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Oct 06. 2016

그의 이름은 한준식이었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 보고오다

'자유 낙원'이라던 남한으로 탈북해 온 어떤 사람이 가장 먼저 가야한 곳은 '합신센터', 즉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였다. 그는 거기서 죽었다. 알려지기로는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고 한다. 거기에 가둔 자들이, 자신을 간첩으로 몰았다. 고문을 견디다 못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는 무연고자 공동묘지에 이름 없이 묻혔다. 흔한 비석도 없었다.


발표된 바 그의 이름은 한종수. 아니, 그는 한준식이었다. 발표된 바 그의 출생년도는 76년도. 아니, 그는 74년에 태어났다. 발표된 바 그는 간첩. 아니, 그는 간첩이 아니었다. 십여년 전에 본 뒤로 딸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그는 죽었다. 다시 북한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간첩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남한과 북한, 그 어느 곳도 그의 이름을 되찾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기리려 하지 않았다. 그를 되찾고 기린 건 해직 언론인, 그 역시 폭력의 피해자, 지금은 뉴스타파의 피디인 최승호였다. 한준식의 죽음을 딸에게 전해준 것도 그였다. 간첩으로 몰린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한준식의 누명과 죽음을 알게 된 그는 물어물어 한준식의 딸과 통화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고를 전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고르면서.


그 장면이 <자백>을 영화관에 걸리게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묻고 따지는 기자라는 직업을 한꺼풀 벗고 인간의 일을 하기로 결심한 바로 그 장면이.


<자백>은 대단히 좋은 영화였다. 뉴스타파 취재를 모은 것에 그치지 않고 한편의 스릴러로 재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다큐인 것을 감안하면 <제보자>가 만들어낸 플롯과 거의 유사했다. 하긴. 제보자의 모티브도 최승호 피디의 피디수첩이니 그럴 만하다. 훌륭한 영화이기에 이러저러한 얘기를 더 할 수 있겠지만, 우선 한준식씨의 이야기만 적어둔다. 최승호 피디가 당부한 것처럼 더 많은 20대들이 이 영화를 마주하길 바란다. 우린 국가폭력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미니즘 흉내 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