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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17. 2017

일본, 카산드라가 될 것인가.

2010년 일본정치론 수업에서 써낸 리포트. 개헌에 관한 한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이 1도 안 변한 걸 보면 나도 참. 어설프게 맑스 말 인용하는 건 스물한살에 겉멋이 들어서 그랬다.




 역사가 발전하는 경로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유사한 사건을 겪은 두 나라가 있다면, 두 나라의 역사는 같은 방향으로 흘러 갈 가능성이 크다. 비교정치학은 이러한 관점에 기초한다. 세계 각국의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하나의 일반화된 규칙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 이때서야 비로소 정치학은 사회‘과학’으로 승격된다. 아무튼, 비교정치학은 자국의 과거를 평가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계획하려는 사람에게 유용한 학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본보기가 될 만한 유용한 사례는 어떤 나라일까? 비교정치학에서 연구에 필요한 사례들은, 같은 제도를 통해 같은 결과가 도출된 나라들이거나, 같은 제도에서 다른 결과가 도출된 나라들이다. 하지만 한국의 사례를 이야기할 때는 같은 제도를 가진 나라보다는 비슷한 역사 경로를 통과한 나라를 찾는 것이 용이할 것 같다. 대통령제는 그만큼 드문 제도이고, 중임이 제한된 대통령제는 더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제도는 다소 다르나 비슷한 역사 경로를 거쳐 온 나라를 찾을 수 있다면, 이 나라를 비교 사례로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교재에서 보이는 대로라면, 일본이 바로 그 나라다. 특히 정치경제 측면에서 봤을 때 그렇다. 일본 정치 시계를 1993년 이전으로 돌려보자. 1993년 이전 일본의 선거제도는 SNTV(Single Nontransferable Vote) 시스템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독특한 선거제도는, 일본의 정치 상황과 어울려서 특이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SNTV는 한 선거구에서 3~5명의 당선자를 내는 중대선거구제를 근간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중대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르면 군소 정당들이 성장한다. 중대선거구제는 보통 사표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비례대표와 함께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SNTV는 ‘양도 불가능한 단일 투표제’와 결합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선거 제도는 소선거구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게 됐다. 즉 건강한 정당 간 경쟁 대신, 선거는 개인 간 경쟁(personalism) 구도로 형성된 것이다. 자민당(LDP)-사회당(JSP)의 양당 구도 또한 특이한 일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치의 ‘비극’이 몇 가지 발생한다. 파벌과 후원회(koenkai)가 대표적인데, 이 둘이 초래한 결과가 바로 ‘포크배럴(pork-barrel)정치’이다. 포크배럴 정치는 1970년대 이후 일본 정치의 핵심 작동 장치가 됐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국고는 말라가고(fiscal deficits), 인플레이션에 따른 거품이 형성됐으며(inflationary bubbles), 부패는 고질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inveterate corruption). 여기에 더해 다나카 가쿠에이는 ‘열도개조계획(remake the Japanese archipelago)’을 추진했으니, 가뜩이나 말라가는 국고와 늘어나는 빚이 그 속도를 더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결과는 말할 것도 없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도래는 이러한 요소들이 누적된 결과인 것이다. 일본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1993년 이후 정치개혁을 시도했다. 당연히, 개혁의 목적은 포크배럴 정치의 해체에 있었다. 따라서 그 기원이 됐다 할 만한 선거제도의 개혁이 선행될 필요가 있었다. 1994년, 기존 SNTV 시스템은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의 혼합형 선거제도(mixed-member majoritarian)로 대체됐다. 


 파벌은 급격하게 해체돼갔다. 기존 SNTV 시스템이 잉태해 낸 파벌 금권 정치는, MMM 시스템 하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간 것이다. 소선거구제 탓에 파벌들은 더 이상 당내 경쟁(intra-party competition)을 할 필요가 없었다. 후보의 공천은 당의 리더의 권한이 됐다. 선거의 승리가 더 이상 파벌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정당의 지원에 따라 결정되는 추세가 확산됐다. 선거는 이제 정당간의 대결로 나아갔다. 연이은 결과로 포크배럴 정치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일본 정치의 구습들이 하나둘 타파돼갔다.


 한국의 현재는 일본의 과거와 다르지 않다. 물론 한국의 선거제도는 약간의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소선거구제다. 일본의 현재 시스템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 결과로써 나타난 것들은 오히려 일본의 과거 SNTV 시스템의 그것과 유사하다. 한국에서 국회의원 선거는 호남과 영남 등의 양당 패권 지역이 아닌 지역에서 개인 간 경쟁의 모습을 띤다. 선거의 당락은 누가 더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는 공약을 내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내가 버스정거장을 짓는다면 상대는 지하철역을 지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선거 승리를 위해 공항을 지어야 한다. 일본의 구습인 포크배럴 정치가 그대로 한국에서 재현된 것이다. 2008년 12월 15일 매일경제의 기사에 따르면, 의원들은 지역구의 각종 사업을 위해 정부 예산을 ‘억’ 단위로 따 간다. 여당의 의원은 지역구에 경찰서를 짓기 위해 168억의 예산을 얻어 갔다. 야당도 지지 않는다. 지역구에 컨벤션을 짓기 위해 53억 원을 타 갔다.


이뿐인가? 정부는 ‘열도개조계획’에 질세라, ‘4대강 살리기’라는 전국토적 토건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에 들어가는 예산만 해도 22조 원이라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1970년대 일본의 모습과 비교해 예산의 낭비가 크게 차이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경제 불황 속에서 변화를 모색했으나, 여전히 경제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게 어언 20여 년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온몸으로 예언하고 있다. “너희 그런 식으로 가다가는 우리처럼 될걸?” 버블은 터졌을 때야 그 존재를 알게 된다고 했다. 올해 4월, 일본의 노무라증권이 한국 경제의 모습이 일본 버블 형성기와 닮아 있다고 경고했다. 아파트 시장을 보자. ‘불황’이란다. 새로 건립된 단지는 유령도시가 됐다. 버블은 이미 터졌는지 모른다. 


 늦지 않았다. 아니, 이미 늦었다면 지금이라도 변화해야 한다. 여의도에 한창 ‘개헌’이라는 봄바람이 불고 있다.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정치 체제의 개혁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라는 점이다. 선거제도의 개혁이 동반되지 않은 개헌은 허사일 뿐이다. 정당 간 건전한 경쟁을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주의 정치가 활성화되고, 불필요한 포크배럴 경쟁이 사라진다. 일본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뒤늦게 일본이 ‘카산드라’였다고 후회해봤자 그때는 정말로 늦다. 맑스가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일본의 역사는 비극이었다. 만약 한국이 일본의 ‘예언’을 무시하고 일본의 역사 경로를 뒤따라간다면, 한국의 역사는 조롱과 냉소로 점철된 희극이 되고 말 것이다. 변화의 시작, 지금이 적기다.
 


*** 카산드라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이 사랑했던 여자다.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예언 능력을 달라 했고, 아폴론이 그 능력을 주었다. 하지만 카산드라가 예언 능력만 받고 사랑은 받아들이지 않자, 화가 난 아폴론은 그녀에게서 ‘설득력’을 빼앗아갔다. 이후 카산드라가 미래를 아무리 정확히 예언해도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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