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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Aug 21. 2024

나는 달린다.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맞지 않는 취미생활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나 역시 작년에 아기가 태어나고 올 해는 육아휴직을 하기로 해 계획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아내가 임신 한 뒤로 같이 잘 먹고 잘 노는 바람에 1년 새 나의 몸무게도 10kg가량 늘었다. 살이 쪄 피부가 푸석해지고 혈색이 안 좋아지는 등 건강 상의 문제도 생겼지만 더 큰 문제는 옷이 안 맞았다. 겨울옷이야 외투로 다 가려주니 크게 문제가 안 됐지만 살이 찐 상태로 있으면 여름이 큰 일이었다. 옷을 새롭게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살을 빼는 것이 최선이었다. 올해는 살을 빼겠다고 아내에게 공언을 하고 헬스장에 등록을 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랬다. 난 망각의 동물이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헬스장을 등록했고, PT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고 오래 다니지도 못해 '헬스장 기부천사'였던 나였다. 그런 내가 그 사실을 잊고 다시 헬스장에 등록을 한 것이다. 2주 정도는 주 3회씩 잘 나갔으나 이후부터는 주 1회 그러다 한 주 빼먹은 적도 있었다. 결국 나는 헬스장이 나와는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환불을 하자니 손해가 너무 크고 아내가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여 양도하는 방향으로 해서 헬스장을 정리했다. 그렇게 나의 올해 계획이자 취미로 만들겠다고 했던 헬스는 끝이 나버렸다.


여러 이유로 살은 꼭 빼야 했다. 헬스로는 안 되겠고 평소 산을 좋아해 등산을 해볼까도 했지만 혼자서는 안 된다는 아내의 말에 이 또한 도전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러닝'이었다. 예전에 러닝을 도전한 적이 있는데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 뛴 것도 아니고 험한 곳을 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동네 한 바퀴 하는데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쉽게 도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출근한 사이 아기와 단 둘이 있었기에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가져야 했고 헬스장은 실패로 끝났으니 러닝이 최선이었다. 

저녁 7시경 아기를 씻기고 설거지 및 정리를 하고 나면 8시~9시쯤이었다. 3월부터 시작했기에 날씨가 많이 추워 옷도 두툼하게 입고 밖으로 나갔다. 정말 오랜만에 러닝을 하기에 무리할 수 없었다. 처음엔 3분 걷기 후 1분 뛰기를 반복하며 30분 정도 하다가 돌아왔다. 이것이 내가 그렇게 힘들어했던 러닝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쉬웠다.-유튜브에 나와 있는 초보 러닝 방법을 참고하였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이렇게 많게는 주 3일, 어떤 때는 주 1일만 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자주 못 가도 매주 나가서 뛰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 3월 한 달을 적응기로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을 뛰고 나니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4월 이후에는 주 2회 이상은 무조건 나가려고 노력했고 뛰는 것도 느린 속도지만 30분간 쉬지 않고 계속 뛰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렇다고 해서 살이 눈에 드러날 정도로 빠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살이 빠지는 것은 러닝보다는 간헐적 단식이 더 효과적이었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주 러닝을 하러 나갔다. 운동이라는 것 이외에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 잠시지만 육아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고 무언가를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러닝에 조금씩 재미를 붙일 무렵 운동화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문 러닝화도 구입하고 날씨가 조금씩 더워져 옷도 시원한 것으로 구입도 했다. 뭔가를 투자했으니 힘들다고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었다. 5월이 넘어가면서 조금 더 속도를 올리고 거리도 늘려 나갔다. 혼자 뛰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러닝을 끝내고 나면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어 더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5월 말쯤 어깨를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엔 잠을 잘못 자서 담이 왔나 싶었으나 어깨 쪽 고통이 2주를 넘어갔다. 하는 수 없이 병원을 다녀야 했고 결국 7월 초가 되어서야 다시 뛸 수 있었다. 그 사이 러닝에 대한 나의 재미도 조금 줄었고 체력도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산 러닝화와 옷 때문에라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래서 7월 이후로 매주 2~3회씩 매번 달리고 있다.

살은?? 러닝이 직접적인 효과는 아니겠지만 다행히 아내가 임신하기 전 몸무게로 다시 돌아왔고 여름옷도 큰 무리 없이 잘 입고 있다.

속도와 거리는 그날 컨디션마다 다르지만 힘들어도 재미있다.

취미생활의 필요성

나의 러닝이 별거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지만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내가 꾸준히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다녔지만 지금은 할 수 없는 취미생활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도 없다. 환경이 바뀌면 환경에 맞는 무언가를 찾고 시도해야 살아갈 수 있다.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버려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를 버린다'는 것은 나의 감정과 육체에게 미안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울한 생각을 한다던지, 자괴감이나 주변 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것, 감당하지 못할 만큼 몸에 해를 끼치는 것 등... 이런 것들은 결국 나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조금 더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나에게 맞는 취미생활이 필요한 것 같다. 육아는 단 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우리 아기를 키워야 하고 그 사이 체력이 고갈되고 감정 소비 및 상처도 받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예상되더라도 매 번 좋은 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 첫 번째가 나에게 조금 더 신경 쓰고 아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분명 건강한 나를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내일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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