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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Jul 14. 2023

비밀맛집12: 성배가 정말 있을까? 로슬린 채플

63/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영국 런던~에딘버러편-17)

   싱클레어 가문의 영지, 로슬린은 에딘버러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다. 


   영국의 대부분 도시가 그러하듯, 코스트코나 이케아 같은 대규모 도매점이 밀집한 도심 외곽을 지나가야 해서 생각보다 통행량이 꽤 많다. 여길 통과하면 바로 로슬린 마을로 이어진다. 채플로 가는 길은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거라 잔뜩 기대해서일까? 마을 경관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무미건조하다. 성스러운 공간으로 진입하기 전 일부러 뜸을 들여 감정을 고양시키는 뻔한 패턴도 없다. 마을을 가로지르면 바로 채플이다. 


   너무나 예고없이 마주친 탓에 약간 당황스럽다. 주차장에 내리면 최근 새로 지어진 방문자센터가 먼저 반긴다. 센터에선 채플에 관한 짧은 동영상도 보고 프리메이슨 관련 기념품도 구경할 수 있다.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는 익숙한 분위기는, 그러나 채플로 나가는 문을 여는 순간 반전에 빠진다. 그간의 어수선했던 분위기나 센터의 북적거리는 소리가 일순간 툭 끊기고, 명상하듯 대지 위에 살포시 가부좌를 튼 작지만 옹골진 채플이 눈에 훅 들어온다. 


   경사진 언덕 위에 올라앉은 덕에 발아래 숲을 굽어보니 채플을 제외하고 화면을 꽉 채운 건 하늘뿐이다. 천상엔 온 듯 정지화면처럼 침묵 속에 마주하는 오브제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방을 둘러싼 낮은 담 속에 내리쬐는 햇볕을 차곡차곡 담아낸 공간은 아늑하고 평화로워 정신마저 아득하다.      


(사진7-82. 로슬린 성당 외관 ©이경석)


   뒤를 돌아봐도 방금 지나왔던 길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현대식 지붕을 한 센터도, 고만고만한 마을의 어수선한 주택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조그만 문 하나가 이곳을 바깥의 세속과 연결해줄 뿐이었다. 번잡한 바깥과 놀랍게 격리시킨 채플은 이제야 자신이 품은 비밀을 풀어헤칠 준비가 된 듯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시작된 입문의 길이 끝나는 종착지답게 여기엔 템플기사단의 성배가 숨겨졌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다.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소설 <다빈치 코드>는 이 채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로슬린채플 - 흔히 ’암호의 성당‘으로 불린다-  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남쪽 11킬로미터, 고대 미트라 신전 부지에 서 있다. 템플기사단이 1446년에 세운 이 교회는 유대교와 기독교, 고대 이집트와 프리메이슨, 그 밖의 온갖 이교도의 전통에서 비롯된 상징들로 가득한 곳이다. 이 교회의 지리적 조건은 글래스톤베리를 통과하는 남북의 자오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로즈라인은 오래전부터 아서 왕의 아발론 섬을 나타내는 표시이자 영국의 기둥으로 간주되었다. 로슬린이라는 이름도 이 로즈라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원래 로슬린은 지금과 같은 Rosslyn이 아닌 Roslin으로 표기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처럼 서쪽을 향해 놓인 외관의 모습은 버트레스가 지탱하는 전형적인 고딕성당이다. 그런데 모양새가 좀 특이하다. 몸체를 가로질러 남북방향으로 가벽이 어색하게 놓여있다. 마치 짓다 만 것처럼 보인다. 이 채플이 원래 솔로몬 성전을 본떠 만들었다는 가설을 들어, 일부에선 이 가벽이 템플마운트의 서쪽벽(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상징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일부에선 템플기사단이 몰락한 이후 이 자리에 있던 채플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남긴 옛 건축물의 흔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후 무너져내린 로슬린 채플의 복원을 지시한 건 빅토리아 여왕이다. 1842년 여왕이 이 작은 채플을 방문한 것은 엘리자베스 2세가 런던 템플처치의 복원 준공식에 참석한 사건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사진7-83. 로슬린 성당 입구 상부 상세 ©이경석)
(사진7-84. 로슬린 성당 정면 ©이경석)


   단순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혼을 쏙 빼놓는다. 


   우선,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한 조각의 향연이 펼쳐진다. 여기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타고 빛이 바다처럼 출렁이면서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깊고 굵은 음영이 전체적으로 기이하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각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성당들과는 많이 다르다. 식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덩굴과 꽃, 잎사귀들이 여기저기 뒤덮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나 말을 탄 기사와 같은 인물 조각들이 숨겨져 있다. 밧줄에 감겨 거꾸로 매달린 타락 천사나 십계명을 든 뿔 달린 모세도 있다. 그런데 이 조각들이 모여서 전체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같지 않고 보물찾기하듯 간헐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니 혼란스럽다. 


   조각 중에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건 그린맨이다. 험악한 인상을 가진 그린맨은 우리의 도깨비에 해당한다. 2세기 로마시대 유적부터 유럽 전 지역에서 발견되지만, 유독 로슬린 성당에만 100개 이상의 그린맨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이 이교도적인 상징은 나무의 정령이며 흔히 불사의 상징으로도 알려져 있다. 입에서 나오는 담쟁이 덩굴 같은 식물줄기는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되살아나는 부활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사진7-85. 로슬린 성당 내부 그린맨 조각 ©Johanne McInnis)


   압권은 천장이다. 


   돌로 된 천장을 뒤덮은 건 별과 꽃이다. 마치 이집트 에드푸에 있는 호루스 신전을 보는 듯 신비롭다. 별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는 고대 이집트의 종교 의식은 프리메이슨의 입문식에서도 이어진다더니, 그와 관련된 것일까? 다른 측면에서는 ‘별이 빛나는 들판’에 누워있는 성 야고보란 뜻을 가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도 의미가 통한다. 앞서 본 것처럼, 입문의 길이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서 시작되고, 그가 성배를 전수받은 자라면 입문의 종착지인 이곳에 재현된 ‘별이 빛나는 들판’ 아래 성배가 진짜 숨겨져 있을까? 


(사진7-86. 로슬린 성당의 별과 꽃으로 뒤덮힌 천장 ©Jett Fini)


   천장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건 또 있다. 천장의 무게를 지탱하여 바닥으로 전달하는 리브와 아치는 보통 매끈하게 처리되는 게 일반적인데, 제단 쪽 천장엔 톱니바퀴처럼 삐죽삐죽 돌기가 튀어나와 있다. 그리고 그 끝엔 각설탕처럼 생긴 입방체가 매달려있다. 모두 213개다. 그리고 각각의 조그만 입방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가 새겨져 있다. 


   흔한 광경은 아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로부터 논란이 많았다. 거대한 암호체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007년 영국의 한 음악가가 이 입방체가 그 모양에 따라 서로 다른 음을 표시하는 악보라는 가설을 내놨고, 실제로 이를 바탕으로 해독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답은 오리무중이다.      

   천천히 발걸음을 제단 쪽으로 옮기면 채플에서 가장 독특한 기둥 두 개를 발견한다. 하나는 반듯하게 서 있는 장인의 기둥, 또 하나는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도제(견습공)의 기둥이다. 각각 솔로몬 성전 입구의 보아즈와 야긴을 상징한다는데, 여기엔 전설이 있다. 윌리엄 싱클레어가 로마에서 본 기둥을 채플에 세우길 원하자, 석공 장인이 이를 보러 로마에 간 사이 꿈에서 영감을 얻은 도제가 기둥 하나를 멋지게 완성한 것이다. 그런데 로마에서 돌아온 장인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만 도제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쳐 살해하고 만다. 원혼을 달래듯, 완성된 채플에는 머리가 일부 깨진 견습공의 얼굴 조각이 장인의 기둥을 노려본다. 왠지 솔로몬 성전의 히람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한다.(54화 참조) 도제의 기둥 근처에 솔로몬 성전과 관계된 라틴어 문구도 새겨져있다.     

 

   ‘와인은 강하고, 왕은 더 강하고, 여성도 여전히 더 강하지만, 진리가 모든 것을 정복한다’     


   성서에도 나오는 스룹바벨은 이 말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을 설득해 BC 530년경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의 재건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근거로 채플의 제단은 솔로몬의 성전을 모사한 거라 믿어졌다. 따라서 솔로몬의 성전에 언약의 궤가 모셔진 것처럼 채플의 제단에도 보물들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제단은 텅 비어있다. 소설 <다빈치 코드>의 묘사와 달리, 제단 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다윗의 별 같은 그림도 없다. 


(사진7-87. 장인의 기둥(앞)과 도제의 기둥(뒤)으로 구획된 제단 천장에도 입방체가 매달려있다 ©ketty schott)


   그래서 호사가들은 제단 지하에 보물들이 묻혀있다고 주장한다. 더 자세히는 채플 지하에 비밀의 방이 있을 거란다. 일부에선 초음파를 통해 비밀의 방을 확인했고 발굴도 요청하였으나, 로슬린 측이 이를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방의 존재를 싱클레어 가문도 오래전부터 믿고 있었던 듯하다. 윌리엄 싱클레어의 뒤를 이어 로슬린 2대 백작이 된 제임스 싱클레어는 자신의 무덤을 안치하기 위해 이 비밀의 방에 들어가는 입구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전한다.      


   영화 <다빈치 코드>를 봤다면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지하에 내려가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소설에는 없는 내용이다) 비밀의 방에 대한 전승을 접목시킨 건데, 실제로 제단 옆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계단 아래 크립트라 불리는 방은 채플에서는 지하이지만 엄밀하게는 1층에 해당한다. 로슬린 채플이 언덕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언덕 아래 단차를 이용한 것이다. (갑자기 여기서도 산티아고 대성당이 떠올랐다. 산티아고 대성당도 단차를 이용해 만들어진 크립트가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게 봉헌된 곳이 아니던가!) 


   이 아랫쪽 방은 로슬린 채플이 지어지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공간의 흔적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이 지하에서 비밀의 방 입구를 발견하지만, 크립트 내부는 예상외로 단촐하다. 싱클레어 가문의 문장인 톱니로 된 십자가 형태의 리브가 천장을 받쳐주고, 그 아래 조그만 제단이 있을 뿐이다. 로슬린 채플이 건설될 당시 이곳은 현장사무소로 사용되었고(당시의 낙서가 벽에 아직도 남아있다), 후에는 싱클레어 가문의 개인 채플이 된다. 


(사진7-88. 로슬린 성당의 지하 크립트 ©www.rosslynchapel.com)


   그리고 여기 유명한 무덤도 하나 있다. 조그만 석관인데, 무덤의 주인공은 석관 뚜껑에 새겨졌다. ‘윌리엄 드 세인트 클레어’, 그 이름 밑에 템플기사(Knight Templar)란 글씨도 선명하다. 


(사진7-89. 크립트에 있는 템플기사단의 묘지석©www.pinterest.co.kr/pin/420523683929404298)
(사진7-90. 템플기사단 석관 상징 도해)



   석관의 주인공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싱클레어 가문에서 윌리엄은 꽤 흔한 이름이었다. 로슬린 성당을 건설한 15세기의 윌리엄일 수도 있는데, 그 전후로도 열 명의 윌리엄이 더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독립영웅, 로버트 브루스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심장을 예루살렘까지 가져가려다 스페인에서 전사한 14세기의 윌리엄일 거라는 게 지금까지의 통설이긴 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싱클레어 가문이 템플기사단과 관련이 있다는 거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석관에 새겨진 상징 기호다.      


  ❋     


   분명히 팔각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템플기사단의 표식으로 알려진 크로아 파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기호다. 흡사 여덟 개의 포인트를 가진 별이나 바람개비 모양 같다. 분명히 이걸 어디선가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프로파일러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을 그간 축적된 데이터와 일일이 맞춰보듯, 어느새 나는 깊숙이 저장해둔 기억들을 재빠르게 불러와 이 상징과 대조시키고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찾았다! 


   방금까지 채플에서 유심히 봤던 그린맨이었다. 그린맨의 얼굴 뒤편에 배경으로 조각된 후광은 분명히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여덟 개의 선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채플의 동쪽끝, 장인의 기둥과 도제의 기둥이 서 있는 제단 안쪽(로슬린 채플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천장을 받치는 아치와 리브가 서로 교차하는 모양도 정확히 이 상징을 따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채플을 구성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나는 이 상징을 지금까지 여행한 꽤 많은 곳에서 봐왔음을 알아챘다. 템플기사단 본부가 있던 템플마운트의 바위위의 돔 사원 내부에 벽을 빙 둘러가며 그려져 있었고, 에딘버러에 있는 프리메이슨 그랜드 롯지에도 봤다. 입구의 쇠문을 구성하는 무늬가 바로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여덟 개의 선이었다. 로슬린 채플을 매개로 템플기사단과 프리메이슨이 이렇게 또 연결되는 것도 신기하다. 또 어디서 봤는데? 분명히 가까이 있는 더 큰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같다. 곧 터질 듯 머릿속에서 우물우물하지만, 선뜻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찜찜한 기분을 남기고 본당에 다시 올라왔다.    

           

   이제 채플을 모두 둘러봤다. 규모는 작지만 내부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하나하나 눈에 담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밖으로 나와 잠시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채플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생각에 잠겼다. 모든 시련과 의례를 통과하고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온 입문자들은 무엇을 전수받았을까? 그들은 원하던 것을 여기서 얻었을까?      


   나 역시 템플기사단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 예루살렘부터 시작해 그들이 남긴 전설이 난무하고 상징이 횡행하는 장소와 건축물을 찾아 유럽을 헤집고 돌아다닌 여행이었다. 기나긴 꿈을 꾼 것만 같다.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 방명록에 ‘꿈만 같다’ 한 문장을 적었다. 그때부터였다. 영문도 모른채 아빠를 따라 로슬린 채플에 이끌려 온 아이들이 이 채플을 ‘꿈만같다 성당’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64화에서 계속, 글이 괜찮았다면 '구독하기'와 '좋아요'를 꾹~눌러주세요~!)

*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7-85 : By Johanne McInnis - email to ticket,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817330

사진7-86 : https://www.pinterest.co.kr/pin/352547477051353851

사진7-87 : https://www.pinterest.co.kr/pin/914862416115661

사진7-88 : https://www.rosslynchapel.com

사진7-89 : https://www.pinterest.co.kr/pin/420523683929404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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