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성 야고보의 길

37/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스페인북부와 포르투갈편-8)

by 이경석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성 야고보의 길’이에요. 프랑스에서 곧장 스페인까지 뻗어있죠. 샤를마뉴 대왕께서 사라센과 싸울 때, 갈리시아의 성 야고보가 길을 알려주기 위해 그려놓았다고 해요”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주인공인 목동은 어두운 밤하늘, 강물처럼 흐르는 은하수를 이렇게 설명했다. 샤를마뉴 대제의 꿈에 성 야고보가 나타나 은하수를 따라 그의 무덤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는 내용이 12세기 초 발간된 칼릭스티누스 사본(성 야고보 서, 산티아고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에 나온다. 도데는 아마 이걸 참고했겠지만, 기록 자체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샤를마뉴 대제가 이베리아의 무슬림을 공격한 때는 778년이었으니, 성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기 30여 년 전이다. 아마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로서 대제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생긴 해프닝으로 보인다.


그런데 알퐁스 도데가 모르는 게 하나 더 있었다. 그건 피레네산맥을 넘어 땅끝이라 불린 ‘달의 신전’까지 이르는 도보길 역시 고대 로마인들이 Via Lactea(영어로는 Milky way, 즉 은하수)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이 길은 신기하게도 은하수가 하늘에 걸쳐있는 방향을 따라갔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천상의 은하수가 그대로 지상에 반영되었다고 보았다. 은하수가 예로부터 죽은 자들이 저승으로 건너가는 길이었던 만큼, 죽음을 상징하는 대서양을 향해 뻗어있는 길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또 있을까 싶다.


(은하수가 ‘젖의 길(Milky way)’로 불리게 된 것은 뜻밖에 헤라클레스와 관계가 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불륜으로 낳은 헤라클레스에게 영생을 주려고 아내 헤라의 젖을 몰래 물렸다고 한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어찌나 힘차게 빨았던지 잠자던 헤라가 깜짝 놀라 일어나면서 모유가 뿜어져 나왔는데, 그게 바로 은하수가 됐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헤라클레스 타워가 은하수 도보길 끝에 위치한 것도 재미있다)


(사진6-24. 틴토레토 作 <은하수의 기원>,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은하수는 별이 무리를 이뤄 밝은 띠처럼 하늘에 걸쳐있는데 이는 우리 태양계가 속한 거대한 은하의 자취다. 따라서 가장 밝고 화려한 은하수는 지구의 밤하늘이 3만 광년 떨어진 은하의 중심부를 향할 때 볼 수 있다. 스페인이 속한 북반구는 그때가 여름이다. 이 시기 은하수 중심에선 별들이 쏟아내는 빛으로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그리고 육안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찬란한 하늘의 고갱이 곁에는 항상 특별한 별자리가 자리한다. 궁수자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체는 사람, 하체는 말인 켄타우로스 종족 중 제우스의 피를 타고난 케이론이 어딘가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다. 케이론은 강하고 빠른 하체를 지닌 켄타우로스 특유의 호전적 전사일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들의 스승으로 의술, 예술, 예언에 능통한 현자로 묘사된다.


일부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땅의 은하수로 불린 만큼, 별들이 유난히 빛나는 곳에서 발견했다는 무덤은 은하수 중심에 자리한 궁수자리와 상응한다고 봤다. 궁수자리는 황도 12궁에 해당하는 별자리 중 하나로 야고보를 상징한다. 그렇게 무덤의 주인은 야고보가 됐다는 것이다.


(사진6-25. 은하수 중심에 위치한 주전자 모양의 궁수자리 ©염범석,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에서 발췌)
(사진6-26. 궁수자리 속 케이론 ©blog.naver.com/itech_co/189513320)


황도란 하늘에서 해가 지나가는 길이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태양이 머무는 자리도 약 한 달 간격으로 변한다. 그렇게 1년간 태양이 스치는 별자리가 황도 12궁이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채 마치 팽이처럼 25,800년 주기로 회전을 하면서(세차운동), 약 2,150년마다 태양의 위치가 변한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춘분날 태양이 뜨는 곳의 별자리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했다.


예를 들어, 사자 모습을 한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는 사자자리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응시하도록 놓여있다고 믿어진다. 예수가 태어날 무렵 일출 위치는 양자리에서 물고기자리로 바뀌는데, 이로 인해 속죄양에서 물고기로 상징되는 예수가 인간을 대신해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다. (출애굽 시절, 황금송아지를 숭배하던 유대인에게 화를 냈던 모세의 시대는 양자리 직전의 황소자리였다) 현재는 물고기자리를 지나 물병자리의 새로운 시대(그래서 종종 ‘뉴에이지’라 불리는)로 가고 있다. 인류 최초 문명인 수메르 시대부터 내려온 황도 12궁은 이렇듯 인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사진6-27. 황도12궁 ©대단한 하늘여행, 네이버에서 재발췌)


예수의 12제자도 황도 12궁에 비유된다. 어부인 베드로는 물고기자리의 수호성자라 불린다. 야고보도 어부였지만, 열정적이고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예수로부터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란 별명을 얻는다. 황도 12궁에서 야고보와 매칭되는 별자리는 그래서 남성적인 궁수자리로 비정된다. 12사도 중 제일 먼저 순교한 것도 다혈질적이고 전투적인 성격 탓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입장에서 레콩키스타의 여세를 몰아 전쟁터에서 사기를 올리기에 야고보만한 인물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고 30여 년 후인 844년 클라비호 전투에서 백마를 탄 야고보가 드디어 가톨릭 군대 앞에 나타나는 기적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쯤 되면 야고보 무덤의 발견은 우연이 아니라 예고된 시나리오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야고보가 당시 스페인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란 건 알겠지만, 무덤 발견 이후 왜 스페인 바깥의 유럽 사람들조차 그렇게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열광을 했냐는 점이다.


유럽 곳곳에 성경 속 수많은 성자들의 무덤이라 주장하는 장소가 많은데 왜 유독 야고보의 무덤으로 가는 순례길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린 걸까? 비슷한 시기, 베네치아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훔친 마가(마르코, 최초의 신약인 마가복음의 저자)의 유골로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과 성당을 세웠지만 마가 순례길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성자의 유골과 유품을 친견하려는 순례자들이야 항상 있어왔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지속적인 순례는 굉장히 이례적이다. 이로 인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성지로까지 거론된다. 야고보가 원래 이렇게 인기 많은 사도였나? (미안하지만, 야고보는 성서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한 인물은 아니다)


교황은 한술 더 떠 1122년 무덤의 주인을 야고보라 공인한 이후 1189년에는 산티아고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순례를 가면 지은 죄를 사면해준다고까지 발표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인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교황까지 나서 야고보의 무덤을 이토록 극진히 우대해준 이유가 뭘까? 가톨릭을 정통으로 만들어준 베드로에게조차 선포한 적이 없는 이 전례없는 상황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고 혹시 산티아고 순례길의 인기에 숨겨진, 아니면 숨기고 싶은 뭔가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건 당연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아무래도 또다른 야고보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바로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이야기다.


(38화에서 계속, 글이 괜찮았다면 '구독하기'와 '좋아요'를 꾹~눌러주세요~!)

*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이베리아 반도 지도와 이번에 여행할 곳들, 구글지도를 활용)



[사진출처]

사진6-24. By Jacopo Tintoretto - The Yorck Project (2002) 10.000 Meisterwerke der Malerei (DVD-ROM), distributed by DIRECTMEDIA Publishing GmbH. ISBN: 3936122202.,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59438

사진6-25. https://www.kasi.re.kr/kor/publication/post/photoGallery/4269

사진6-26. https://blog.naver.com/itech_co/18951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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