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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29. 2017

<모아나>, <재키>

1.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봤다. 사실 외적 효용을 기준으로 영화를 비평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그 기준을 가지고 비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백 점짜리 영화. 이런 영화를 보고 자란 아이들의 의식이 어떻게 형성될지 정말로 궁금하고 기대된다. 아주 올바르고, 또 그러면서도 갈등적인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내용만 갖고 얘기해도 꽤 훌륭한 영화다. 특히 거의 내내 바다가 표현되는데, 그 청량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이맥스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서사적 인과에 그리 신경쓰지 않는, 즉 언제 어디서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조짐을 전혀 감추지 않는 지점도 좋다. 물론 애니메이션의 형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만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자유'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과적으로 모아나의 여행은 정말로 자유를 갈망해서라기보단 족장 후계자의 책임의식으로 '주체적이지만 동시에 이끌린' 것이었다. 한참 자유를 갈망하다가, 불가피한 이유로써만 마침내 떠남을 결심했다는 게 다소 설명이 되지 않는 느낌. 다시 섬으로 돌아와 정착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훌륭한 영화임엔 틀림없다. 막 내리기 전에 보기를 권함.



2.

<재키>. JFK의 부인이며 한때 미국의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재키'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감독들은 늘 JFK와 그의 죽음에 시선을 둬왔을 뿐, 그와 함께 시대를 살았고 그의 죽음을 바로 코앞에서 목격한 재키에겐 시선을 둔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때 꽤 기대했는데, 그러면서도 내 기대는 '재키의 시선으로 바라본 JFK의 죽음과 그 이후를 경험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암살 직후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몸소 겪고 거쳐오는 재키의 모습을 기대했달까. 이 영화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않았지만,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선사해줬다.


내내 재키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구성이 아주 흥미롭다. 취임 직후 백악관을 소개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달라스에서 잭 케네디가 암살당하는 날부터 일주일 동안의 장면들이다. 그런데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아주 적극적으로 거스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서일곱 개의 시간대에 일어난 일을 교차편집으로 속도감있게 보여주는 형식의 연출인데, 정말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숨 쉴 틈 없는 류의 소재가 전혀 아닌데도 그게 가능한 건 물론 탁월한 연출의 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주연인 나탈리 포트만의 힘인 것 같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보이면서도, 끝내 끊어지지 않고 버텨내는. 그 아슬아슬함을 나탈리 포트만은 그 누구보다 가장 훌륭하게 표현할 줄 아는 배우다. 어쨌거나 이런 연출방식은 재작년 개봉한 <맥베스>나 작년 개봉한 <스티브 잡스>의 느낌. 이런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제야 내가 알았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시선으로만 구성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꾸며내는 영화들.



'MTV 대통령'의 영부인이었고, 그 대통령이 죽은 지 일주일째까지도 영부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재키. 백악관에서 짐을 빼고 나가는 길에, 재키는 어떤 폐점한 옷가게에서 마네킹을 철거하는 광경을 본다. 너무 노골적이라 좀 아쉽기까지 한 이 장면의 메시지는 물론 재키의 백악관 삶이 마네킹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대통령에게 짐이 되지는 않으면서 얼굴마담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전통적인 남성 중심 정치에서 아내, 또는 영부인의 제1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래서 영부인은 대중에 대한 감각이 누구보다도 탁월하도록 훈련된다. 강박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 지점에서, 작중 가장 중심적인 갈등인 JFK의 추모식 준비 이야기가 주목된다. 정치적으로 지지받지 못하고, 또 가족(로버트 케네디)에게도 동의받지 못하는 '거창한' 추모행진을, 재키는 원했고, 끊임없이 거부당하고 설득당하면서도, 결국은 성사시켰다. 이제 재키는 마네킹이 아니다.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낼 것이다.


재키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노신부 역할을 존 허트가 연기했다. 다 보고 나오는 길에서야 오늘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 '서틀러'와 꼬리칸의 현자 '길리엄'으로 기억한다. 편안하게 잠들기를. 멋진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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