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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19. 2017

말하라, 계속 말하라, 끝없이 말하라

2015년 하반기에 적었던 글.



1.          

이기려면 상대의 프레임에 걸리지 말고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 라는 말은 당연히 옳지만, 현실 권력관계에서 그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개 프레임을 까는 정부-여당은 더 강력한 영향력과 더 많은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이 내세우는 프레임은 그것들에 기반해 더 빠르고 더 멀리 뻗어가고, 이쪽이 내세우는 프레임은 그보다 훨씬 느리고 좁게 뻗어간다. 프레임 대 프레임의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것. 


애초에 프레임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영향력의 문제라는 거다. 이럴 때는 상대 프레임을 논박하는 게 꼭 불필요한 건 아니다. 미디어가 반응하는 것은 '아직' 영향력을 갖지 못한 새로운 프레임이 아니라, 충분히 영향력을 갖게 된, 즉 대중이 일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기존 프레임에 대한 영리하고 즉각적인 (그리고 선정적인) 반박이다. 그냥 반쯤은 농담삼아 하는 말이긴 하지만,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이 한국에 미친 악영향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뭐만 하면 다들 프레임 프레임. 다들 불세출의 전략가인 것마냥, 누구도 일개미는 자처하지 않으면서. 좀 우스울 때가 가끔 있다. 물론 나도 그러지만...


2.

사실 어떤 프레임을 내세우냐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나 꾸준히, 얼마나 더 많이 우리의 주장을 말하느냐다. '대세'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것이 대세라고 대중이 생각할 때 대세가 된다. 불운하게도 정치에 무관심한 다수 대중은 한편으로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빠르게 입장을 정리하고 넘어가길 바란다. 물론 생활에 치여 아무런 입장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더욱 많겠지만, 적어도 '여론'에 반영될 만한 대중들의 의사는 그렇다. 그럴 때 그들이 입장을 정리하는 기준은, 지금 무엇이 대세인가다. 이는 1번에서 말한 바 다시 '미디어'의 문제로 연결되는데, 결국 미디어가 대중의 의사를 결정짓는다는 서글픈 결론을 내리게 된다. 진보의 미디어는 너무나 약하고, 보수의 미디어는 너무나 강하다. 대중이 무엇에 더 자주 노출되는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진보가 뭘 해야겠나. 말을 해야 한다. 갖고 있는 미디어를 총동원해서. 사소하게는 자기 주변 친구들에게 말할 수 있는 창구를 활용해야 한다. 페이스북 말이다. 보수가 쥔 미디어-즉 텔레비전, 신문-를 보지 않는 대중들이 노출되는 유일한 미디어는 어쩌면 페이스북이다. 그곳 타임라인의 지분을 모조리 쥐어버리면 될 일이다. 물론,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언어로.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하다. 활동을 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말할 때 그것이 자신의 욕구를 분출하는 방식으로 언어화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용하다. 자신의 말이 가닿을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1번에서 말한 바, 프레임이니 뭐니 하는 말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내부 담론'이어야 할 것이고, 대중을 향한 말은 가장 기본적인 말이다. 흔히 좌파들이 잘 하지 않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어선지, 기본적인 말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선지, 너무 쉽게 첫 단계를 건너뛰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허공에서 싸운다. 물론 나도 종종 그런다. 그러나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그 말이 대세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더 많이 말하라. 듣는 사람이 없어 보여도 말하라. 지칠 때까지 말하라.


3.

나는 세월호 참사 초반에는 오히려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지 않았다. 국민들 누구나 세월호를 안타까워 하는 상황에서 노란리본을 다는 것은 단지 나 자신의 애도를 반영하는 것밖엔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내가 애도하고 있음을 남에게 굳이 전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노란리본을 가방에 달기 시작한 것은 특별법 정국이 되어서다. 그러니까 2014년 9월, 10월 그쯤. 그때부터 국민들의 '여론'이라는 것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노란리본을 다는 것이 정치적 행동이 될 수 있었다. 자, 여기 세월호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특별법을 지지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네가 이 노란리본을 보고서 감히 함부로 떠들어댈 수 있는가. 뭐 그런.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내 가방에 달린 노란리본을 보고서 "아직도 세월호야?" 하고 단 한번이라도 생각하게끔 하는 것, 그것이 내가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유다. 그 사람이 노란리본이라는 기표를 보고서 세월호라는 기의를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랬다는 것은 결국 당신도 아직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노란리본을 계속 달고 있는 것, 다시 말해 '계속 말하는' 것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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