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Apr 23. 2018

지속가능한 비영리조직-하기

어쩌다보니 스무살 이후로 지금까지 10년간(군대를 제외하고) 계속 이런저런 비영리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 항상 상근자 없이 운영되는 100% 무급 조직들이었고, 지금 직장도, 나는 월급을 받지만, 100% 무급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돈을 안 받는 조직은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중요하고, 동기부여는 그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늘 후회와 반성과 실패와 미안함으로 가득한 세월이었다. 이렇다 보니 '비영리조직-하기'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겼는데, 언제나 조금씩 더 나아지려고 애썼지만, 더 나아진 적이 있었는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좋은 조직을 만들고 좋은 리더와 좋은 구성원들의 협업으로 매끄럽게 잘 굴러가면서 성과를 만드는 조직을 보는 게 내 꿈 중에 하나이다. 아래는 그 10년 동안 나름대로 세운 원칙들을 두서없이 주절댄 것들. 큰 원칙들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그래서 쉽게 놓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원칙들이다. 비영리조직을 결정적으로 와해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라고 생각해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돈도 안 받으면서 열정만으로 뭉친 것이 비영리 조직의 포인트이고, 그래서 오직 서로에 대한 신뢰 위에서만 지속가능한 비영리조직-하기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이야기들은 내가 속한 모든 조직의 이야기이지만, 어떤 특정한 조직의 이야기는 아니다. 비영리조직이라면 어디나 겪고 있는 문제들일 테고, 전혀 특수하지 않은 이야기들일 것이기에. 저격 같은 게 아니라는 말씀.)



- 리더 없는 비영리조직은 가능할까? 나는 회의적이다. 비영리일수록, 즉 구성원들이 100%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없는 조직일수록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리더 없는 조직이 성공하려면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러기란 영 쉽지 않다는 게 경험적 사실이다.


- 기획한 사람들이 무관심한 사업에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자신이 주도한 사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단체가 기획한 사업이라면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또 그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구성원이 지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 단체 채팅방은 일원화돼야 한다. 친목 목적으로 별도의 방을 만드는 일이 있다면 그 방의 존재를 다른 구성원들도 인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단체의 결정이 이뤄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합의되지 않은, 마치 몰래 한듯한 방 나누기는 언젠가 반드시 전달사고를 만들어내고, 한 번의 전달사고는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구성원 간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고 만다.


- 회의의 단계는 아이디어 모으기, 결정, 실무, 평가로 나뉜다. 아이디어를 모을 때 결정을 내리려고 조급해하면 퀄리티를 포기하게 되고, 결정해야 할 때 아이디어를 내면 대외적 신뢰를 잃게 된다. 실무할 때 평가를 하려 들면 구성원들은 질려버리고, 평가를 생략한 비영리조직은 그저 눈앞의 사업을 해치우기 위한 관료적 조직으로 전락하게 된다.


- 요일과 시간을 고정한 정기회의는 모든 일정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정말로 부득이한 이유가 아니고서는 이 일정을 존중해야 한다. 존중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이 날에 갑자기 다른 약속이 잡혔다는 이유로 회의에 불참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간의 짜증이 싹트고("나는 한가해서 이러고 있냐?") 리더는 무력해진다("이 조직은 나한테만 중요한 건가?").


- 당연한 말이지만, 지각을 당연시해선 안 된다. 지각할 것 같으면 약속시간보다 앞서서 미리 알려야 한다. 무슨 이유로 늦는지, 얼마나 늦을지, 회의를 미리 진행해도 될지 아닐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은 모든 것의 최우선이다. 회의 바깥에서 이 결정을 취소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모든 구성원이 있는 곳에서, 혹은 모두의 동의 하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특정인의 판단이 (심지어 리더조차도) 전 구성원의 합의보다도 우선된다는 뉘앙스를 다른 구성원들에게 주는 것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존중받지 못하면 비영리조직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기가 줄어든다.


- 자신이 불참한 회의에서 정해진 결정은 아무리 못마땅해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구성원들이 부러 시간을 내 참석한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 결정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고 해도 구성원을 탓하면 안 된다. 그것은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 당신의 책임이기도 하다.


-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두가 회의하고 모두가 결정하여 모두가 실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팀이 나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너의 일', '나의 일'이 되어선 안 된다. 일은 따로 하되 상황은 모두와 공유해야 한다. 따로 또 같이. 회의에서 각자 팀의 결정사항과 예정사항을 공유하고, 서로간의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주고 받는 것은 생산적일 뿐더러 민주적인 운영방식이다.


-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반드시 모두가 의견을 낼 필요는 없다. 또 더 잘 아는 사람의 의견과 잘 모르는 사람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리더나 담당자가 채팅방에서 모두에게 의견을 구했을 때 최소한의 반응을 보이는 것, 즉 '너는 혼자 하고 있지 않다'는 사인을 보내주는 것이 중요하다. 동의한다거나, 판단을 못하겠다거나, 그런 반응이라도 필요하다. 서로가 지치지 않기 위한 길이다.


- 자신이 그 조직에 참여하고 싶은 동기가 소진됐을 때, 혹은 더 이상 참여할 여유가 없다고 느낄 때, 그래서 참여율이 저조해질 때, "그만둘게요"라고 말하는 게 어려워 억지로 멤버쉽을 유지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못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조직이 (그리고 그 조직의 목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자신의 고민을 공유하고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정중하고 공식적인 말로써 탈퇴(-또는 휴식)를 표현해야 한다. 잘 헤어지는 경험이 우리에겐 너무 부족하다. 연습할 수 있을 때 과감하게 연습해야 한다.


- 더 생각나면 보충할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영순 작가의 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