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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un 12. 2017

야당이라는 단어의 허망함

다당제 시대, 정치기사의 문법을 새로 고민해야 할 때다. '野'라는 단어에 대한 것이다. 오랫동안 유지돼온 사실상의 양당제 의회에서는 야당이라는 말이 그다지 오해될 일이 없었다. 제1야당이 곧 야당 그 자체였으니까. 제2, 제3의 야당은 교섭단체를 꾸리지도 못하거나, 꾸렸어도 캐스팅보트를 쥐지 못하는 무의미한 의석만을 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野는, 소수정당을 무시하는 용어라는 당위적 비판이 가능하지만, 어쨌든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단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물론 제1야당과 제2, 제3야당의 의석수는 여전히 차이가 크지만, 전체 구도에서 제2, 제3야당의 의미가 압도적으로 커진 상황이다. 제1야당이 여당의 정책에 반대를 천명해도 제2야당이 찬성하면 법안은 과반 지지로 통과될 수 있다. 제3야당까지 찬성하면 패스트트랙 처리도 가능한 상황이다. 한편 제1야당은 여지껏 그래왔듯 중도적인 정당도 아니고 오히려 극단에 가까운 구성이 돼버린 마당이다. 제1야당은 더 이상 야당 그 자체가 아니다. 야당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언론들은 관성적으로 여와 야를 이분법적으로 나눈 헤드라인을 구사하고 있다. 예컨대 오늘 MBN의 문재인 대통령 시정연설 보도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여당 '기립박수'·'환호' vs 야당 '항의시위'>. 기사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도 박수를 쳤지만 ...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 항의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이다. '항의시위'를 한 야당은 자유한국당뿐이지만 헤드라인은 '야당'이라는 워딩을 사용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제목이다.



이런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언론들은 '보수야당'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충분하지 않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보수야당인 것은 분명하다. 언론들도 이 두 정당을 표현하려는 목적으로 보수야당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보수야당인가, 진보야당인가? 지난 대선 정국을 근거로 삼자면 국민의당 역시 명백한 보수야당이다. 지금으로서는 '보수야당'이라는 명명은 전혀 적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단어를 쓸 때 정확하게 헤드라인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제한적인 길이의 헤드라인에 조잡하지 않게 최소 3개 정당의 입장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취업시켜주면 저도 같이 고민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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