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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Jun 30. 2023

영국 A1 국도 따라 남겨진 템플기사단의 흔적들

57/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영국 런던~에딘버러편-11)

   런던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누군가 그랬다. 런던이 싫증나면 인생이 싫증난 거라고. 이 사랑스런 도시는 몇 번을 와도 떠나는 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출발 전날 아이들과 ‘라이언킹’을 봤다. 1999년부터 롱런하고 있는 뮤지컬은 그리스 신전 스타일의 포티코를 가진 라이시엄 극장(Lyceum Theatre)에서 공연 중이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뮤지컬의 성지인 웨스트엔드 지역 가장자리에 위치한 극장은 이번 여행 런던의 마지막을 보내기엔 최적의 장소다. 브램 스토커와 코난 도일의 흔적을 모두 볼 수 있어서다.


   더블린 태생의 브램 스토커는 당대 최고의 배우, 헨리 어빙의 제안을 받아 런던으로 온다. (그는 배우 최초로 기사 작위도 받고, 트라팔가광장 한켠에 동상까지 세워진 국민배우였다) 그리고 어빙이 소유한 극장에서 무려 27년간 매니저를 맡는데, 그게 라이시엄 극장이다.


   프리메이슨이었던 어빙은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였지만, 역시 프리메이슨이었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작품도 이곳 무대에 처음 올렸다. 코난 도일과 브램 스토커의 교류는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참고로 코난 도일은 <네 사람의 서명>에서도 극장을 사건의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시킨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엔 여기서 18년간 미스월드가 개최됐고, 퀸, 레드제플린, U2, 핑크플로이드 등 전설적 영국 팝스타들의 공연도 있었으니 그냥 들르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사진7-52. 라이시엄 극장, 벽에 새겨진 개관년도 1834년이 선명하다 ©이경석)


   이제 진짜 떠날 시간. 스코틀랜드까지 이동 방법은 여러 가지다. 워낙 장거리라 예전엔 야간열차 침대칸을 타기도 했다. 비싼 만큼 편하지만, 이번엔 여기저기 들를 겸 자동차로 올라간다.


   런던을 빠져나오자 금세 A1에 접어든다. A1은 런던과 에딘버러를 잇는 660km의 영국에서 가장 긴 도로다. 영국은 고속도로에 톨게이트가 대부분 없어 진출입이 빠르다. 대신, 고속도로 입구나 국도엔 인터체인지 대신 회전교차로가 많긴 하지만,  익숙해지면 이만큼 실용적인 게 없다.


   영국에서의 운전은 여러모로 신선하다. 무엇보다 신호등 없는 좁은 도로가 많은 까닭에 운전자들끼리 눈빛을 교환해야 할 때가 많다. 당연히 양보운전은 필수다. 가령, 교차로에서 마주친 상대방이 헤드라이트를 두 번 깜빡거린다. 놀라지 마시라. 시비를 거는 게 아니다. 먼저 가라는 좋은 의미다. 고맙다고 손을 들어주면 된다.


   눈빛을 교환해야 하니, 선팅을 한 차도 거의 없다. 신호등에 의지할수록 상대방 차는 그냥 기계로 인식될 뿐이다. 기계에게 요구하는 건 정확성이다. 그러니 신호가 풀렸는데 출발하지 않으면 경적을 울리고, 끼어들면 짜증난다. 기계에게 양보할 마음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호등 대신, 차에 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보는 어렵지 않고, 심지어  양보로 얻는 뭔지 모를 쾌감은 중독성도 은근 가진다. (난폭운전은 심성의 문제가 아닐 수도!)


   신호등 대신 사람을 보며 운전하면 내가 상대 운전자로부터 존중받는다는 느낌도 상당하다. 그만큼 나도 존중하게 된다. 하지만 회전교차로에서 먼저 돌고 있는 차를 무시하고 진입하는 몰상식한 운전자에게는 (영국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경적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배려는 한없이 따뜻하지만, 일탈에는 무섭도록 차갑게 응징하는 모습은 영국이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런던을 벗어나자 양떼가 뛰노는 푸른 초원이 시야를 한가득 채운다. 특히 유채꽃이 만발하는 4월말, 온 대지가 노란 양탄자로 덮인 풍경은 그 자체가 힐링이다. 거기에 새파란 하늘이 극명한 보색관계를 이루면 마치 고흐의 그림 속을 달리는 듯 환상적이다. 그러다 문득 현타가 오는 건 몽실몽실 하얀 구름 때문이다. 바람이 많은 탓에 꿈틀거리며 빠르게 무한 변신해대는 구름은 입체적이기까지 하다. 윌리엄 터너나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 속 휘몰아치는 구름이 비로소 이해됐다고나 할까. 덕분에 불멍을 때리듯 영국에선 구름멍에 빠지는 전에 없던 습관도 생겼다. (영국에 구름감상협회도 있단다. 나같은 몽상가가 꽤 있나 보다)     


(사진7-53. 윌리엄 터너 作 <전함 테메레르>는 영화 <007스카이폴>과 20파운드 지폐에도 나온다.  우 : 존 컨스터블 作 <건조마차>, 모두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얼마 지나지 않아 독특한 이름의 도시를 만났다.


   인구가 25만명 정도로 제한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는 팽창을 막기 위해 외곽에 농경지 중심의 개발제한지역을 뒀다. 중심지역을 둘러싼 여섯 개의 생활권을 두고 이들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계획한다. 도시 중심에는 중앙공원을 배치하고 여기서 방사형으로 뻗은 도로와 도넛 형태의 가로수길을 따라 주택이 들어선다. 아니, 영국에서 웬 세종시 얘기냐고? 그럴 리가!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늘면서 주택, 교통, 환경 등 엉망이 된 도시를 대신해 20세기 초 에브니저 하워드가 내놓은 이상적인 ‘전원도시’ 개념이다.


   하워드는 자신의 구상을 직접 실천에 옮겼고, 그렇게 탄생한 신도시가 ‘레치워스(Letchworth)’와 ‘엘윈(Welwyn)’이다. 모두 도시 이름에 ‘가든시티(Garden City)’가 붙어 있는 이유다. 세종시와 다른 점은, 토지를 모두 공공이 소유한다는 점이다. 토지를 장기간 임대해 저렴한 주택이 공급되고(일종의 토지임대부 주택이다), 이익은 모두 주민들에게 재투자된다.


   최근 99년의 토지 임대기간이 끝나자 주민들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대신, 999년의 임대권 연장을 요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층의 타운하우스를 밀고 아파트를 건설해 재산을 증식할 기회 대신, 쾌적하고 행복한 주거를 선택한 것이다. 소유와 존재는 정녕 양립할 수 없는 걸까?     


(사진7-54. 좌측부터 하워드의 '전원도시' 개념도, 세종시 도시기본개념도, 중앙공원과 방사형도로를 가진 레치워스 가든시티 항공뷰 ©www.archdaily.com)


   레치워스 인근 지역은 템플기사단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런던의 템플처치에 이어 1199년부터 55년간 여기에 템플기사단 영국지부가 자리를 잡았다. 템플 딘슬리(Temple Dinsley)라 불린 그곳은 레치워스에서 남서쪽 8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성채로 둘러싸였던 본부는 현재 ‘프린세스 헬레나 칼리지’라는 중고등학생 사립 기숙학교가 됐다. 기사단의 보물이 여기 어딘가 숨겨졌다는 전설로 인해 아직도 학교 연못에서 몰래 헤엄치는 보물사냥꾼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사진7-55. 프린세스 헬레나 칼리지 ©PHC facebook에서 인용)


   또한 템플기사단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광활한 영지에서 생산된 농산품을 교환할 시장도 개설했다. 그 시장은 점점 발전해 지금은 조그만 도시가 되었는데, 발독(Baldock)이다. 레치워스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불과 3km 떨어져있다. 발독에는 아직까지 템플기사단의 상호를 단 호텔이나 스포츠센터는 물론, 중학교까지 있다. 가장 번화가인 하이 스트리트(영국은 어느 도시든 중심 가로엔 하이 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붙어있다)가 시작되는 북쪽 끝에는 템플 기사단이 건설한 성모마리아 교회도 아직 남아있다.


   여기서 캠브리지 방향 동쪽에는 로이스턴(Royston)이라는 작은 도시도 있는데, 템플기사단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스터리한 유적 하나가 정말 우연히 발견된다.


   바로 로이스턴 동굴이다!


(58화에서 계속, 글이 괜찮았다면 '구독하기'와 '좋아요'를 꾹~눌러주세요~!)

*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7-54좌 : By Ebenezer Howard (1850-1928) - originally published in &quot;Garden Cities of tomorrow&quot;, Sonnenschein publishing, 1902; this file was made as a cutout of http://www.oliviapress.co.uk/save0033.jpg (cover of the book &quot;Robert Beevers: The Garden City Utopia: A Critical Biography of Ebenezer Howard, Olivia Press&quot;.,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085014

사진7-54우 : https://www.archdaily.com/961275/what-are-garden-cities/608fd82ff91c816f5300014b-what-are-garden-cities-image

사진7-55 : https://www.facebook.com/PHChitchin/photos/a.646793888806958/191913449490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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