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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Jul 12. 2023

에딘버러, 프리메이슨의 고향

62/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영국 런던~에딘버러편-16)

   스코틀랜드 제1의 도시는 글래스고다. 하지만 수도는 에딘버러다.


   로마를 닮고 싶은 유럽의 많은 도시들처럼 에딘버러 역시 7개의 언덕에 세워졌다고 믿어왔다. 그 언덕 중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바위투성이의 캐슬락(Castle Rock) 정상에 자리한 에딘버러 성은 도시의 랜드마크다. 모습이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를 연상시켜 에딘버러는 ‘북구의 아테네’라는 별칭도 얻었다.


   에딘버러 성은 장엄한 외관만큼이나 스코틀랜드의 자존심이다. 12세기 처음 세워진 이래, 잉글랜드에 최소 세 차례 점령당하면서도 스코틀랜드인들은 그때마다 들불처럼 일어나 침략자들을 내쫓고 독립을 지켜왔다. 다시는 치욕을 겪지 않겠다는 듯, 로버트 브루스와 윌리엄 월래스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성 내부의 동선은 특이하게 지형을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소용돌이를 그린다. 성의 입구 바로 뒤편에 왕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하지만 왕궁까지 가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성의 첫 번째 입구에 들어선 후에도 양옆이 바위와 높은 벽으로 막힌 북쪽의 좁은 오르막을 따라 두 번째 입구(포트쿨리스 게이트)를 통과해야 비로소 성내로 들어갈 수 있다. 마치 동대문의 옹성처럼 침입한 외적을 사방에서 포위공격하기 위한 용도다. 여기서부턴 남쪽을 향해 반원을 그리며 돌게 된다. 주변엔 병사들의 막사나 병원, 대포와 감옥 같은 병영시설이 늘어섰다. 길의 끝에 자리한 세 번째 입구(푸그 게이트)까지 지나야 마침내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한 왕궁을 만난다. 왕궁은 중정을 두고 건물이 사면을 둘러싼 형태다. 


   왕궁에서 꼭 봐야 할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스콘석이다. ‘운명의 돌’로도 불리는 장방형의 사암덩어리는 스코틀랜드 제일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사진7-76. 좌 : 에딘버러 성 입구 ©이경석, 우 : 에딘버러 성의 동선 ©twitter.com/edinburghcastle)


   성서 창세기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가 되는 야곱(아브라함의 손자)이 집을 떠나 어느 들판에서 큼직한 돌을 베개삼아 잠이 들었다가 꿈을 꾼다. 야곱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보고 야훼의 계시와 축복도 받았다.


   전설에 따르면, 후에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이름 붙여진 노숙 장소에서 가져온 야곱의 돌베개가 바로 스콘석이라 전한다. 그래서 역대 스코틀랜드 왕들은 이 돌에 무릎을 꿇고 대관식을 열었다. 원래 스콘석은 에딘버러 북쪽, 퍼스 인근의 스콘이란 마을의 수도원에 있었다.(수도원은 지금 사라지고 그 자리엔 스콘 팰리스라는 대저택이 자리한다. 스콘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현재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다가 1296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돌을 뺏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겼고, 스콘석은 대관식용 옥좌 밑의 받침돌이 되었다. 여기서 즉위한 잉글랜드 국왕이 스코틀랜드까지 지배한다는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당연히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이 의자에서 왕관을 썼다.


   이후 스콘석은 노동당의 총선 공약에 따라 칠백 년 만인 1996년 스코틀랜드로 다시 돌아왔다. (일설에는, 영국의 애프터눈 티에 빠질 수 없는 스콘 빵도 스콘석과 모양이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사진7-77. 스코틀랜드 스콘팰리스에 있는 스콘석 복제본 ©이경석)


   에딘버러 성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두 개의 언덕이 눈에 밟힌다. 정면 방향으로 범상치 않아 보이는 거대한 언덕은 ‘아서왕의 자리(Arthur’s Seat)’로 불린다. (한마디로 카멜롯이란 의미다) 언덕 밑자락에는 홀리루드 궁전이 있다. 영국 국왕이 스코틀랜드에 오면 머무르는 별궁이다.


   거기서 조금 왼쪽, 동북 방향에는 아담하게 봉긋 솟은 칼튼힐 언덕도 보인다. 정상에 무너져내린 것 같은(실제로는 짓다가 만) 그리스 신전 형태 전몰자 기념비를 포함해 각종 모뉴먼트가 산재한 언덕은 에딘버러 최고의 포토포인트다. 에딘버러 성이 있는 캐슬락과 이 두 개의 언덕이 이루는 삼각형 안쪽이 에딘버러 구시가를 이룬다.


(사진7-78. 칼튼힐 언덕에서 내려다 본 에딘버러 성과 구시가 ©이경석)


   특히, 에딘버러 성에서 홀리루드 궁전까지 약 1마일 남짓 이어진 보행자 전용도로가 바로 로열 마일(Royal Mile)이다. 이 길 주변으로 왕실예배당(St.Giles 성당)이나 스코틀랜드 의회같은 종교와 정치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는데, 지금은 스카치 위스키나 스코틀랜드 체크무늬가 들어간 퀼트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로열 마일 주변은 해리포터 덕후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작가 조엔 롤링이 소설 <해리포터>를 집필했던 카페(엘리펀트 하우스)가 있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카페를 중심으로 마술사들의 쇼핑거리인 빅토리아 스트리트도 있고,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4개 기숙사 시스템(그리핀도르, 슬리데린, 후플푸프, 래번클로)의 모티브가 된 조지 해리엇 스쿨(이 학교 학생들도 그레이프라이어스, 로리스톤, 캐슬, 레이번의 4개 기숙사에 배정받는다)이나 마법사들이 잠든 그레이프라이어스 공동묘지 등이 모여있다.


   공동묘지에 진짜 마법사들이 묻힌 건 아니다. 소설 속 맥고나걸 교수나 볼드모트의 본명인 톰 리들, 애꾸눈 무디 교수 등은 모두 여기 묘비에서 이름을 빌어왔을 뿐이다. 주변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섬세한 관찰력으로 마법의 세계를 창조해낸 작가의 능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에딘버러 성의 북쪽은 신도심이다. 조지안 스타일의 단정한 집들이 늘어선 길은 여느 영국 도시와 다르지 않아 평범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관광객들도 지나치고 마는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프리메이슨 롯지가 있다. 힐스트리트 19번지.


   그저 그런 집들 사이에 있지만 눈썰미가 좋으면 조금 특별한 외관에서 호기심을 건질 수 있다. 마치 솔로몬 성전의 야긴와 보야스처럼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입구를 낸 3층 석조건물은 성채처럼 단단하다. 기둥 위 보에는 ‘The Lodge of Edinburgh’라 새겼고, 그 아래 더 작은 글씨로 ‘Mary’s Chapel, No.1’이라 적어놨다.


   위를 올려다보면 특이하게 2층 창 옆에 랜턴이 달려 있다. 랜턴에 새겨진 문양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이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필요한 콤파스와 직각자를 서로 위아래로 겹친 기호는 전 세계 프리메이슨의 공통된 상징이다. 밤이 되면 불이 들어오는 랜턴은 암흑 속 세상을 인도하는 계몽의 길잡이다. 랜턴 옆으로는 벽에 문양이 그려졌다. 원 안에 놓인 다윗의 별이다.


   그리고 별 주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앙증맞은 상징 기호들이 배열되어 신비감을 더한다. 그래도 그중 분명하게 인식되는 것은 1893이라는 숫자다. 롯지가 이 건물에 자리 잡은 해다. 여기 이사 오기 전까지 최초 롯지는 구도심에 있었으니, 설립연도는 더 오래됐을 거다. 롯지가 보관 중인 공식문서는 1599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롯지는 프리메이슨 단원이 아니면 출입 불가다. 그래도 기회는 있다. 매년 8월 세계 최대 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 동안 공연장으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아직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덕분에 에딘버러에 또 가야 할 핑곗거리 하나 생겼다.      


(사진7-79. 에딘버러 프리메이슨 롯지 ©www.pinterest.ie/pin/816347869943907409)


   에딘버러 롯지에서 한 블록 거리에 롯지가 하나 더 있다. 스코틀랜드를 총괄하는 그랜드 롯지(프리메이슨 홀)다. 설립 시기는 1736년으로 1717년 세워진 런던의 잉글랜드 그랜드 롯지에 간발의 차로 늦었다. 하지만 1599년까지 올라가는 에딘버러 롯지 덕분에 스코틀랜드가 프리메이슨의 원조라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건물 외관은 특이할 게 없다. 현관 캐노피에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가 자신이 못박힐 X자형 십자가를 짊어진 조각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의 십자가는 스코틀랜드 국기의 상징이다) 그러고보니 내부 바닥도 모두 X자형 사선으로 일관되게 이루어져 있다.


   사실, X는 정통 기독교의 십자가에 맞서 빛(lux)을 나타내는 비의적 상징으로 쓰였다. 소설 <다빈치 코드>의 주장처럼 남성을 상징하는 ∧와 여성을 상징하는 ∨가 합쳐진 신성한 결합이기도 하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주류 종교계에 의해 X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부정적 의미로 격하된다. 예를 들어, ‘No’ 혹은 ‘틀렸다’라는 기호로 그어지거나, ‘X등급’ 같이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식으로 모욕당한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도 XXX는 쌍욕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트리플엑스(XXX)는 암스테르담 시의 상징문장이자, 영국인들이 문자나 이메일 말미에 존칭의 표현으로 아직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X의 원래 의미는 서양인들의 생각 기저에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있는 셈이다.


   이곳은 미리 신청하면 내부 박물관을 무료로 투어할 수 있다. 여러 개의 방에 의식용 잔이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개중에는 ‘올드 랭 사인’으로 친숙한 시인 로버트 번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회원명부도 있다. 특히 관심있게 봐야할 건 그랜드마스터의 초상화다. 지난 번 언급했던 대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 국왕도 있지만, 초대 그랜드마스터인 윌리엄 세인트 클레어(William St. Clair)라는 인물에 주목해야 한다.


(사진7-80.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 홀(그랜드 롯지) ©Stephencdickson, Wikipedia에서 재발췌)

 

   윌리엄 세인트 클레어가 누군가? 골프의 창시자로도 알려진 그는 로슬린 채플을 세운 윌리엄 싱클레어의 후손이다. (세인트 클레어와 싱클레어는 이 가문에서 혼용된다) 싱클레어 가문은 정복왕 윌리엄을 따라 노르망디에서 브리튼섬으로 건너온 바이킹(노르만족)의 후예다.


   일설에 의하면, 이들 가문은 템플기사단과의 인연도 상당하다. 템플기사단의 초대 그랜드마스터, 위그 드 파앵이 캐서린 세인트 클레어라는 싱클레어 가문의 딸과 결혼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부부가 직접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로슬린 땅에 템플기사단 스코틀랜드 지부를 설립했다고도 한다. 템플기사단 몰락 후에는 홀연히 로슬린 채플을 세웠고, 이때부터 싱클레어 가문은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의 보호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다 1736년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의 초대 그랜드마스터가 배출된 것이다. 한마디로 싱클레어 가문은 템플기사단과 프리메이슨을 연결하는 역사적 증인인 셈이다.


   이제 이번 영국여행의 마지막 종착지가 가까워졌다.


(사진7-81. 프리메이슨 복장을 한 윌리엄 세인트 클레어의 초상화 ©m.facebook.com/GrandLodgeScot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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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7-76우 : https://twitter.com/edinburghcastle/status/459996599327133696

사진7-79 : https://www.pinterest.ie/pin/816347869943907409/

사진7-80 : By Stephencdickson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2122387

사진7-81 : https://m.facebook.com/GrandLodgeScotland/photos/william-st-clair-of-roslinportrait-of-william-st-clair-of-roslin-rosslyn-1700-17/1819826204769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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