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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Sep 01. 2024

한 여름, 질병과의 사투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누워만 있던 아기는 어느 순간부터 뒤집기 시작하더니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곧 기기 시작했다. 기기라고 해봐야 배밀이지만 보는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눈 위에 세상은 모빌과 집 천장 그리고 하늘이 전부였을텐데 기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것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생긴 변화가 바로 '구강기'에 직접적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유럽의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발달단계를 구강기-남근기-항문기-잠복기-생식기로 보았다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중 구강기는 만 0세~1세 중반까지... 그 시기를 우리 아기는 지나고 있었다. 발달단계에 따르면 당연히 보이는 여러 특성들이 잘 크고 있구나를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가끔은 '아기가 누워 있을 때가 행복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만 가지 것들을 입속에 넣고 있었다. 처음엔 자기 입보다 큰 장난감들을 맛보기 시작하더니 곧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도 경험의 일부라고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넣으려고 해서 제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울고.. 그다음은 책이었다. 그림이라도 보여주고자 해서 아내가 책을 사놨는데 그것을 보기보다는 먹는데 바빴다. 이처럼 먹는 것들이 하나 둘 늘면서 걱정했던 것이 바로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족구
콕사키 바이러스 A16 또는 엔테로 바이러스 71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으로, 여름과 가을철에 흔히 발생하며 입 안의 물집과 궤양, 손과 발의 수포성 발진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아기가 집에서 놀면서 제일 걱정했던 질병 중 하나가 수족구였다.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을 매번 닦고 소독하곤 했지만 그래도 늘 불안했다. 방송에서도 아기들이 수족구나 백일해 등 전염병에 감염되는 일들이 늘어났다고 보도하고 있어 더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상하건대 의외의 곳에서 수족구에 감염인 된 듯했다. 7월 말 한참 휴가 시즌이던 때 어머니 생신으로 혼자 본가에 내려갈 일이 있어 아내와 아기는 장인어른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곳에서 집 근처에 있는 쇼핑몰을 다녀왔는데 그날따라 배변을 많이 봤다고 한다. 수족구 발병 후 잠복기를 역추적해보니 쇼핑몰일 가능성이 높았다. 추정하건대 공용으로 사용하는 유아휴게실에서 감염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처음 열이 올라왔을 때 아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아기랑 같이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내가 예상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무더운 여름 오후 둘이서 30분 정도밖에 있었는데 평소 땀이 많은 부녀인지라 집에 들어왔을 때 당연히 더워서 땀을 흘리는 줄 알았는데 아내가 이상하다며 체온을 재보더니 38도가 넘었다. 그러고 보니 낮에서 평소와 다르게 아기는 잠을 많이 자는 편이었다. 저녁쯤엔 발바닥에 붉은 점들 같은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해열제를 먹이고 체온을 지속적으로 체크를 했는데 다행히 저녁 늦게 정상체온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음날 소아과를 방문하니 역시나 수족구가 맞았다.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왔는데 아기 컨디션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밥도 생각보다 잘 먹었고 놀기도 잘 놀았다. 수포는 조금씩 더 올라오기 시작했다. 며칠 뒤 상태가 호전되기도 했고 휴가철을 맞아 장인어른 댁에 가기 위해 소아과를 다시 방문했는데 목 안쪽에도 아직 부어 있었지만 괜찮아졌다. 정말 다행인 게 수족구로 인해 보통의 아이들은 잘 못 먹고 자는 것도 힘들고 하는데 우리 아기는 가볍게 넘어갔다. 덕분에 우리도 덜 힘들게 지낼 수 있었다. 이때 느낀 것이 다 필요 없고 아기가 건강하게만 자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족구가 잘 마무리될 무렵 또 질병에 감염이 되고 말았다.

수족구로 발에 수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증상 : 발열(37.5°C 이상), 기침, 호흡곤란, 오한, 근육통, 두통, 인후통, 후각, 미각소실 등 
기타 : 피로, 식욕감소, 가래, 소화기증상(오심, 구토, 설사 등), 혼돈, 어지러움 콧물, 코막힘, 객혈, 흉통, 결막염, 피부증상 등이 동반될 수 있음

 장인어른댁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무렵 나는 작은형을 만나기 위해 지방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오기 하루 전 갑지가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빠가 코로나-19에 감염이 돼서 우리 집으로 가. 오빠도 오면 바로 집으로 와.' 

다음 날 첫 기차를 타고 장인어른댁으로 와서 차를 가지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도 이미 코로나-19에 감염이 돼 있었다. 아기는 아직 증상이 없이 괜찮았다. 그리고 이틀 뒤 오후부터 아기가 조금씩 열이 나기 시작했다. 지켜볼 것도 없이 바로 소아과로 갔다. 조금씩 힘든지 아기는 울기 시작했고 검사 차례가 되었을 때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양성'이 나왔다. 아직까지 열 이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앞으로 있을 증상을 고려해 약을 처방받고 집에 왔다. 그런데 예전과 다르게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 38도를 넘었고 해열제를 4시간마다 먹였는데 그때는 37도대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랐다. 그렇게 이틀간 계속해서 열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3일째 되던 날 해열제가 없어 집에 비상약으로 사놓은 해열제를 먹였는데 그때부터 다시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정말 감사한 것은 이번에도 열 이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인의 아기도 코로나-19에 감염이 되었는데 열은 물론 기침에 인후통까지 있어 고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기는 기침도 없었고 밥도 잘 먹었다. 며칠을 계속 열도 재고 다른 증상이 나타나는지 확인했는데 무사히 넘어갔다. 여전히 잘 먹고 잘 놀았다. 수족구가 낫았다고 하자마자 바로 코로나-19에 감염이 되니 정신이 없었다. 다 필요 없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시기였다.


아기는 언제든 아플 수 있고 또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아직 만 1세도 안 된 나이에 수족구와 코로나라니... 그것도 2주 동안 다 경험했으니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본인도 힘들었을 것이다. 감사한 것은 큰 증상 없이 가볍게 넘어갔다는 점이다. 아파서 밥도 못 먹고 시름시름 앓기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주는 우리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 열로 힘들어했지만 밥도 잘 먹고 평소와 같이 놀기도 잘 놀아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차츰 자라가면서 아플 일도 생기고 힘든 일도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잘 이겨내 주길 바라는 마음만 가득하고 무엇보다 이번에 느꼈던 그 마음... 다 필요 없고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란다.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니 걱정이 조금은 줄어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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