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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Aug 24. 2024

외출, 갈 수 있는 곳과 없는 곳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육아휴직을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낮에 아기랑 같이 외출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마철이나 폭염이 지속되는 8월에는 조금 어렵지만 날씨가 좋을 땐 집 근처가 아니라 조금 더 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아기와의 외출은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고 둘 사이에 적막감이 흐를 때 시도한다. -대부분 나의 결정이 지배적으로 작용한다.- 주로 가는 곳은 집을 기준으로 뉴타운 단지, 대학교 부근, 집 뒤 산, 마트 등이다. 더 많았으면 좋겠건만 구도심이 되어서 그런지 환경이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외출을 나갈 때도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유모차를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기띠를 착용하고 나가는 것이다. 날씨가 조금 덥거나 햇빛이 강할 때는 유모차를 태운다. 하지만 유모차의 단점은 아기가 찡얼 대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기띠는 날씨가 좋거나 기동성이 필요한 경우, 예를 들어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만 얼른 사거나 집 뒤 작은 산에 오를 때 등이다. 외출을 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아침의 풍경이나 오후의 모습 등을 볼 수 있어 날씨만 좋으면 무조건 나가는 편이다. 이때 아기도 세상의 풍경을 보며 즐거워하고 좋으면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렇게 외출을 갔다 오면 뭔가 리프레쉬(refresh)가 되기에 만족스러운 육아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외출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여러 변수들이 존재하여 가끔은 더 힘들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다. 물론 아기 때문에 그런 경우보다 주변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우선 아기띠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기동성이 있어 외출 시 선호하는 방식이다. 단점이라면 아기가 커 갈수록 내 몸도 힘들어져 오랫동안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은 가벼운 상태기에 자주 이용했었다. 분리수거하는 날 쓰레기를 버리고 한 바퀴 돌거나 뒷산을 올라갈 때 편리했다. 뒷산은 아기에게 계절의 변화나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겠다는 의도가 있었지만 그것보다 살을 빼겠다는 사심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운동을 하고 아기는 자연을 관찰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었다. 마트를 갈 때도 자주 이용했는데 마트나 백화점의 경우 유모차를 타면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 없는 아기띠가 더 유용했다. 하지만 아기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있기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아기가 컵을 만지려고 하거나 자고 있을 땐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유모차의 경우 아기를 따로 태우고 이동하기 때문에 나도 편하고 아기도 안정감만 생기면 편안하게 있기에 서로가 만족스러운 방법이었다. 유모차를 태울 때는 조금 오래 외출이 필요하거나 내가 힘들어서 아기띠를 할 수 없을 때 혹은 아기가 낮잠을 잘 것 같을 때이다. 이런 때는 장소도 조금씩 달라졌는데 평지로 되어 있는 뉴타운이나 시간이 좀 걸려도 쇼핑몰 등이 주요 목적지였다. 또 다른 장점은 커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다는 것. 아기와 산책할 때 커피를 한 잔 사서 찬찬히 돌아다니는 것은 나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유모차를 태우고 다니면서 난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는 곳이 구도심이다 보니 이면도로와 인도가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어 간혹 차도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으며 길이 울퉁불퉁하거나 경사가 심해 유모차를 끌기에 힘든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엔 진짜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데 딱히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저 내가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은 날씨가 좋은 봄에 아기에게 벚꽃을 보여주겠다며 도로로 집 뒷산을 올랐다. 대부분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기에 큰 어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 난감한 길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도가 있으나 오직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는 길... 지금 생각하면 벚꽃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나 싶기도 하다. 혹시라도 이곳을 떠나 이사를 가게 된다면 좋은 길이 많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문제점은 '노키즈존'이었다. 예전엔 못 가는 곳이 없었다. 노키즈존 같은 곳도 나에겐 해당사항이 없었기에 신경도 안 썼다. 하지만 아기가 있고나서부터는 노키즈존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당 업체의 고충이 많았기에 그런 규칙을 만들어서 운영하겠거니 생각해서 존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곳은 갈 수 없는 곳으로 정하고 대부분 아기와 가도 큰 문제가 안 되는 곳을 다녔다.

이런 길을 만나면 난감하다.
UD(Universal Design),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무장애길

한 번쯤은 들어 본 말일 것이다. 이 용어들의 공통점은 장애인도 장애로 인한 어려움 없이 지역사회 시설 나아가 문화 등도 이용할 수 있도록 장벽을 허물자는 것인데 'UD'같은 경우엔 학부시절부터 많이 봐왔던 개념이라 익숙했다. 나머지 두 용어도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자주 보고 교육했던 용어들이다. 현재 많은 지자체나 관공서 등에서 적용하고 있고 실제로 잘 운영되는 곳도 많다. 하지만 아직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는 것을 아기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사진처럼 저런 길도 평소 혼자 다닐 땐 크게 문제 되지 않고 문제의식도 못 느꼈을 것이다. 아기를 키우고 유모차를 끌어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저 기둥을 뽑아 버릴 수도 없고 그저 차가 오나 안 오나 잘 살핀 뒤 지혜롭게 지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현실이 조금은 아쉽다. 애초에 설계할 때 인도를 조금 더 넓게 해 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그러면 아기와 함께 유모차를 타고 외출을 하더라도 조금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우리 지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또 한 가지는 내가 경험하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느냥 말하고 행동하지 말자는 것... 교육한답시고 마치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아집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 부족한 어른인 나는 경험으로써 하나씩 배워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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