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스페인북부와 포르투갈편-5)
바스크를 넘어가면 드디어 옛 아스투리아스 왕국이다. 이곳에서 스페인의 시작을 알리는 두 개의 유명한 동굴을 만난다. 첫 번째 동굴엔 이베리아반도에 살던 최초의 사람 흔적이 있다. ‘알타미라 동굴’이다.
동굴을 가기 위한 베이스캠프를 ‘산틸라냐 델 마르’에 차렸다. 사르트르가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칭송할 만큼 중세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다. 요새 떠오르는 여행지다. 마을의 명물, 카스텔라(원래 이베리아반도가 원산지다. 나중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 나가사키에 전수해주면서 지금의 카스테라빵이 되었다)를 먹으며 고풍스런 골목길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이 금세 간다. 포토제닉한 마을은 숙박비까지 싸서 하룻밤 묵기도 좋다.
동굴도 여기서 차로 5분이다. 주차하고 나면 먼저 알타미라 박물관과 만난다. 주위가 온통 구릉으로 둘러싸인 산악지대를 건물이 낮은 자세로 올라타고 있다. 진짜 동굴은 박물관에서 다시 도보로 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일반인 출입금지다. 20세기 후반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동굴의 훼손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대신 2001년부터 복제동굴을 만들어 개방하고 있다. 그게 박물관이다. 입장권을 사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복제동굴에 입장할 수 있다.
복제라도 동굴 벽화가 주는 감동은 전혀 반감되지 않는다. 들어서는 순간, ‘와’하는 외마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선명한 색상을 한 소들이 동굴 천장 위에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놈, 주변을 경계하는 놈, 무리의 대장인 듯 피를 흘리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자세로 서 있는 놈, 고개를 푹 숙인채 웅크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놈......각양각색의 모습만큼 색상도 다채롭다. 게다가 동굴의 자연스런 요철을 절묘하게 이용해 생생한 입체감마저 돋보인다. 가히 구석기시대의 시스티나 성당이라 할 만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 동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고고학자들은 조작이라 믿었다. 1871년 딸과 함께 그림을 발견한 마르셀리노는 사기꾼으로 피소를 당했고, 홧병으로 죽었다. 이후 프랑스 라스코 등지에서도 구석기 동굴벽화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누명이 벗겨졌다. 비웃었던 고고학자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그가 죽은 지 14년이나 지나있었다. 이제는 진짜 동굴 입구에 마르셀리노와 ‘알타(위를) 미라(보세요)!’를 외쳤던 그의 딸을 동판에 새겨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달래주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사물을 추상화하는 능력은 사실주의적인 구상화가 거의 극단에 도달하고 나서야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던 당시 고고학자들에게 알타미라의 벽화는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이 시기 헤겔의 변증법은 다윈의 진화론과 결합하면서 ‘세상은 계속 발전한다’는 관념을 촉발시켰다. 이후 진화론은 생물학에 머물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미술은 물론 역사나 철학같은 인문학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기존 신학이 가르치던 ‘세상은 계속 타락한다’는 종말론을 극복하기 위해 계몽주의를 등장시켰다. 이를 가르치는 대학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문제는 발전의 정의였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 걸 발전이라 부르고 교육시켜야 하는지 정리가 필요했다. 생물학이 적자생존이나 자연도태를 통해 자연스레 발전이 증명되는 데 반해, 인문학은 결국 사람들의 관념이 개입해야 했다. 모든 영역을 잘게 쪼개서 분류하고 개념화한 뒤, 서열과 위계를 매겼다. 그렇게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진화가 ‘발전’이자 ‘진리’로 굳어졌다. 어디 그뿐이랴. 감성에서 이성으로,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모계에서 부계사회로, 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으로, 보호주의에서 자유주의 세계화로 가는 것이 발전이라 정의되었다. 점차 이러한 주장이 절대적 도그마가 되면서 대학 자체가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렸다.
인문학이나 예술이란 게 원래 생각하고 표현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기반하는 것이지만, ‘발전’을 지키기 위해 학문을 전문가의 영역 속에 가둬두는 이상한 상황이 조성됐다. 이제 그네들의 ‘진리’에 반하는 것은 아예 무시되거나 거짓으로 취급되고, 전공자가 아니면 재야사학자니 아마추어 철학자니 하면서 일반인이 학문에 접근하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걸레스님으로 유명한 중광스님은 시인이자 영화배우이기도 했지만, ‘한국의 피카소’로 불릴 만큼 그림도 잘 그렸다. 어느 날, 스님이 출연했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대학교도 나오지 않았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비결이 뭔가요? 중졸 학력이 전부인 스님을 비꼰 것이다. 그런데 스님의 입에서 정곡을 찌르는 사이다 같은 답변이 바로 튀어나왔다.
“여보쇼, 알타미라 동굴에 그림을 그린 사람이 미대 나왔다는 소리 들어봤소?”
알타미라 동굴은, 최소 만오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구석기인들에게도 지금의 우리를 감동시킬 만한 미학적 감성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그러한 감성만 있으면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다시 일깨워준다.
그나저나 구상화와 추상화를 둘러싸고 알타미라가 던져준 충격은 어떻게 수습되었을까? 여기에 대해선 역시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진짜 피카소가 진즉부터 한 말씀 하신 게 있다. 박물관 입구에 걸려있는 근엄한 훈계다.
“알타미라 이후 모든 미술은 퇴보했다!”
그게 정답이다. 모든 게 꼭 앞을 향해 나아가지도 않고, 나아갈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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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