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스페인 갈리시아

36/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스페인북부와 포르투갈편-7)

by 이경석

스페인의 17개 지역 중 북쪽으로는 칸타브리아해, 남쪽으로는 포르투갈, 서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하는 북서쪽 끄트머리 4개 주가 속한 곳에 갈리시아가 있다.


서고트족이 이동하기 전, 여기는 켈트족의 땅이었다. (템플기사단과 성배를 찾아가는 곳에서 매번 켈트족을 만나는 것도 신기할 뿐이다) 갈리시아는 여기서 살던 갈레시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예로부터 대서양 건너 해가 지는 서쪽 바다는 죽은 후에야 건널 수 있는 사후세계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갈리시아는 세상의 끝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믿어졌다.


로마제국 역시 인간이 갈 수 있는 세상의 끝을 정복한 후 커다란 기념비를 세웠다. 2세기 건립된 거대한 건축물은 중간에 여러 번 수리를 거쳤지만, 아직도 당시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바로 헤라클레스 타워다.


라코루나 해안 언덕에 높이 55m로 솟은 이 돌탑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이기도 하다. 형태는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를 본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반신반인인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꾐에 빠져 처자식을 살해하는데, 죄를 용서받으려면 12개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델포이 신탁을 받는다. 그중 열 번째 미션으로 땅끝에 사는 거인, 게리온의 소를 빼앗아야 했다. 3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든 대지의 주인이라 불리는 게리온을 무찌르고 임무를 완수한다. 이때 게리온의 머리를 묻은 곳에 헤라클레스 타워를 세웠다고 한다.


로마제국은 스스로를 헤라클레스에 빗대서라도 모든 대지를 정복한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천하무적 수퍼 히어로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등대까지 해안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은 세상의 종착지답게 왠지 장엄하다. 종말이 가까워지기라도 한 듯 거센 바람이 돋구는 드센 파도의 천둥 같은 소리에 영혼이 쪼그라든 것도 잠시. 오르막 저 편에 기다릴 최후의 심판에 가슴마저 세차게 펄떡인다. 순간, 부끄러운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가고 나에게 내려질 처분을 담대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만큼 장소가 풍기는 기운은 이미 저 세상급 이다.


압권은 등대 위에서 보는 광경이다. 팔각형의 기단 위에 234개의 계단을 품은 등대를 타고 꼭대기에 서면 눈 시리게 파란 바다가 성큼 덮친다. 길들여질 것 같지 않은 거친 땅과 바다가 유발하는 압도적 몰입감을 신화라도 없었다면 어떻게 배겨냈을까 싶다.


이런 곳이라면 전지현이 인어가 되어 나타난다 해도 하등 어색하지 않았겠다. (TV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이 여기서 촬영됐다. 드라마를 봤던 와이프는 모르고 따라왔다가 깜놀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사진6-20. 위 : 헤라클레스 등대, 아래 : 등대 꼭대기에서 바라본 대서양 ©이경석)


그런데 로마인들만 여기를 특별한 곳으로 여긴 게 아니었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이던 켈트족은 삶이 끝나고 죽음이 시작되는 이 신성한 곳에 달의 신전을 세웠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비슷하지만 달은 사후세계를 곧잘 의미했다. 켈트신화에서도 달의 여신 리안논은 죽은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죽음을 앞둔 인간들은 달의 신전에 순례를 와 영생과 부활을 기도했다.


(부활과 연계되는 대표적인 달의 여신은 또 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이슈타르’이다. 그는 저승에 내려갔다가 나무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한 뒤, 3일 만에 부활한다. 놀랍게도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 아닌가? 기독교에서 부활절로 부르는 이스터(Easter)도 이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그런데 달의 신전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를 세상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바로 그 위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서 있기 때문이다.


켈트족들은 로마시대와 연이은 서고트족의 침입 과정을 거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일부는 바다 건너 아일랜드로 갔을 테고 일부는 서고트족에 동화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언어는 현재까지 갈리시아어로 전승되고 있다. 스페인어보다는 포르투갈어와 더 가깝다고 한다. 포르투갈(Portugal) 국명에 붙은 ‘-gal’도 갈레시족의 ‘갈’과 같은 의미로 보기도 한다)


그 사이 가톨릭이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달의 신전은 점차 잊혀졌다.


하지만 인류의 오랜 기억과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리적 구조체로서의 신전은 폐허가 됐어도 그 땅에 부여된 신성함의 아우라는 오래 남는 법이다.


영생과 부활을 약속해 주던 세상의 끝을 찾아 밀려드는 순례 행렬은 예전만 못했지만, 없어진 건 아니었다.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한 무슬림도 이들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무슬림조차도 갈리시아를 신성한 땅으로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이 잊혀져 가던 신성한 장소에서 뭔가를 발견했다고 발표한다. 그런데 그것이 ‘달의 신전’이 아니라 ‘야고보의 무덤’이라 하였다.


밝은 별이 무슨 레이저도 아닌데 그 무덤만 비추고 있었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나, 코바동가 전투를 연상시키는 펠라요라는 이름의 정체불명 수도승 이야기까지 그럴듯하게 곁들어졌다. 다분히 의도되고 계산된 것이다.


현재의 체제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내려온 신성함을 이용하고 재포장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유사한 사례로 메카의 카바신전을 들 수 있다. 운석으로 추정되는 검은 돌로 만들어진 이 특별한 신전은 무함마드 이전부터 오랫동안 온갖 종교들의 숭배 대상이었다. 후에 메카를 정복한 무함마드는 우상숭배의 본거지인 신전을 파괴하는 대신, 이슬람교의 성전으로 바꿔버렸다. 아브라함과 그의 큰아들 이스마엘이 알라의 지시로 건설했다는 이야기를 덧씌웠다.


아랍인들로서는 카바를 계속 숭배할 수 있었으니 겉으로는 변한 게 없었다. 다만, 카바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컨텐츠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자 아랍인들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다함께 자각하게 되었고, 거부감없이 무슬림이 되어갔다.


이러한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꾸란은 카바신전 순례(하지)를 평생 실행해야 할 무슬림의 다섯 가지 의무 중 하나로 요구한다.


(사진6-21.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신전 ©Prof. Mortel)


야고보의 무덤이 촉발시킨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발표 이후 지역 주민들에게 드디어 민족적 일체감이라는 게 생겨났다. 가톨릭을 매개로 스페인이라는 국가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 것이다. 지금도 스페인 왕세자의 공식 호칭이 ‘아스투리아스 대공’일 정도다.


또한 피레네 산맥 이남은 아프리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유럽에서도 소외됐던 지역이 가톨릭 왕국으로 각인되며 성자의 유골을 알현하려는 기독교 순례자들까지 몰려들었다. 그러자 유럽으로부터의 인적, 물적 교류와 지원이 이어졌고, 레콩키스타는 더욱 힘을 받았다.


야고보의 무덤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외부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결과론적으로 절묘한 한 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언급한 파급 효과만 놓고 보자면 그 무덤의 주인이 꼭 야고보일 필요는 없었다. 무덤이 발견되지 않은 예수의 다른 제자나 수많은 성자가 있었을 텐데 왜 콕 집어 야고보가 선택된 걸까?


전설로 다시 돌아가면, 야고보가 전도를 위해 이베리아반도까지 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7년 후 별다른 성과없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뒤, 서기 44년 예수의 제자 중에서 최초로 순교하는 사도가 되었다.


이후 2명의 제자가 돌로 된 배에 야고보의 시신을 실어 바다로 나갔고 갈리시아 앞바다에서 풍랑을 맞아 좌초되면서 시신이 유실되었다. 그런데 해변에서 가리비 조개로 덮인 채 온전히 보존된 사도의 유해가 다시 발견되었고, 이를 지금의 산티아고 대성당 자리에 묻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설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 갈리시아에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된 어떤 유적도 발견된 적이 없다. 야고보가 정말로 스페인을 다녀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전설에서는 ‘돌로 된 배’나 ‘가리비’같은 켈트족 상징들만 난무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켈트족의 영역에서는 거석문화가 쉽게 발견된다. 영국의 스톤헨지나 아일랜드의 보인 유적지, 프랑스의 카르낙 거석군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갈리시아의 ‘gal’이 켈트어에서 돌이나 바위를 뜻하는 어근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어, 갈레시족 자체가 ‘돌을 잘 다루는 민족’이란 해석도 있다. 돌로 된 배에 야고보의 시신을 실어 세상의 끝으로 실어 날랐다는 이야기는 죽어가는 아서왕이 배에 실려 아발론을 향하는 역시 켈트족 특유의 부활 신화와 중첩된다.


가리비도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껍질의 빗살이 특이한데, 특히 조개의 형태로 볼 때 바다에 중간쯤 걸친 태양이 연상되는 탓에 오랫동안 석양 혹은 일출을 상징해왔다. 모두 죽음이나 부활과 관련되어 있다.


(사진6-22. 산티아고 순례길의 방향을 안내하는 가리비 상징 표식 ©Antares2000~enwiki)


더 나아가 가리비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강력한 모티프였다. 오목하면서도 벌어진 형태가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이나 생식기와 닮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화가 결합되면서 가리비는 신성한 여성과도 연결된다. 보티첼리가 <비너스의 탄생>에 가리비를 그려 넣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야고보의 전설 속 가리비는 달의 여신(그리스 신화에서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처녀성과 순결, 즉 신성한 여성을 상징한다. 켈트 신화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을 가리키는 흔적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켈트신화와 기독교가 기이한 형태로 섞인 전설이 나의 물음에 명쾌한 대답을 주진 못했다. 무덤의 주인이 왜 야고보여야 했는가는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유추해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사진6-23. 보티첼리 作 <비너스의 탄생>, 우피치 미술관 ©이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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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이베리아 반도 지도와 이번에 여행할 곳들, 구글지도를 활용)



[사진출처]

사진6-21. By Prof. Mortel - https://www.flickr.com/photos/43714545@N06/50703355031/,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8495542

사진 6-22: By Antares2000~enwiki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8098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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