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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pr 23. 2018

군복 입은 노인들

작년 3월에 쓴 글을 조금 업데이트했다.



그놈이 정말 싫었다. 나보다 반년 먼저 입대했으나 나보다 한 살 어렸던 그 선임. 온갖 이해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이었다. 걔는 후임들 괴롭히는 걸 그저 재미로 하는 것 같았다. 온갖 '병사간 부조리'를 몸소 실천했다. 그러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후임들이 그를 싫어했다. 재수 없게도 나는 그 선임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보직이었고(그나마 재수가 좋아서였는지 같은 분과는 아니었다), 같은 시간에 근무하는 날이면 바짝 긴장한 채로 근무에 들어가곤 했다. 


걘 왜 그랬을까. 그때는 그냥 군대 온 게 너무 억울해서 그러나보다 싶었다. 사람이 억울함을 내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면 바깥으로 분출하기 마련이니까. 그냥 그런 억울함의 발로인가 싶었다. 뭐, 나도 억울했으니까 그 억울함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 억울함을 왜 똑같이 억울한 애들한테 풀어대냐고? 여기서부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랬던 걔가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던 건 오히려 걔가 전역한 직후의 일이었다. 분명히 전역했는데, 나 같으면 한동안은 군대 쪽으로 눕지도 않을 것 같은데, 걔는 자꾸만 부대로 전화를 걸어왔다. 걔는 자기 딴엔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한 후임들을 불러달라고 행정실 당직병에게 요청해 왔고, 때때로는 사무실에도 전화 걸어서 시덥잖은 말들을 건네왔다. 아마 전역 직후 거의 한 달 동안은 계속 그랬던 것 같다. 


걘 왜 그랬을까. 물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겠으나, 문득 군대라는 공간이 그놈 같은 평균적인 남성에게 어떤 자존감을 제공한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걔는 나보다 한 살 어렸으니 스무 살에 입대했다. 또 학력은 낮았다. 사회생활을 하고 올 틈이 거의 없었을 테고, 학력이 주는 알량한 자존감도 가져본 적 없었을 테다. 그런데 군대는 묘하게 기회의 평등을 이룬 공간이라서, ‘짬’이 낮을 땐 인간 이하 취급을 받다가도, 어쨌거나 버티고 버텨서 ‘짬’을 먹으면 어느새 인정받고 있다. 어떤 후임이 어떤 ‘어리바리한’ 선임에게 존중을 보이지 않으면, 그걸 보던 더 높은 선임이 "얘가 아무리 어리바리해도 너보다 선임인데 짬 무시하냐?"고 뭉개주는 그런 구조가 성립하는 것이다.


몇 개월 구르다보면 자연히 진급하고, 십몇 개월 구르면 명실상부한 고참이 된다. 진급한다는 건 사회 용어로는 승진한다는 것일 텐데, 이로부터 비롯되는 ‘인정받은 느낌’은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승진하면 연봉이 오르는 것처럼, 선임에 의해 ‘통제’ 당했던 것들이 진급하다 보면 조금씩 해제되는 인정문화도 음지에서 알게 모르게 작동한다. 저학력의,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20대 초반 청년에게 이런 인정은, 사회에 나가서도 아마 당분간은 받아보기 어려운 무엇이었을 것이다. 걔는 이런 인정이 그리워서 전역해서도 부대로 곧잘 전화했던 것 아닐까? 자기를 ‘높은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최초이자 최후의 기억, 군대. 물론 그저 짐작일 뿐이지만.


이미 5년도 더 지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건 어떤 군복들을 봐서다. 탄핵 정국부터 지금까지도 부지런하게 거리를 휘젓는, '참전용사'에게 수여되는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서서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이용해 지하철로 광화문에 왔을, 군복 입은 노인들. 그들은 왜 하필이면 군복을 입고 거리에 나설까. 왜 그들은 군대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걸까. 그들이 자꾸만 옛날 산업화 시절 얘기를 하는 것이, 자꾸만 베트남 전쟁을 영웅담처럼 얘기하는 것이, 참전용사임을, 해병대나 특공대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며 군복을 입는 것이, 걔가 느꼈을, 또 수많은 ‘걔’들이 느끼고 있을 그 감정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인정받던 영광의 시절. 초라한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나 달랐던 그 시절. 


그리워하지 않을 까닭이 없지 않을까? 그 시절을 상징하는 것들을 자랑스럽게 간직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국가는 그들에게 ‘전쟁에 참여해 용감하게 싸웠다’며 모자를 줬다. 국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공로’를 기리며 그들에게 훈장을 줬다. 국가는 그들이 ‘시대의 산업역군’이라며 치켜 세웠고,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국가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리고 국가 그 자체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깟 상징물들 제외하면 국가가 해주는 것이 별로 없고,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연금 늘린다던 공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지만 말이다.


언제 와해돼도 이상하지 않을 탑골공원의 바둑모임이 유일한 소속이었던 그들이, 매 주말마다 모여서 서로를 확인하고 똑같은 태극기를 흔들며 공통된 구호를 외칠 수 있는 모임이 있다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군복 입은 노인들‘은 실패한 국가의 풍경이다. 한 인간이 옛 시절을 회고하는 것 말고는 자존감을 채울 수 없고 소속감을 가질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낸 그늘. 그들이 단지 살아있는 것 이상의 무엇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돼야 할 기초연금은 도리어 삭감됐고, 그들이 몸담고 있던 가족 공동체는 진작에 무너져 다수의 노인들이 외로이 살아가고 있다. 정년이 되어 은퇴했거나 아니면 그보다 이르게 해고당했기 때문에 노동을 통한 자존감 획득도 불가능하다. 


이 군복 입은 노인들을 현실로 돌려보내는 것은 조롱과 비난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청년들의 적이 아니다. 청년들의 자존감도 빈곤하다. 그리고 그건 청년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노인들의 빈곤한 자존감이 그들만의 탓이겠는가. 청년과 노인이 세대는 다를지라도 마음의 문제는 그리 다르지 않다. 그들이 왜 군복을 입고 있는지부터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추억 속 국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국가’에 기꺼이 몸을 의탁할 수 있도록 국가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그들의 군복을 벗길 수 있는 건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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