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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Apr 26. 2023

사라진 템플기사들, 어디로 갔을까?

29/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프랑스편-6)

   템플기사단의 마지막은 역사적 사실과 설화가 마구 뒤엉켜 혼란스럽다. 광범위한 정보망을 가진 그들이 필리프 4세의 급습을 정말 몰랐겠냐는 의심부터,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상황 발생 하루 전, 뭔가를 잔뜩 실은 3대의 수레가 파리지부를 빠져나갔고, 기사단의 핵심 간부들도 이미 프랑스를 벗어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단 성배로 상징되는 그들의 보물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기사단장 등 지도부 몇 명만 프랑스 왕과의 협상을 위해 저항없이 붙잡혔을 거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프랑스 왕이 템플기사단의 막대한 재산을 노린 거라 단순히 생각했다면 기사단장은 이번 탄압을 정치적인 쇼로 보았을 테고 협상만 잘하면 싱겁게 끝날 것이라 낙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템플기사단은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순식간의 몰락에 그 많던 기사들도 홀연히 사라졌다. 일부는 템플기사단의 재산을 승계한 구호기사단에 흘러 들어갔다. 남은 기사들은 당연히 신분을 숨겼을 테지만, 아무래도 프랑스 내에서는 거주하기 힘들었다. 지금처럼 숨을 곳이 많은 시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해외도피를 택한 상당수가 피레네산맥을 넘어 이웃한 이베리아반도로 건너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당시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프랑스가 정치적 이유로 기사단을 강제 해체시킨 것처럼, 이들 두 국가는 다른 정치적 이유로 기사단이 필요했다. 아니, 절실했다. 


   스페인은 무슬림을 상대로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온 무슬림이 이베리아 반도의 주인이 된 이후 무려 600년 동안 싸움이 계속되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프랑스에서 쫓겨온 용맹한 기사단은 천군만마였다. 그러니 독실한 가톨릭 국가였음에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템플기사단을 해체하라는 교황의 칙서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교황도 이를 눈감아줬다. 포르투갈은 한술 더 떠, ‘그리스도 기사단’이라고 명칭만 바꿔 템플기사단을 신분세탁까지 시켜준다.     


   이제 다음 목적지가 명확해졌다. 사라진 템플기사단을 쫓아 이베리아반도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파리엔 중앙역이 없다. 대신 가고자 하는 지역별로 7개의 역이 있을 뿐이다. 그건 역으로 가기 전에 목적지부터 먼저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기찻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대서양쪽 비스케이 만을 따라 보르도에서 빌바오로 이어지는 북쪽 루트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마르세유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어지는 남쪽 루트다.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피레네산맥으로 인한 지리적 제약 때문이다. 통상은 스페인 최대의 관광지, 안달루시아를 가기 위해 남쪽 루트를 애용하지만, 이번 여행에선 북쪽 루트를 선택한다. 곧 밝히겠지만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표를 끊고 야간열차에 올랐다. 야간열차는 숙박비와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어 배낭여행을 하는 나에겐 예전부터 정말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그 덕분에 매일 밤 만나야 하는 유럽의 기차역마다 나름 한 가지 이상의 추억이 묻어 있다. 1992년 인생 처음 파리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역에 있는 라커룸을 이용해 배낭을 보관한 후 장난기가 발동한(사실은 배고픔에 정신줄 놓은) 나는 혹시나 하고 동전반환 버튼을 여기저기 누르면서 라커를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왜 그런 일 있지 않은가? 누군가 짐을 찾고 반환된 동전을 실수로 놔두고 갔거나, 얼빠진 공중전화가 괜히 동전을 토해내는 그런 행운 말이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경찰과 눈이 딱 마주쳤다. 누가 봐도 난 라커의 물품을 노리는 꾀죄죄한 좀도둑이었다. (파리북역은 예나 지금이나 소매치기와 좀도둑이 극성맞은 우범지역이다) 


   순간 얼음이 된 나를 노려보며 경찰이 빠르게 다가왔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체셔 고양이처럼 방긋방긋 웃어보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색하기 그지없다. '완죤 X됐다'하는 찰나, 갑자기 이분, 말도 없이 내가 방금까지 눌러대던 반환 버튼을 열심히 눌러대기 시작한다. 심지어 주먹으로 죄없는 라커를 탕탕 내려치기까지 했다. (분명 이놈이 불쌍한 동양인 배낭객의 동전을 먹어버린 것이라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이 상황도 어이없는데 기적까지 일어났다. 10프랑이나 되는 동전이 튀어나온 것이다. ‘누구냐......넌!’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나에게 경찰은 애꿎은 동전만 쥐어주고 의기양양하게 사라졌다. 왠지 빚진 것 같은 이 묘한 느낌은 뭐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에게 ‘의문의 1승’을 안긴 그의 모습이 오랫동안 나에겐 프랑스의 기억으로 남았더랬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미친놈처럼 피식피식 웃어댔다. 생각해보면 당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도 프랑스로부터 예상치 못한 기회와 의도치 않은 혜택을 얻었다. 템플기사단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진 시기에(그리고 그들이 몰려들자) 정말 우연처럼 이베리아반도가 갑작스레 역사의 전면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채 100년이 되지 않아 세계 최강대국이 된다. 대항해 시대를 열고 대영제국에 200년 앞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난 세계사를 처음 접했을 때 도통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라를 갓 되찾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인적 자원도, 산업적 기반도, 경제적 여유도 없던 유럽 변방의 농업 국가들이었다.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니 그런 줄 알고 달달 외웠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먼 바다까지 항해를 하기 위해선 재력은 물론, 필요한 고급지식과 기술이 엄청 많이 필요해 보인다. 


   일단 배를 건조할 조선술은 기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안이 아닌 대양을 가로지르는 선박을 만들려면 물리학과 해양학 같은 학문은 필수다. 항해하는 동안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지리학과 천문학, 기하학에 대한 상당한 학식도 필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이 이걸 해낸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위대한 지도자라도 나타나서 바다로 나가겠다는 일념 하에 레콩키스타가 끝날 것을 예언하고, 전쟁 중에도 최소 100년 전부터 학문을 진흥시키면서 학자들과 엔지니어를 양성했던 걸까? 


   미안하지만 땅 찾기도 바쁜 시기였다. 이 갑작스런 상황에 대한 속시원한 설명을 들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템플기사단이라면 개연성이 있어 보였다. 특히나 대항해 시대를 열면서 바다를 누비던 배를 보고 심증이 굳었다. 바스코 다 가마도, 콜럼버스도, 마젤란도 자신들이 탄 배의 돛에 크게 새겨놓은 건 바로 템플기사단의 상징, 크로아 파테였다. 필시 무슨 관계가 있었다. 


   기사단이 가진 막대한 경제력에 더해,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들이 템플마운트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진 보물(성배)이 정말 대항해 시대의 원동력이라도 된 것일까? 마치 프랑스에서 고딕건축이 홀연히 나타났던 것처럼 말이다. (차츰 보겠지만, 대항해시대는 기사단이 가진 뭉칫돈과 성배가 이후 세계사의 흐름을 타고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물들의 서곡에 불과했다) 해답은 현장에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대를 안고 미지로의 세계를 향해 닻을 다시 올린다.         


(사진5-18. 바스코 다 가마의 출항식, 국립포르투갈도서관 ©Roque Gameiro, Wikipedia 발췌)
(사진5-19. 콜럼버스의 첫 항해 선단, 슈튜트가르트 일요신문 ©Gustav Adolf Closs, Wikipedia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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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파리 지도 ©https://maps-paris.com)



[사진출처]

사진5-18. By Roque Gameiro - Biblioteca Nacional de Portugal: http://purl.pt/6855Cota local: E. 294 A.,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632735

사진5-19. By Gustav Adolf Closs - Die Stuttgarter Sonntagszeitung Über Land und Meer. Deutsche Illustrirte Zeitung, Ausgabe 49, Jahrgang 1892,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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