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동가, 스페인의 시작

35/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스페인북부와 포르투갈편-6)

by 이경석

알타미라 동굴이 스페인 땅에서 시작된 최초의 역사를 증언한다면, 오비에도 인근의 코바동가 동굴에선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시작되었다.


711년 무함마드 사후에 급속히 세력을 넓혀가던 이슬람 세력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불과 7년 만에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장악했다. 로마시대 이후 이 지역에 서고트 왕국을 세웠던 게르만족은 눈물을 머금고 북쪽으로 후퇴했다.


이때 장군 펠라요가 등장한다. 마치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던 것처럼 펠라요는 718년 서고트 왕국의 유민들을 규합해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운다. 이 왕국은 한 번도 이슬람에 정복당한 적이 없고, 후에 레콩키스타를 완수하는 기반이 되었기에 그 수도였던 오비에도는 지금도 스페인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초기에 너무 보잘 것 없었다. 이슬람 세력이 이 척박한 북쪽 산악지대에 적극적 관심이 없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무슬림이 완전히 포기했던 건 아니었다. 722년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침략한 무슬림은 거침없이 진격했고, 풍전등화의 아스투리아인들은 펠라요 장군의 지휘하에 오비에도 근처 코바동가 계곡에 있는 수많은 동굴들로 피신했다.


이때 펠라요는 잠복한 동굴에서 우연히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발견했고, 그 앞에서 승리를 갈구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자 천둥과 낙뢰를 동반한 강한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서 무슬림 군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펠라요 군대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무슬림을 상대로 기독교도가 맛본 최초의 승리로 기록된 코바동가 전투는 역사에서 레콩키스타의 시작으로 본다.

(사진6-17. 코바동가 동굴 ©E. Corvilla)


이러한 역사 때문에 지금도 코바동가 동굴은 스페인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장소로 여겨진다. 동굴에서 조각상을 우연히 발견한 것도, 그 기도로 갑자기 비가 내렸다는 것도, 그래서 전투에 이겼다는 것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어색하다. 아무리 절박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어설픈 전설이 먹히는 걸 보면 이 지역 사람들의 종교적인 심성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유독 이베리아 반도에 성모발현이 잦다. 그것도 하필 중요한 정치적 순간에 말이다. 기막힌 우연이다.


가장 최근의 성모발현은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7년 5월 어린 목동 3명이 양을 치다가 성모 마리아를 알현했다. 성모는 3개의 예언을 전하면서 5개월간 매월 13일에 나타나겠다고 했단다. 소문을 들은 7만 명의 인파가 10월 13일 마지막 발현일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비구름이 갑자기 걷히면서 드러난 태양이 춤추는 기적을 보았다고 전한다.


(사진6-18. 1917년 10월 13일 파티마의 기적을 보러 몰려든 인파 ©Judah Ruah, Wikipedia에서 재발췌)


리스본 근교의 이 조그만 마을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성당이 파티마의 기적을 기념한다. 하지만 기적의 실체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비구름이 갑자기 걷히는 거야 흔한 일이고, 태양을 쳐다보면 일시적 실명상태가 되면서 망막에 남은 잔상으로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일부가 그걸 기적이라 단정하고 술렁거리면 다들 그렇게 믿어버리는 집단히스테리가 생겼을 수도 있다.


3명의 목동 중 2명이 2~3년 내 사망하고(공식적 사인은 스페인독감이다), 마지막 1명은 수도원에 셀프감금하면서 진위를 차분히 조사하고 따져볼 시간조차 없었던 것도 모종의 힘이 작용한 거라 음모론자들은 주장한다.


어쨌든 이 사건은 당시 포르투갈 정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교롭게도 당시 포르투갈은 1910년 쿠데타로 왕정이 종식되고 공화정(제1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반가톨릭적인 사회 분위기가 팽배하던 때였다. 국민들의 지지 속에 지난 400년 이상 가톨릭을 유일한 국교로 했던 신정국가 체제를 폐지하면서 정교분리를 선언하고 교회 권한을 정부로 대폭 이양하는 세속주의를 추진했다.


하지만 파티마의 기적은 다시 군주제 부활 시도로 이어졌다. 결국 1933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가톨릭 극우주의자였던 살리자르의 36년 독재정권(제2공화국)으로 귀결된다.


어쨌든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면서 무슬림과의 일개 전투 중 하나였을 코바동가 전투는 레콩키스타의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은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이후 무슬림과의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는 위태위태한 와중에 야고보(스페인어로는 산티아고)의 무덤이 발견된 것이다. 코바동가 전투가 있고 나서 다시 100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다. 발견자는 코바동가 전투를 승리로 이끈 펠라요와 이름이 같은 수도승이다. (이쯤되면 사실 막가자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야고보인가? 그리고 그의 무덤은 왜 갈리시아 땅에 있었던 걸까?

(사진6-19. 위 : 파티마 대성당 외관, 아래: 대성당 내부 세 목동 중 프란시스코의 무덤 ©이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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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이베리아 반도 지도와 이번에 여행할 곳들, 구글지도를 활용)



[사진출처]

사진6-17 : By E. Corvilla - Own work PC de E. Corvilla,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0345729

사진6-18 : By Judah Ruah, photograph for the news paper O Seculo, published the 1917-09-29 on the news paper Illustracao Portugueza - Illustracao Portugueza 1917-09-29 Reporter de Cristo website,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975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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