치고 넘어갔지만 시즌5에선 '그것이 정말 당연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지점이다. 세계화의 추세를 고려할 때 그럴 법한 흐름이다. 초기에는 세계화의 폐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니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했고, 몇년이 지나자 그 폐해가 명징하게 드러났을 테니 부정적인 뉘앙스고 강해질 수밖에. 


5시즌 19화는 바로 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부각해서 다룬다. 세계화에 대한 리버럴의 번뇌. 조쉬가 인도와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에피소드인데, 백악관은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 일자리는 연간 3만여개로 추정됐으니,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하지만 체결 직전 드러난 대통령과 미국 통신업체의 이면 협의, 미국 내 프로그래머 1만7천명을 해고하고 인도 현지에서 그 인력을 충당하겠다는 것. 인도의 연봉이 미국의 4분의1 값이니, 국경이 개방됐을 때 자본가의 합리적인 결정인 셈이다. 세계화가 세계를 망쳐온 결정이기도 하고. 조쉬는 이 협의를 알지 못했고, '3만명의 일자리를 위해 1만7천명을 해고하는' 협정의 체스말이 되었다는 생각에 번뇌한다. 결국 비서실장 리오와 대통령을 찾아가 대화를 청하는 조쉬. 아래는 대화.


조쉬: 일자리를 보호한다고 약속했잖아요.

리오: 돌봐주도록 애쓴다고 했지.

조쉬: 그 말이 아니었잖아요.

리오: 이주 보조금을 주면 돼.

조쉬: 장례보험이라고 하던데요.

리오: 그것도 장례보험 아닌가?

조쉬: 논점을 바꾸는 게 좋겠어요. "노동착취에 대한 케이스" "9살짜리를 공장으로 보내시오" "될 대로 되라" 법이라고 하죠.

리오: 자넨 거래를 성사시켰고 그럼 된 거야. 맞바꾸기란 말 몰라? 1만7천을 잃은 대신 3만을 얻으면 돼.

조쉬: 사람들이에요. 추상적으로 말하지 마세요. 

리오: 어떻게 말인가? 노동자를 일일이 만날까? 컴퓨터 코드도 재검토하고 표시하란 말인가? 이건 국가경영일세. 추상적일 수밖에 없어. 

조쉬: 말은 쉽죠. 당신이 3천3백만명을 물먹인 게 아니니까. (*이 협정으로 10년간 3천3백만개의 프로그래머 일자리가 소각된다.)

리오: 자네도 마찬가지야. 이건 대통령의 안건이야.

조쉬: 약속도 대통령이 하셨으니 실장님이 깰 수가 없죠. 대통령께 가겠어요.


조쉬: 바로잡아야 합니다.

대통령: 창조적 파괴에 대해 얘기했지. (*조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 더 큰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 한다는 취지.)

조쉬: 약속을 했어요.

대통령: 그게 자본주의의 진화본질이야.

조쉬: 이건 경제이론이 아닙니다. 국민들과 제3세계 기업에 대한 우리의 충성심은요?

대통령: 그런 기업들에서 어린 아이들이 음식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어떤 일자리든 찾으려 하지. 운동화를 안 꿰매고 있으면 바에서 칵테일이나 마시고 있을까?

조쉬: 이건 달라요. 프로그래머는 중산층 직업이에요. 

대통령: 뭐가 달라? 개인적으로 알아서?

조쉬: 다른 건... 저와 각하가 5년 전 웨이퍼러 호텔에서 그 사람들을(*해고될 노동자들) 만났으니까요.

대통령: 나도 그건 아네. 그리고 나도 이론에 충실하고 싶어. 나도 동지가 다치는 건 싫다네.

조쉬: 그럼 말아야죠.

대통령: 어떻게? 미국 주위에 벽을 쌓아서 일자리를 지키고 새로운 직업은 만들지 말까?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만 해도 해고 못 시키는 법을 통과시킬까? 그럼 선거 때 대환영 받겠지. 

조쉬: 통신노조도 일리가 있습니다.

대통령: 그럼 자유무역을 옹호하되 직업훈련과 실직보험을 지원하지 않는 공화당과 일하는 게 더 나았겠나?

조쉬: 약속을 했습니다.

대통령: 11세기 때 위대한 바이킹 왕 '카누트'라는 사람이 있었지. 부하들이 자신의 한계를 알아주길 바라서 부하들을 바다로 내려가게 한 다음 파도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했지만 안 물러갔어. 누가 대통령에게 경제를 갖고 놀 권한을 줬나? 거기에 대해 논의하고 약간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이야. 하지만 노조에겐 진실을 말해야 돼. 

조쉬: 자유무역이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했잖아요.

대통령: 그렇게 될 거야. 그렇지만 단순한 문제는 아니란 말일세. 파도를 물러가게 할 수 있으면 좋겠지?

조쉬: 네, 그럼 좋겠네요.


이 대화의 내용이 극단화된 시대를 우리는 횡단하고 있다. 시리자든 포데모스든 오성운동이든 브렉시트든 트럼프든, 무엇 하나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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