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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Sep 01. 2017

양영순 작가의 진화.

넬, 아그네스, 메이, 가야.

공자, 가우스, 가이린, 테이.


공자 이전까지의 <덴마>에서 여성의 위치는 남성-보호자에 의해 결정되는 게 보통이었다. 여성 캐릭터들은 평면적이고 나약했다. <식스틴>에서 넬이 그렇고, <캣냅>에서 아그네스가, <God's lover>에서 메이가 그렇다. 여기까지의 여성에 대한 묘사는 도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야는 좀 달랐다. 그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이 직접적으로 언급했듯, 그 힘을 사용해 '야망'을 펼치기보다 그저 '연애'를 하고 남성을 '내조'하는 데 안주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남성의 시선으로 주조된 전통적 여성관이다. 그러던 양영순 작가는 어느날 반성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글(https://brunch.co.kr/@budnamuu/10)을 적은 바 있다. 여성이 올 자리에 '사람'을 넣어보라는 조언을 듣고서 자신의 묘사에 문제가 있단 걸 깨달았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는 <The Knight> 때부터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도입한다. 공자와 가우스가 그들이다. 둘은 초인이 즐비한 세계관 안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다. 아니, 공자는 아예 자타공인 세계관 최강이다. 이들은 자기 삶을 직접 개척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많은 독자들이 이 변화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공자와 가우스가 그럴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그들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힘이 없는 여성ㅡ넬, 아그네스, 메이ㅡ는 여전히 같은 삶을 살고, 힘이 있는 여성들만이 주체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닌가. 어쩌면 공자와 가우스는 그저 여성의 몸을 한 남성(혹은 중성) 캐릭터가 아닌가.


이 같은 의문(-혐의)은 <다이크>에서 깨끗이 씻겨 없어지고 있다. 다이크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지금 이야기의 핵심은 테이와 가이린이라는 두 여성이다. 테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퀑이 아니다. 능력이 없다. 용기와 의지와 정치력으로 늑대굴 활동을 하면서 반란을 도모하고 블랭크들의 협조를 얻어낸다. 가이린은 아예 몸이 계약으로 묶인 노예신분이었고 이제는 인질이 됐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통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도모한다. 자기 삶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다분히 노골적인 말들도 열심히 생각으로 중얼거린다. 가이린의 도모는 실패했지만 작품에서의 묘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이린은 여전히 주체적이다.


테이는 '남성적'이지 않다. 절망감에 울기도 하고, 하여튼 공자와 가우스처럼 그려지지는 않는다. 도덕적 고민도 한다. 가이린은 심지어 (그가 동의하지 않는) 자기의 여성성을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남성 독자가 많은 <덴마>의 특징상 가이린에 대한 묘사는 '땍땍거리고 짜증나는 여자'로 인식될 수도 있을 텐데, 놀랍게도 댓글에 그런 반응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양 작가의 묘사가 그만큼 조심스러워졌다는 방증이다. 마침내 등장한 '복잡한' 여성 캐릭터다. 이제 이 둘이 다이크라는 남성-주인공의 위치를 결정 짓는다. 다이크는 '테이의 남친'이라서 조직 내에서 배제당하고, '가이린의 보디가드' 역으로만 출연분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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