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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pr 02. 2017

페이크뉴스는 정치의 실패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스터디에서 쓴 글.


페이크(fake) 뉴스의 범람이 뜻하는 바에 대해 논하되,
기존 저널리즘의 대응방안을 논의 내용에 포함하라


명명방식은 때때로 사물에 대한 인식을 결정짓는다. ‘일곱빛깔 무지개’라는 명명방식이 색과 색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색깔들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우리의 인식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페이크 뉴스’는 뉴스라는 명명방식 때문에 이 현상의 원인이 언론에 있는 것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틀린 인식이다. 페이크 뉴스가 범람하는 원인은 정치의 실패에 있다. 그렇기에 그 대응방안 역시 정치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다.


페이크 뉴스의 범람은 기존 언론의 신뢰도가 무너진 결과라는 진단은 적확하지 않다. 대중이 페이크 뉴스를 믿는 것은 그것이 ‘뉴스’의 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내용이건 ‘언론’에 보도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언론 자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여전히 높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확증편향이다. ‘진짜 뉴스’에 보도됐더라도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은 믿지 않지만, 믿고 싶은 내용이라면 처음 들어본 ‘페이크 뉴스’에 보도된 것이라도 덜컥 믿는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기존 언론이 사용하고 있는 정치의 문법이 대중의 문법과 지나치게 괴리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페이크 뉴스 문제가 유난히 부각됐다는 사실은 징후적이다. ‘트럼프 현상’의 원인이 뉴욕·워싱턴 중심의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감이라는 진단을 빌리면, 결국 페이크 뉴스도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엘리트 언론이 사용하는 기성정치의 문법을 대중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페이크 뉴스에 대한 기존 저널리즘의 대응도 언론 자체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언론 매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상수이지, 페이크 뉴스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특별히 논의돼야 할 것은 아니다. 정치에 대한 저널리즘의 관점이 변수다. 크게 두 가지 접근방식이 모두 필요하다. 정치를 다루는 저널리즘의 문법을 바꾸는 단기적인 방식과, 정치를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수준을 높이는 장기적인 방식이다.


저널리즘은 이제 구름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엘리트가 아닌 대중이 정치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맞춰 저널리즘의 언어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기존 저널리즘의 언어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라는 것을 대중이 인식할 수 있을 때 페이크 뉴스는 불필요해진다. 한편 전반적인 정치의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대중이 페이크 뉴스가 거짓임을 분간할 수 있는 정도의 정치적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저널리즘이 시민 대상 정치교육에 대한 담론을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확산시켜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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