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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Jul 10. 2023

(보너스 여행) 영국의 만리장성, 하드리아누스 성벽

61/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영국 런던~에딘버러편-15)

    다시 A1 도로를 탄다. 잉글랜드 북부의 대도시, 뉴캐슬-어폰-타인에 가까워지면 영국의 하회마을, 더럼(Durham)을 스친다. 위어 강이 말발굽 모양으로 흐르면서 고풍스런 구시가를 감싼 모습이 정겹다. 구시가에는 영국 최초의 세계문화유산, 더럼 캐슬과 더럼 대성당이 붙어 있다. 무려 천 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캐슬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더럼 대학교 건물로 사용 중이다. 더럼 대성당은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의 사본이 보관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배경으로 쓰이면서 유명세를 탔다.


   <해리포터>하면 또 빠질 수 없는 곳이 안윅 캐슬(Alnwick Castle)이다. 역시 A1에서 만난다. 북부의 윈저성이라 불리는 안윅 캐슬의 널따란 정원에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공을 가지고 경기하는 퀴디치 게임이 촬영되었다.       


(사진7-71. 더럼 캐슬 ©이경석)
(사진7-72. 안윅 캐슬, <해리포터>의 퀴디치 경기가 촬영된 잔디밭 ©이경석)


   여기서 스코틀랜드 국경까지는 멀지 않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분명 별개의 나라이지만, 여타 유럽 국가들처럼 국경이 개방되어 경계를 넘는 재미가 없다. 다만, ‘Welcome to Scotland’가 적힌 커다란 입간판에다가 양 국가의 국기까지 세워져 그런대로 국경을 통과하는 기분은 든다.


   그런데 두 나라 간 국경을 표시하는 확실한 구조물이 2세기 로마 시대에도 있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이다. 성벽은 지금의 국경보다 조금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이리시 해부터 북해까지 브리튼 섬 북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데 길이만 117km에 달한다. 영국의 만리장성이라 부를 만하다.


(사진7-73. 하드리아누스 성벽 ©이경석)


   성벽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많이 허물어졌지만, 지금은 영국 최고의 트레킹 코스다. 성벽 근처에는 16개 이상의 대규모 로마요새들이 아직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버도스왈드, 체스터스, 빈돌란다, 하우스테즈 요새를 ‘빅(big)4’로 부른다. 주변의 농장에서 민박을 묵어가며 전부 둘러봐야 할 만큼 근사한 유적이다. 특히 하우스테즈 요새는 막사를 비롯해 곡물창고, 병원 등 건물 유구가 생생한데, 가장 내 눈길을 끈 건 단연 화장실 유적이었다.             


   한번에 800여 명이 생활하는 요새는 전염병을 염려해 화장실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화장실 내부에는 우리 지하철처럼 서로 마주보는 긴 의자가 놓였고, 의자에 모두 스무 개의 구멍이 뚫렸다. 오물은 낙차를 이용해 흐르는 빗물과 함께 씻겨가도록 고안되었다. 일종의 수세식 화장실이다.


(사진7-74. 하우스테즈 로마요새에 있는 화장실 유적 ©이경석)


   특이한 점은 칸막이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얼굴을 보며 응가를 하는 화장실이라니......! 


   처음 봤다면 기겁했겠지만, 주책없이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배시시 웃고 말았다. 사실, 혼자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난처하고 민망한 일이 억수로 생긴다. 그중에서도 갑작스런 배탈로 급똥이 마려웠던 처절한 이야기만 모아도 책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을 정도다. 별의별 화장실을 경험했다. 그래도 바닥에 구멍만 수십 개 뚫린 티벳의 공중화장실은 처음 본 순간, 절대 이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날 아침, 고산병을 잠재우려고 영접했던 야크버터 차가 제 본분을 잊고 미끄덩거리며 내 창자 속 모든 음식물을 선동하고 다닌 게 틀림없었다. 곧 쏟아질 기세였다. 고상한 척 결연한 맹세 따위 하는 게 아니었다. 비굴해진 몸뚱어리는 구원을 갈구하며 화장실 문고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렇게 어렵사리 문을 열었지만 혼미한 정신에도 난 일말의 기대가 무너지는 절망과 마주해야 했다. 벌써 한 사람이 힘겹게 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얼떨결에 인사까지 건넸다. 눈이 마주친 그 짧고 긴박한 찰나에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 많은 구멍 중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까? 마주 보며 앉자니 분위기 참 거시기하고, 반대 방향으로 돌자니 맨살의 엉덩이를 얼굴에 들이대는 게 무례해 보였다. 뭐, 그게 그거지만 새삼 깨달은 것은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소하는 데에도 문명인이라는 품위를 지키기 위해 많은 고민과 대가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갖춰진 환경에서 살짝 벗어났을 뿐인데 허둥지둥대는 꼴이라니!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디쯤이고, 지켜야 할 품위의 기준은 뭘까? 생각보다 허약한 토대 위에 아슬아슬 서 있는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에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면 화장실에서 배운 개똥철학치고 너무 거창한가?         


(사진7-75. 티베트 공중화장실 중 하나, 그래도 여긴 2열의 소박한 규모에 앞뒤로 가리개라도 있었다 ©이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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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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