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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29. 2017

기억의 루트, 기억을 공유하는 길


진실의힘에서 주관한 '기억의루트'에 갔다온 감상. 

소식지에 기고한 글이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기억의 루트’라는 말이 낯설었습니다. 옛 안기부 터를 답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약간 의심(?)스럽기도 했죠. 그래도 얻어가는 게 하나쯤은 있겠거니, 그 정도의 기대만 가지고 토요일 아침 충무로로 향했습니다. 제가 이전까지 진실의 힘 행사에 참여해본 적이 없었던 탓에, 거의 대부분 처음 보는 분들이었어요. 그리고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사실 한국같이 매년 매일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는 나라에서 수십년 전 과거사 문제가 끈질기게 기억되고 또 젊은 사람들에게 계승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뭔지 모를 유대감 같은 게 마구마구 솟기도 했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고,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데 말이죠!


 아무튼 낯설지만 정겨운 사람들과 조금씩 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족들이 면회하러 모였다던 옛 주자파출소 터를 지나고 안기부장들이 살았던 공관을 지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된 ‘기억의 터’를 산책할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제 의심은 덜 걷힌 상태였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나눠주신 이야기들은 물론 유익했지만, 사실 그런 이야기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니까요. 박동운 선생님 본인의 이야기가 좀 더 듣고 싶었습니다. 그 갈증은 발걸음이 깊어질수록, 그러니까 옛 안기부 본관이었던 서울 유스호스텔, 그리고 마지막 장소인 옛 제5별관, 지금의 서울시청 남산청사로 다가갈수록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후대 사람이 역사적 현장을 보고 감각하는 방식은 대충 이렇습니다. 이곳이 예전에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고, 시간이 흘러온 와중에도 여전히 흔적이 남아있는 유물을 관람하고, 이곳이 보여주는 역사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지를 느낍니다. 저도 서울 유스호스텔에 가기 전까지는 안기부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과 그것의 흔적, 그리고 그것이 제게 주는 의미를 구성하는 식으로 답사를 따라갔어요. 그런데 서울 유스호스텔 이후부터는 달라졌습니다. 묵묵히 동행하시던 박동운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셨죠. 그때서야 ‘기억의 루트’라는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박동운 선생님과 송소연 이사님은 현장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봤고, 또 감각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유스호스텔과 방재센터 건물을 보면서 이곳으로 잡혀오셨을 때의 기억과 고문 받을 때의 기억, 취조 받을 때의 기억을 말씀해주셨어요. 서울시청 남산청사로 들어가는 언덕길이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를, 선생님들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저는 끝내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남산타워의 불빛도 남산에 감금된 경험이 있는 사람의 기억에서는 ‘도청장치가 작동되고 있다는 느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취조실로 내려가는 계단의 깊이가 어떤 공포가 될 수 있는지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송소연 이사님이 전해준 말입니다. 22일 동안 갇혀있다 나오던 길, 남산 아래에 동국대학교가 있다는 걸 처음 알고 배신감을 느꼈다는 겁니다. 자기는 이 감금이 언제 끝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남산 아래에서는 대학생들이 떠들고 노는 평범한 일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거죠. 남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까마득히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아무런 관심도 없는 채. 네, 저도 ‘기억의 루트’를 선생님들과 함께 걷지 않았다면 그런 감각들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기억의 루트’의 의미가 선생님과 같은 안기부 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길이면서,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기억을 공유하는 길이라는 것을 마지막에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보기관의 위협을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없는 요즘, 청년들에게 ‘남산’은 농담 소재 중 하나입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얘기를 하다가 문득 “야, 그러다 남산 간다”라면서 깔깔 웃는 거죠. 잡혀가지 않을 걸 알기에 농담이 되는 말입니다. 적어도 저는 앞으로 이 농담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남산’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두려운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박동운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고문당한 기억은 이제 괜찮아요.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허위자백을 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끄럽고 괴롭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가 꺼려졌습니다.” 아직도 한국 사회엔 허위자백의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모두 ‘남산’에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까지는 저 농담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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