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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Jul 05. 2023

(보너스 여행) 영국의 경주, 요크와 주변 볼거리

59/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영국 런던~에딘버러편-13)

   로이스턴을 떠나 다시 A1에 접어들었다.


   곧바로 이정표가 베드포드(Bedford)를 가리킨다. 영국에서 오후 4시면 즐기는 애프터눈 티의 발상지이다.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다 노팅엄(Nottingham) 인근에서 로빈훗의 무대였던 셔우드 숲을 지날 즈음 링컨(Lincoln)을 만난다.


   링컨의 랜드마크는 단연 링컨성당이다. 영국에서 가장 큰 교구의 중심지였던 만큼, 완공 후 200년간 유럽에서 제일 높았던 건축물이다. 노르만 양식과 고딕 양식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육중한 성당은 영화 <다빈치코드>에 출연한 관광명소다. 영화의 주요 무대였던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내부 촬영을 불허하자, 그와 가장 유사한 구조와 분위기를 가진 장소로 찾은 성당이다. 링컨성당 측은 영화 내용이 쓰레기라며 혹평을 했지만, 촬영 조건으로 10만 파운드의 헌금을 벌어들였고 영화 개봉 후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는 후문이다.         


(사진7-59. 링컨대성당 ©이경석)


   차는 이제 잉글랜드 제3의 도시, 셰필드 인근을 지난다. 세계 최초 축구클럽(셰필드 FC)과 축구 그라운드(샌디게이트)를 만든 스포츠 도시이자, 7개의 언덕 위에 건설되어 잉글랜드의 로마로 불리는 셰필드는 영국의 대표적 철강도시였다. 스테인레스 스틸도 여기서 처음 발명됐다.


   그러다보니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주요 폭격 대상이었다. (따라서 영국의 다른 도시와 달리 남아있는 문화유산이 별로 없다) 아직도 수작업으로 만드는 메이드 인 셰필드 커틀러리는 명품 대우를 받지만, 1980년대 철강산업의 몰락은 도시를 침체시켰다.


   시 당국은 셰필드를 문화와 교육도시로 탈바꿈하는 도시재생을 추진했다. 비어있는 공장과 창고를 가수들의 녹음실과 대학교 실험실로 개조해 성공했다. 심각한 공해 때문에 조지 오웰이 최악의 도시라며 치를 떨었던 셰필드는 이제 녹지율 60%가 넘는 비교불가 전원도시가 됐다. 더구나 도시의 1/3은 영국 최초의 국립공원인 피크디스트릭에 걸쳐있다. 채스워스 하우스를 비롯해 국립공원 곳곳이 영화 <오만과 편견>의 촬영지가 될 만큼 영국 자연의 속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7-60. 채스워스 하우스 ©이경석)


   특히, 여기서 발원한 데르웬트 강을 따라 더비(Derby)까지 약 25km에 이르는 계곡에는 방직공장들이 즐비하다. 수력을 이용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시스템을 처음 선보인 곳이다. 후에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산업혁명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공장시스템이 먼저 작동 중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산업혁명 이후 방직산업의 중심은 셰필드 북쪽 브래드퍼드(Bradford)와 리즈(Leeds)가 있는 요크셔 지방으로 옮겨졌다. 당시 공장을 중심으로 주거지까지 조성된 복합산업타운의 흔적이 브래드퍼드 북쪽, 셀테어(Saltaire) 지구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데르웬트 계곡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영국이 자랑하는 산업혁명의 역사적 자산이다.         


(사진7-61. 셀테어 복합산업타운, 세계문화유산 ©이경석)


   브래드퍼드는 또한 영국식 카레의 원조다. 방직산업을 위해 이주한 인도와 파키스탄계 노동자들의 주식인 카레가 여기서 영국인 입맛에 맞게 개량되었고 대영제국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그게 돌고돌아 우리나라까지 전해진 맛이다) 지금도 시내에는 인도음식점들이 즐비한데, 어딜 가도 착한 가격에 맛도 꽤 좋다.


   도시 정중앙엔 시티파크라 불리는 엄청난 크기의 오픈 스페이스가 있는데, 여기엔 서프라이즈가 숨겨져 있다. 시청과 법원 사이 그냥 평범해 보이는 센터네리 광장에는 영국에서 가장 높다는 높이 30m의 분수를 포함해 다양한 바닥분수가 아침부터 그냥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온다. 처음엔 별 흥미가 없었는데, 아이들과 근처 국립과학&미디어 박물관에서 추억의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구경하고 나오니(유럽 최초의 아이맥스 영화관도 있다) 광장 전체가 거대한 호수로 변해있는 게 아닌가! 거울수영장(Mirror Pool)으로 불리는 호수는 가장 깊은 곳이 25cm 밖에 되질 않아 여름에는 아이들의 멋진 놀이터가 된다. 여름에는 호수로 변하는 광장이라니~참신한 디자인이다.


(사진7-62. 브래드퍼드 센터네리 광장, 거울수영장으로 변신중 ©이경석)


   예술가의 도시, 브래드퍼드까지 왔다면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가장 몸값이 비싼 현대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19세기 중반 브론테 자매의 흔적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브래드퍼드 북서쪽에 있는 하워스(Howarth)라는 작은 마을이다.


   알다시피, 브론테의 세 자매는 모두 작가였고, 요절했다. 여성이 책을 낼 수 없던 시기에 샬롯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남성의 필명으로 출판했다. 언덕 많은 하워스는 남루한 풍경이 영락없는 깡촌인데, 자매의 단촐한 생가가 박물관으로 남아있다. (여기엔 한글 안내서도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황량한 평야가 이어진다. 히스꽃 만발한 바람부는 황야를 따라 2시간여 걷다보면 <폭풍의 언덕>의 주요 무대가 되는 외딴 저택에 다다른다. (다 허물어져가는 단촐한 석조주택으로 탑위딘스 Top Withens라 불린다) 여기에 고아 소년이 양자로 들어와 사랑하고 복수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막장드라마 같은 인생이 제목 그대로 폭풍처럼 펼쳐진다. 브론테 자매가 살던 당시와 별반 달라진 것 없을 풍경을 따라 걷는 길은 한없이 목가적이지만 날씨에 따라 순식간에 염세적인 분위기로 가팔라진다. 문학애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소설같은 자신의 인생을 음미하며 천천히 걷기 좋은 길이다.       

  

(사진7-63. 좌 : 하워스의 브론테 자매 생가, 우 :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 되는 황량한 평야 ©이경석)


   드디어 요크에 들어섰다.


  잉글랜드에선 드물게 도시를 둘러싼 성곽이 잘 보존된 중세도시다. 성곽을 따라 도시를 걷다보면 고딕 양식의 웅장한 요크민스터나 예전 요크 캐슬의 흔적인 클리포드 타워 같은 랜드마크를 만난다. 이 둘 사이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들의 거리, ‘다이애건 앨리’의 모티브가 된 쉠블즈 골목도 있다. 골목길 좌우 집들이 특이하게 1층보다 2층, 2층보다 3층이 더 튀어나와 있는데, 1층을 기준으로 매겼던 세금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어느 곳이나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는 모양이다.               


  

(사진7-64. 위 : 클리포드 타워, 아래좌 : 요크민스터, 아래우 : 쉠블즈 골목 ©이경석)


   요크에 왔으면 최소 1박은 해야 한다. 인근에 볼만한 게 꽤 많다. 그중에 세 가지만 꼽으라면 파운틴스 수도원과 캐슬 하워드, 그리고 휘트비다.


   파운틴스 수도원은 12세기 건립된 시토회 수도원이다. 요크에 있는 베니딕트회 소속의 성 마리아 수도원(지금도 요크대학교 시내쪽 킹스매너 캠퍼스 한쪽에 폐허가 일부 남아있다)에서 교리 논쟁으로 쫓겨난 시토회는 400년간 잉글랜드에서 제일 부유한 가톨릭 수도원으로 성장했다. 자급자족하며 엄격한 금욕생활을 지향한 시토회답게 수도원은 작은 도시를 이룬다. 성당을 중심으로 수도자들의 방과 부엌, 작업장 등이 모여있는 복합건물은 외딴 시골에서 만나기엔 너무 뜻밖의 규모라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헨리 8세가 수도원을 폐쇄한 이후 초록의 잔디 위에 남은 앙상한 건물 뼈대는 미래인류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이내 폐허의 숨은 매력에 끌린다. 장식이 모두 사라져 단아해진 구조체와 연륜이 묻어나는 이끼 낀 돌들은 마치 처음부터 자연의 일부였던 양 무심하다.


   폐쇄된 수도원을 횡재한 땅주인은 주변을 영국식 풍경정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규모가 서울대학교와 비슷한 백만 평에 이른다. 중간에 주인이 바뀌었지만 무려 800여 년 간 수도원 폐허를 오브제로 하여 수로 주변에 산책길과 연못, 건축물을 배치하면서 사슴과 양들이 뛰어노는 멋진 공원이 완성되었다. 지금은 파운틴스 수도원과 함께 스터들리 왕립공원이라는 이름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사진7-65. 파운틴스 수도원 ©이경석)


   캐슬 하워드는 하워드 가문의 대저택이다.


   하워드 가문이 누구던가?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 앤 불린의 어머니 가문이었고, 다섯 번째 부인인 캐서린 하워드도 배출했다. (앤 불린과 캐서린 하워드는 고종사촌 간이다) 두 명 모두 공교롭게 참수당했지만, 명문가로서 하워드 가문은 아직도 영국 곳곳에 10곳 이상의 영지를 소유하고 있다. 16세기부터 종갓집이 된 캐슬 하워드엔 여전히 후손이 산다. 그래도 절반은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저택의 이름에 캐슬이 붙은 건 여기가 예전 성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웅장하면서도 화려하고, 얼핏 대칭 같지만 살짝 어긋난 파격이 돋보이는 바로크식 건물은 영국의 베르사이유 궁이라 해도 손색없다. 특히 평지로 조성한 대지에 좌우대칭형 건물과 기하학적 정원으로 자연을 압도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프랑스의 영향이다. 이러한 건축방식은 잉글랜드의 다른 대저택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진7-66. 하워드 캐슬 ©이경석)


   반면 같은 영국이지만, 스코틀랜드의 거성들은 산지가 많은 탓인지 주변 지형을 활용해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가령, 전설의 괴물 네시로 유명한 네스호 서쪽 어쿼트 캐슬(Urquhart Castle)은 18세기 파괴되었지만 피터팬에 나오는 네버랜드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폐허조차 풍경 속에 녹아 들어간다. 스카이섬 길목에 자리잡은 에일린 도난 성(Eilean Donan Castle)은 평범해 보이는 협곡을 전설이 깃든 깊고 무거운 무대로 바꿔버린다.


(사진7-67. 위 : 어쿼트 성, 아래 : 에일린 도난 성 ©이경석)


   그런데 캐슬 하워드에도 이런 픽처레스크한 공간이 몇 있다. 특히 동쪽으로 난 긴 오솔길의 끝자락에 네 면이 대칭인 팔라디안 양식의 모뉴먼트(‘네 바람의 타워’라는 명칭조자 시적이다!)가 있는 언덕이 그랬다. 타워 아래 경사지에 반쯤 누워 윈도우 배경화면을 찢고 나온 듯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스라이 대지의 숨소리가 내 심장박동과 공명하며 온몸을 경쾌하게 울리는 듯하다.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가만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군대 사열을 받는 것같은 캐슬 앞 근엄한 정원에선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모두 여기 몰려있다. 편안함이 드는 공간은 누구나 똑같이 느껴지나 보다.        

     

(사진7-68. 하워드 캐슬의 '네 바람의 타워' ©이경석)


이제 휘트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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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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