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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Aug 19. 2024

나는 이렇게 쉬어도 되는 걸까?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호기롭게 시작했던 육아휴직이 본 궤도에 올랐다. 즉, 2월 중반 아내와 함께한 공동 육아를 3월이 되면서 혼자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일을 안 나가고 집에서 아내가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아기와 단 둘이 지내는 삶... 첫날은 굉장히 어색했다. 아이를 혼자 본다는 것이 어색한 것이 아니라 일을 안 나간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일을 쉬어 본 것이 언제였던가?

군입대 전 3주 정도, KOICA 해외봉사에서 돌아와 적응하느라 약 한 달, 편입 후 한 달, 대안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게 되기까지 한 달.. 임용시험을 준비하느라 반년 정도 공부를 한 것 이외에 약 4달 정도만 쉬어보고 나머지는 생계를 위해 일을 했던 것 같다. '아휴직이 쉬는 것은 아니지'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공부나 아무 일도 하고 1년간 보내게 것은 나에게 사건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루의 삶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굉장히 어색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유식 하기 전 일상

우리 집 아기는 통잠을 자고 난 뒤부터 보통 6시 이후로 일어났다.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우선 아기의 상태를 관찰했다.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인지 아니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찡얼 대는 것인지.. 배가 고프면 하는 수 없이 분유를 먹이고 하루를 시작했다. 찡얼 대는 것이면 토닥토닥거리면 다시 잠이 들어 보통 8시~9시까지 잠을 더 자고 일어나 분유를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6시든 8시 전후든 3월의 하루는 어둠이 걷어지고 조금 밝아져야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첫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거실에서 아기와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9시가 조금 넘어간다. 대화가 안 통하는 둘이서 적막하게 있느니 라디오라도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라디오를 틀어놓고 지낸다.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을 듣고 그 내용을 아기에게 전달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10시가 넘어간다. 이때부터 고민이 생기는데 '밖으로 나갈까?' 하는 고민.. 그리고 머릿속에 또 떠오르는 생각이 '내가 지금 학교에 있으면 이런이런 것들을 하고 있겠지?'라는 생각... 참 쓸모없는 생각이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영양가 없는 생각과 내적 갈등을 하다 날씨가 좋은 날은 유모차에 태워 밖으로 나갔다. 우리 집 아기는 유모차를 싫어해 항상 나갈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어떤 날은 잘 있지만, 어떤 날은 싫은 티를 너무 내서 나갔다가 바로 들어온 날도 있었다. 밖으로 나간 날은 보통 30분 정도 있지만 운이 좋으면 1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오면 잠시 쉬었다가 낮잠을 잔다. 낮잠을 자는 시간이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날 잠을 못 자거나 피곤하면 아기와 함께 잠을 자고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만 재우고 뭔가 하기엔 불안해서 딱히 무언가를 도전할 수도 없었다. 1~2시간 정도 자고 나면 일어나 분유를 먹고 다시 놀아주는데 아직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음악을 듣거나 몸으로 놀아주곤 했다. 그러다 오후 1~2시가 되면 다시 낮잠을 자고 나는 또 아기 옆에 누워 있었다. 아기가 일어나면 오후 분유를 먹이고 책 그림도 보여주고 라디오 사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면서 지냈다. 오후 5시 전까지 아기와 나의 삶은 단조로움 그 자체였다. 그러다 5시가 되면 아내가 돌아와 조금 나아졌다. 아내는 아기와 놀고 나는 아내와 먹을 저녁을 만들고 함께 먹지는 못해 교대로 먹고 난 뒤 다시 셋이서 산책을 나간다. 산책은 아침과 겹치지 않게 나갔다 오고 집으로 돌아와 잠깐 놀다가 씻긴 후 마지막 수유를 하고 잠을 재운다. 잠이 드는 시간은 저녁 9시 전후이지만 가끔 10시 전후가 될 때도 있었다. 가끔 날씨가 추우면 오후 산책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중 시간은 이렇게 보냈다. 그래도 주말엔 아내가 육아에서 주양육자 역할을 하고 용인이나 다른 지인 등과 함께 약속을 잡는 바쁘게 살아서 숨통을 틔우고 지낼 있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바쁘게 지냈던 나였는데... 단조로운 이 생활이 적응이 안 됐다. 호기로웠던 육아휴직에서 복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데 걸린 시간은 3주가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육아 휴직은 아직 11개월이나 더 남아 있었다. 어색하기만 한 주중 육아휴직을 행복한 기간으로 바꾸려면 결국 일에 대한 나의 사고 전환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내가 간과한 것이 그나마 이 시기가 육아에서 정말 편한 시기 중 한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당시엔 아기가 누워만 있고 분유를 먹고, 싸고, 자기만 반복했는데 이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는 순간 알게 되었다. 일을 안 하고 어색할 그 시기가 나에겐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기와의 산책은 내가 보지 못한 일상을 보게 했다.

이유식과 함께하는 일상

아기는 감기에 한 번 걸린 것 빼고 큰 이상 없이 잘 자랐다. 날씨도 좋아져 외출도 잦아졌고 힘겨워하던 유모차에서도 조금 더 오래 있어줘 1시간 이상 밖에서 산책도 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예전과 비슷했다. 낮잠도 비슷하게 자고 집에서 노는 것도 조금 더 다양해졌다. 하지만 먹는 것이 달라졌다. 아기가 6개월 전후가 되면서 이유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루에 분유만 6회 정도 먹었다. 그리고 변도 매번 다르긴 했으나 2~3번 정도 보고 냄새도 심하지 않았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내와 나도 아는 것이 없어 책이나 블로그, 영상 등을 통해 조금씩 배워가면서 해야 했다. 이유식도 초기, 중기, 후기 이유식으로 나눠지며 초기엔 쌀이나 찹쌀 미음부터 시작해서 고기와 채소가 들어가 죽, 퓌레에서 후기엔 더 다양한 음식을 먹여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미음만 먹였는데 매번 분유 막 먹던 아기는 처음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고 자기도 어떻게 먹는 것인지 모르다 보니 밀어내기 일쑤였다. 그래도 먹는 연습을 시키는 겸 해서 처음엔 첫 수유를 하고 다음 수유가 있기 직전에 먹는 연습만 하고 나머지는 다시 분유를 먹어서 큰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이유식 중기가 되면서 먹는 것이 조금 더 익숙해지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게 되면서 아내와도 의견 대립이 생기기도 했다. 아내는 요즘 유행하는 이유식인 큐브식단으로 해서 쌀죽과 채소 등을 따로 해서 마치 밥과 반찬으로 먹는 것처럼 먹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매번 이유식을 준비하는 나에겐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다. 귀찮음 보다 준비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었고 아기는 잘 먹지 않다 보니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엔 죽으로 만들어 먹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내의 의견대로 하다가 나의 방식으로 하게 되었는데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아내 친구에게 들은 '죽이 아니라 따로 먹는 경우 아기가 먹기 싫어하는 채소를 골라내는 모습을 보이더라' 이야기였다. 편식은 누구나 죽기 직전까지 하게 되는 것이라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첫 음식부터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진 않았다. 결국 모든 재료를 넣고 만든 죽을 먹게 되면 편식할 일이 당분간은 없으니 이 방법이 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튼 이유식을 먹게 되면서 아기는 초기를 지나 중기부터 더 성장하는 것이 눈에 띄게 늘었으며 누워 있기만 했던 아기였는데 뒤집고 -처음 뒤집을 당시 아내와 나는 기뻐서 손뼉 치고 좋다고 했지만...- 배밀이로 기어 다니더니 이젠 소파나 가구 등을 잡고 서기까지 한다. 그 사이 대근육과 손기능도 더 좋아져 잡히는 족족 입속으로 넣고 있다. 배가 고프면 울기만 하던 아기가 이제는 기다릴 줄도 알고 우는 것도 어느 정도 줄었지만 먹는 순간 잠깐 쉼을 보이면 소리치기 시작하였고 먹고서는 배가 고픈 것인지 아쉬움이 남아서 그런 것인지 우는 모습도 보인다. 그만큼 감정선도 풍부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먹는 것이 달라지면 나오는 것도 달라졌다. 분유만 먹었을 때 아기 응가 냄새에서 '어떻게 이런 냄새가 날까?'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수없이 한다. 매번 고기와 채소 등을 먹으니 냄새도 어른의 응가 냄새와 크게 다를 바 없고 어떤 때는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돼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건강하다는 것...

'누워 있을 때가 행복하다.'

성인인 나도 누워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우리 집 아기도 누워 있을 때가 행복했다. 그렇다고 지금 불행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저 체력적으로 지칠 뿐.. 배밀이를 처음 하던 때 너무나 신기했다. 그 작았던 아기가 어느새 배밀이로 나에게 오고 여기저기 움직이는 것이.. 그러다 잡고 서는 순간 또 한 번 놀랬다. 이제 선다. 곧 걷는 것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아기가 잡고 서는 순간 집안이 난장으로 변해갔다. 위험한 것에 대한 인지가 없다 보니 이것저것 다 만지고 책도 다 꺼내고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도 무한 반복... 충전기 선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매번 찾아다니면서 잠깐 다른 일을 보고 있으면 입에 넣어 맛을 보곤 한다. 자기를 충전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누워 있을 때가 좋았다. 걸어 다니면 또 어떤 모습일까? 걱정이다' 그래도 아기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준다면 그만큼 감사한 것도 없으리라...

아무튼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나의 삶도 조금 더 바빠진 것이 맞다. 초기, 중기 이유식을 먹일 때는 분유를 먹을 때와 비슷했다면 요즘을 기준으로는 조금 달라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유식을 먹이고 잠깐 놀다가 분유를 먹고 낮잠을 1~2시간 자고 일어난다. 일어나면 점심으로 이유식을 먹고 놀다가 다시 오후 분유를 먹고 잠을 자거나 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우리가 밥을 먹을 즘 아기도 저녁 이유식을 먹고 놀다가 잠깐 산책을 갔다 씻고 자기 전 마지막 분유를 먹고 잔다.

노는 것도 다양해지고 아기의 움직임이나 에너지는 넘쳐 나는데 예전과 달리 요즘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아침이나 오후 산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빨리 가을이 와서 조금이나마 선선해지면 다시 산책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유식은 요리보다 어려운 과정

육아휴직을 하고 쉰다고 했지만 나는 쉬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하는 것도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일이라기보단 부모로서의 의무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보수가 따라야 하는데 -육아수당을 받긴 하니깐 일이라고 하면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족할 만큼의 금액이 아니다 보니 ...- 그래서 힘든 것은 아닐까?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그런 상황...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육아휴직 초기에는 심리적으로 괴리감이 컸으나 지금은 줄어들어다는 점이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의 삶이 조금씩 안정감이 생기고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달라졌다고 하기보단 적응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하지만 복직을 하고 싶은 나의 생각은 여전히 가득하다.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건대 일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사한 것은 아내가 정말 많이 도와주고 있어 부담감도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육아휴직 초기부터 많이 도와주었지만 요즘은 아내가 나보다 더 주양육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매번 같은 것을 먹일 수 없어 이유식을 만들고-만나고 나서도 나를 위한 요리보다 아기를 위한 요리 횟수가 더 많다.- 밤에 잘 때도 직접 재우고 있다. 육아휴직 초기엔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순간 불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불만을 가졌던 순간이 미안할 따름이다. 아내 역시 내년에 육아휵직을 할 텐데 그때 느낄 고충을 지금 내가 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나는 내년 2월까지 육아휴직을 해야 하니 어색하더라도 조금 더 지금의 모습처럼 지내야 한다. 일하지 않고 쉬며 아이를 키우는 삶을 말이다. 그저 현재를 충실하게 즐기며....

'carpe diem' 

술을 못 마시지만 아내와 함께하는 저녁은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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