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끝에서 집을 외치다
동희: “뭐 하세요?”
점심시간, 휴게실로 들어온 후배 동희가 물었다.
도윤은 잠시 머뭇거리다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마라탕, 1인분, 13,500원. 배달비 별도.
도윤: “요즘엔 이게 제일 편하더라고요.”
동희: “저는 오늘도 도시락이요. 와이프가 요즘 닭가슴살 김밥에 꽂혀서…”
동희가 도시락 뚜껑을 열자,
김밥이 반듯하게 잘려 있고 옆엔 삶은 계란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옆 사람도, 그 옆 사람도 도시락을 먹고 있다.
다들 직접 싸 오거나 아내표 건강식.
도윤은 슬쩍 휴대폰을 뒤집었다.
배달앱 찜 목록에는 치킨, 분식, 덮밥류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그의 점심은 ‘건강’보다 ‘속 편함’에 가까웠다.
배달음식과 함께한 4년.
우리 부부의 체중은 은행 예금처럼 차곡차곡 불어나 있다.
결혼 전 보다 도윤은 12kg, 혜정은 17kg이 늘었다.
통장 잔고는 그대로인데 몸무게만 복리로 불어난 셈이었다.
그날 저녁, 도윤은 친구 준혁을 광화문 뒷골목 카페에서 만났다.
도윤: “야, 집 샀다며?”
준혁: “응. 마포.”
준혁은 웃음을 숨겼다.
친구가 요란하게 말하지 않은 게 오히려 더 부러웠다.
도윤: “대출, 안 무서워?”
준혁: “무섭지. 근데 은지랑 계산기 두드려 보니까,
전세 연장하느니 그냥 월 이자 내는 게 낫겠더라고.”
잠시 뜸을 들인 준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준혁: “근데 대출은 무서운 게 아니라, 관리하는 거야.
대출도 내 자산이고. 요즘 세상에 현금 들고 있으면서 기회 놓치는 게 더 무섭지.”
그리고는 슬쩍 물었다.
준혁: “너는 집 어떻게 할 거야?”
도윤은 대답을 망설였다.
혜정과 부동산 앱을 보긴 했지만, 여전히 ‘전세 연장’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
도윤: “일단은… 좀 더 기다려보려고. 대출은 부담되고.”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다른 제안을 꺼냈다.
준혁: “그럼 지금 가진 현금으로 세 들어 있는 집 하나 사.
위치 좋은 구축이라도. 실거주는 통근 편한 빌라에서 월세 살고.
투자랑 실거주를 분리해야 집 보는 눈이 트인대.”
도윤은 그 말에 잠시 얼어붙었다.
도윤: “그건 좀… 나는 집값 좀 내려가면 학군지에 평생 살 집을 사고 싶어.
애 낳고 나면 이사 다니기도 힘들잖아.”
준혁은 한숨을 삼켰다.
준혁: “네 마음은 이해해.
근데 ‘완벽한 타이밍’ 기다리다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 많아.
학군지는 진입 장벽 계속 올라가고 있고.
그리고 월세든 전세든 결국 남의 집에 돈 붓는 거잖아.
내 집 하나 있으면 최소한 쫓겨날 일은 없어. ‘사는 자리’를 고정해 두는 거지.”
도윤: “그래… 고민해 볼게. 아, 은지 아직 집밥 해?”
준혁: “그럼. 반찬 만들다 기름 튀어서 소리 지르는 걸로 하루가 시작돼.”
도윤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찔렸다.
아내 혜정도 자신도 요리 대신 냉동볶음밥을 예쁘게 데우는 데 재주가 있다.
맛있고 빠르고, 그리고… 편하다.
도윤: “우린 배달 아니면 간편식. 일 끝나고 장 봐서 요리할 정신이 어딨어.”
준혁: “그렇지. 근데 우린 배달은 아예 안 해.
가끔 포장은 해도. 외식도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야.”
도윤: “오… 그건 좀 너무한데?”
둘은 웃었다.
하지만 웃음 끝에 묘한 찔림이 남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도윤은 준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혜정은 오늘도 배달앱을 켜고 있었다.
도윤: “오늘은 뭐 먹지?”
혜정: “더워서 국물은 좀… 김치볶음밥?”
둘은 볶음밥 두 개에 계란프라이를 추가했다.
한참 먹다 도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도윤: “혜정아, 우리 대출 좀 껴서 집 살까?”
혜정: “대출받는 거, 불안하긴 한데…”
도윤: “뭐가 제일 불안해?”
혜정: “몇 년 간 회사 매출도 안 좋은데 나 갑자기 잘리면?
뉴스 보면 그런 얘기 많잖아. 수입 끊기면…”
도윤: “맞아. 그래서 더 고민이지.”
둘은 잠시 말없이 김치볶음밥을 씹었다.
숟가락 끝에서 김치의 새콤한 향과 기름에 볶인 고소한 밥 냄새가 올라왔다.
잘게 다진 김치 조각이 이 사이에서 사각사각 부서지고,
고슬고슬한 밥알이 혀 위에서 기름과 섞였다.
방 안에는 김치볶음밥 냄새와, 씹는 소리 대신 묵직한 정적이 오래 머물렀다.
혜정: “그래도… 자가가 있는 건 부럽다.”
도윤: “응. 뭔가 중심이 생긴 느낌이겠지.”
혜정: “근데 우리도 잘 살고 있는 거 아니야?”
도윤: “뭘?”
혜정: “성실히 일하고, 명품도 안 사고, 싸우지도 않고.”
도윤: “…그걸 잘 살고 있는 거라고 해도 될까?”
혜정: “그럼. 이 정도면 A등급이지.”
도윤: “그렇긴 한데… 우리 엥겔지수가 높긴 해.”
혜정: “하긴, 소비 대부분이 먹는 거지. ”
집도, 대출도, 집밥도 없는 하루.
그래도 오늘 저녁을 무사히 함께한 것만으로, 약간의 만족감은 있었다.
밤늦게, 도윤은 부동산 앱을 켰다.
마포구, 서대문구, 양천구.
그 중 하나를 찜목록에 넣고 다시 껐다.
아직 결정은 못 했지만, 전보다는 한 걸음 다가선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면, 오늘은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