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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Jun 28. 2023

코난 도일 vs 브램 스토커

56/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영국 런던~에딘버러편-10)

   프리메이슨계의 걸출한 영국 문학가, 코난 도일과 브램 스토커는 동시대 사람이지만 각자의 세계관은 미묘하게 달랐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안과 의사였던 코난 도일은 명탐정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안착시켰다. 감춰진 어둠 속 진실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추론을 통해 밝혀내는 과정이야말로 이성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바스커빌 가의 개>에 나오는 ‘검은 개’와 같이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는 초자연적 현상조차 셜록 홈즈는 증명할 수 있다며 덤볐다. 굉장한 자신감이었다.


   중학생 시절, 교과서 밑에 셜록 홈즈가 나오는 추리소설을 몰래 숨기고 읽었을 정도로 셜로키언이었던 내가 런던에 온 이상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베이커가 221B번지. 홈즈의 집이다.


   시작은 지하철 베이커 스트리트 역!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셜록 홈즈의 동상과 딱 마주치는데, 이때부터 거리의 모든 것이 19세기 소설 속 풍경으로 오버랩된다. 그렇게 5분 정도 걷다 보면 런던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가 입구를 지키는 그곳에 도착한다. 2층에는 그가 방금 놓고 간 듯 따끈한 파이프담배와 사냥모자도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강렬한 존재감 덕분에 마치 유명인의 생가에 온 듯 흥분된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집단 망상이라는 전염병이라도 창궐한 것일까? 셜록 홈즈에 열광한 독자들은 베이커가 221B번지로 팬래터와 사건을 의뢰하는 편지들을 쏟아냈다. 그러자 존재하지 않았던 221B번지를 대신해 소설 속 분위기와 흡사한 239번지가 1900년에 문을 열고 셜록 홈즈의 하숙집을 자처했다. (BBC드라마 <셜록>은 여기가 아닌, 유스턴역 근처 1층에 Speedy’s Cafe가 있는 건물에서 촬영됐다. 덩달아 카페도 영드 매니아의 순례지가 되었다) 2008년 조사에서 영국인의 58%가 아직도 셜록 홈즈를 실존인물로 믿고 있을 정도이니, 그의 독보적인 명성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사진7-48. 좌: 베이커 스트리트 역 입구의 셜록 홈즈 동상, 우: 221B번지 셜록 홈즈의 하숙집 ©이경석)

 

   그런데 동시대에 셜록 홈즈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보여준 소설이 등장한다. 셜록 홈즈가 어둠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 인기를 얻었다면, 이 소설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어둠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다룬다. 바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다.


   여기 등장하는 흡혈귀는 유럽의 옛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겠지만, 이성의 힘을 과신하던 시기에 이성적 판단 너머의 불확실하고 부조리한 모든 것을 총칭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인간이 어둠을 물리친다는 결론은 같지만, 셜록 홈즈 만큼이나 드라큘라의 인기가 높았던 걸 보면 이성을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속내가 꽤나 복잡했던 것 같다. 이성이 가진 능력과 한계치가 어디까지일지를 놓고 다투던 분위기는 프리메이슨 내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브램 스토커가 프리메이슨이란 직접적 증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그는 ‘황금 여명 기사단(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의 회원이었다. 이 단체는 세 명의 프리메이슨(그중 한 명이 철학자 베르그송의 처남, 매더스이다)이 주도하고 대부분 그 단원들로 구성된 만큼, 프리메이슨의 하부조직으로 본다. 특이하게도 이 단체는 연금술, 심령학, 강신술, 점성술 등 오컬트 의식도 차용했다고 한다.


   코난 도일도 프리메이슨이었지만 동시에 황금여명 기사단의 회원이었다. 그는 말년에 스페인독감으로 아들을 잃은 후 아들의 영혼과 접신을 시도하는 심령학에 푹 빠진다. 그는 심령학조차도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유령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굉장한 억지였지만, 모든 것이 이성과 과학 아래 있어야 한다는 맹신이 불러온 결과였다.      


   이 단체의 또 다른 회원으로 알레스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y)라는 괴짜가 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서구에선 꽤 유명한 인물이다. 가령, 비틀스의 여덟 번째 명반 <페퍼 병장의 론리 하트 클럽밴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명인사들로 앨범자켓을 장식하는데 찰리 채플린, 칼 맑스, 아인슈타인, 마릴린 먼로, 처칠, 밥 딜런, 프로이트 등과 함께 크로울리가 등장한다. 록커인 오지 오스본의 명곡 ‘Mr.Crowly’는 그에게 헌사된 노래고, 레드 제플린이나 이글스, 데이빗 보위같은 수많은 팝스타들이 공공연히 그를 추종한다고 밝혔다.


   크로울리가 주창한 핵심 사상은 그리스어로 자유의지를 뜻하는 ‘텔레마(Thelema)’다. 그는 텔레마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마술적 힘이 나온다고 믿었다. 신과의 주종관계를 강조한 중세 분위기에 숨막히던 대중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한껏 찬양한 그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킨다며 마약이나 성적 행위를 동반한 흑마술을 사용했다. 이런 까닭에 그는 히피의 대부, 20세기 마지막 마법사 혹은 밀교 교주 등으로 불린다. 동양의 탄트라나 카마수트라에 서양의 그노시스주의를 적절히 섞으며 오컬트를 아예 종교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그의 독특한 사상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사진7-49. 비틀즈 8번째 앨범 표지, 제일 뒤쪽 왼쪽에서 두 번째가 알레스터 크로울리)

  

   이렇듯 프리메이슨이 오컬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과학에서 종교까지 극단을 오갔다. 그 속에서 브램 스토커는 현실 속 어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공포를 통해 이성과 과학의 불완전성을 고백하지만, 결국 인간들이 힘을 합치면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는 설정으로 양 극단을 절충하려 했다.




   소설 속 <드라큘라>는 루마니아에서 시작된다. 드라큘라 백작의 실제 모델은 15세기 루마니아 남부, 왈라키아 지역을 다스리던 블라드 3세다. 그는 드라큘(루마니아어로 드래곤)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블라드 2세의 아들인 까닭에 드라큘라(드라큘의 아들)로 불렸다. 블라드 3세는 또한 체페슈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었다. ‘꼬챙이’라는 뜻인데, 루마니아를 침략한 투르크족에 맞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그가 생포한 포로들의 항문에 꼬챙이를 꿰어 길가에 세워뒀기 때문이다. 극악한 사형 방법이었지만 당시 전쟁사에서 특별히 더 잔인하다 할 수는 없었기에 루마니아의 민족영웅인 그가 흡혈귀의 대명사처럼 언급되는 걸 루마니아인들은 불편해한다.


   루마니아의 브라쇼브에 가면 드라큘라 성이라 불리는 브란성을 방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성은 드라큘라하고는 관련이 없다. 소설 속 드라큘라의 고향이 블라드 3세가 다스리던 왈라키아가 아닌 북쪽의 트란실바니아로 바뀌면서 해당 지역의 고성중에서 급하게 캐스팅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칙칙하고 음험한 기운이 소설 속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지금은 루마니아 제일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처음 갔을 때 문 높이나 방의 크기가 무척 작아 드라큘라는 분명 숏다리일 거라 확신했더랬다.


(사진7-50. 루마니아 브란성 외관, 내부, 내부에서 바라본 트란실바니아 경관 ©이경석)


   사실, 소설의 주된 무대는 영국이다. 드라큘라 백작이 영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심지어 드라큘라의 성도 브램 스토커가 자주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동해안 지역의 슬레인스 캐슬(Slains castle)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설에서 드라큘라의 성을 특징짓는 게 팔각형의 방이다. 모든 복도와 방은 이 창문도 없는(외부와 접하지 않은) 건물 중앙의 팔각형 방을 거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포영화의 미장센으로도 손색없는 이 폐쇄적이고 특이한 미로가 브란성에는 없고 슬레인스 캐슬에는 있다.


   또한 드라큘라 백작에 희생당하는 최초의 영국인이 잉글랜드 동해안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 휘트비(Whitby)에서 나온다. 휘트비는 영국의 소도시 중 으뜸가는 추천 여행지이기도 하다. 분위기가 사뭇 궁금했다. 안 가볼 수가 없다. 위치도 런던에서 이번 영국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로슬린 성당이 자리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까지 가는 도중에 있다. 망설임 없이 경유지 하나를 추가해본다.             


이제 템플기사단 입문의 길 종착지이자 프리메이슨의 성지를 향해 출발해볼까......


(사진7-51. 스코틀랜드 슬레인스 캐슬 ©DanChristie_24, https://www.reddit.com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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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7-51 : https://www.reddit.com/r/Scotland/comments/koac0l/new_slains_castle_aberdeensh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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