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끝에서 집을 외치다
배달음식을 시킨 날은 설거지가 없다.
그날도 도윤은 치킨 뼈를 박스째 밀어 넣고 거실 소파에 쓰러졌다.
사이드로 시킨 콘샐러드, 콜라, 먹다 남은 무까지 비닐봉지에 모아 넣었다.
부부는 리클라이너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은 여전히 비슷했다.
부동산 투자, 수도권 아파트 시세, 아기 이름 추천, 집 구경 브이로그.
전세 만기가 다가오면서 부부의 최대 관심사는 부동산이다.
도윤: “배불러…”
혜정: “콜라 남았는데?”
도윤: “버리긴 아깝잖아, 냉장고에 넣을까?”
혜정: “넣어 봤자 안 마셔.”
도윤: “그럼…”
혜정: “그냥 버려.”
혜정은 콜라 컵을 식탁에 올려놓고, 슬리퍼를 끌며 거실을 벗어났다.
얼마 후, 도윤의 휴대폰에 문자가 떴다.
[신한카드] 7월 결제 예정금액 2,926,300원
도윤: “어… 뭐야.”
카드 내역을 누르자, 앱 로딩 화면 위로 대출 광고가 끈질기게 떴다.
‘금리인하로 최저 연 4.2%’,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안내’.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믿기 힘든 금액에 배달 앱을 켰다.
도윤: “우리 이번 달에 배달비만 10만 원 넘게 썼더라.”
화장실에서 칫솔질 소리가 멈췄다.
잠시 후, 입가에 거품이 묻은 혜정이 얼굴만 쏙 내밀었다.
혜정: “그렇게 많이 시켰어?”
도윤: “응. 음식값 빼고 배달비만.”
혜정: “에이~ 설마. 그래도 우리 가끔 할인쿠폰 쓰잖아”
도윤: “쿠폰 받아서 2천 원 깎아도 어쨌든 배달비 2천 원 내는 거니까”
혜정: “그건 그렇지.”
둘은 멋쩍게 웃었다.
다만, 그 위기는 아주 작고 반복적인 것이어서, ‘넘겼다’는 감각조차 들지 않는 채 계속되고 있었다.
도윤: “우린 요리를 안 하니까.”
혜정: “그렇지. 장 봐야 하고, 반찬 남으면 버리고… 그리고 설거지 있잖아.”
설거지를 피하고자 배달을 시켰고, 배달을 하면서 돈이 샜다.
돈이 새자 또 요리를 고민했지만, 다시 설거지를 떠올렸고, 결국 다시 배달을 시켰다.
그것은 배달의 윤회였다.
다음 날 아침, 도윤은 5호선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자마자 부동산 앱을 켰다.
‘목동’, ‘학군지’를 검색하니 가격은 여전히 높았다.
아니, 3개월 전보다 1억이 올랐다.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지금 사도 고점일 텐데, 대출까지 받아야 해?’
그건 요즘 가장 자주 하는 말이자,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말이었다.
퇴근길,
도윤은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메시지를 받았다.
[카톡] 준혁: 사진
도윤은 준혁의 이름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얘 드디어 샀구나.’
아직 가구 하나 없는 새 아파트 거실 사진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메시지가 왔다.
[카톡] 준혁: 드디어 내 집 샀어!!
도윤은 카톡을 몇 초간 내려다보다가, ‘축하해!!’라고 쓸까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이모티콘 하나를 눌렀다.
웃는 곰돌이였다.
그 뒤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준혁도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퇴근 후.
혜정은 그날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혜정: “오늘은 뭐 시켜 먹을까?”
도윤은 배달 앱 대신 카드 내역을 열었다.
도윤: “이제 배달 좀 줄이자. 적금 붓는 것보다 배달 줄이는 게 더 빠르겠다.”
혜정: “맞아. 근데 귀찮아서 자꾸 미루게 돼. 내일부터 도시락 쌀까?”
도윤: “네가 도시락을?”
혜정: “아니, 오빠가.”
둘은 웃었다.
혜정: “그리고 내 것도 부탁해.”
그 웃음은 진심이면서도, 포기 같았다.
그날 밤, 혜정은 냉장고를 열었다.
지난 주말에 삼겹살을 싸 먹고 남은 상추가 시들어 있었다.
두부는 유통기한을 넘긴 지 이틀째였다.
‘내일부터 요리하자’는 결심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거실에 앉아 있는 도윤은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이번엔 부동산 앱이 아니라 은행 앱이었다.
‘주택담보대출 한도 조회’ 잠시 멈칫하다가, 결국 조회 버튼을 누르지 않고 화면을 껐다.
자정.
각자의 화면 속에 파묻힌 두 사람.
도윤은 ‘2025년 부동산 전망’을, 혜정은 ‘워킹맘의 식비 절약 노하우’를 보고 있었다.
침묵 끝에, 도윤이 중얼거렸다.
도윤: “우리, 잘 살고 있는 거지?”
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는 ‘그래’라기보다 ‘그럴 거야’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