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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17. 2017

국민연금으로 조지자!

스터디 논술에서 쓴 것.



일본의 생명보험사 다이이치생명보험은 최근 자사가 지분을 가진 한 기업 주주총회에서 12년 이상 재임한 감사이사의 연임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한 사람이 장기간 감사를 맡으면 독립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거수기’로 불리던 생명보험사가 이처럼 의결권을 적극 행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 배경에는 2014년 2월 일본 아베 정부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이나 펀드운용사 등이 주주로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마련한 지침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은 K스포츠·미르재단에 대한 기업의 거금 출자였고, 끝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지원이었다. 현행 기업지배구조에서 기업총수가 단독으로 거금 출자를 결정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국민연금 사태는 역설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제공했다. 요컨대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막대한 기금규모를 바탕으로 재벌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어떨까.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모든 보유 주식에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해 구체적인 사후 대책 등의 지침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은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연기금이나 펀드는 다수의 기금이나 투자를 모아 형성된 까닭에 적극적으로 운용되기 어렵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자산운용사 50곳이 주주로서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이익만 꼬박꼬박 배당받을 뿐, 실제 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재벌 지배를 완화하는 여러 상법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이사회 안에 재벌총수를 견제할 장치를 마련한다는 정도라 근본적으로 기업지배구조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연금은 일종의 우회로인 셈이다. 국민연금은 투자 대기업 대부분에서 1대·2대 주주의 자격을 갖추고 있어,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면 실질적으로 대기업을 견인할 수 있게 된다.


청년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약자 고용 확대 등 대기업이 사회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역할을 국민연금이 맡아야 한다. 이러한 개입을 원치 않는 기업주라면 투자액을 획기적으로 늘려 자기지분을 확보해야 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재벌들의 비정상적 지배구조 자체가 개선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비상식적 기업지배구조와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온 국민이 확인한 지금이 변화를 시작할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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