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우리 Sep 04. 2024

아기의 할머니와 할머니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 부모님 전 상서

우리 집 아기는 한 분의 할아버지와 두 분의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들은 나와 아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한평생 자식을 위해서 사셨던 그분들은 이제 자식들이 출가하고 손녀를 보는 낙()이 제일 크다고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두 분의 할머니는 너무 다른 삶을 사시고 계시지만 손녀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신 듯하다. 우리 아기도 나중에 커서 두 분의 할머니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담아 써 본다.


#1. 마산 할머니

가끔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내 소식에 대해서는 거의 물어보시지 않으시지만 매번 손녀딸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신다. 화상통화라도 할 때면 그땐 아기가 알아듣든 말든 얼굴을 보면서 계속 혼자서 무언가를 말하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드는 생각은 자식들 걱정은 그렇게 안 하시는 분이 애기는 이뻐하신다는 점이다. 자식들 걱정을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소 말씀이 많이 없으셔서 표현을 안 하시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어머니는 올해 70이 넘으셨고 몸도 성한 곳이 없으시다. 뇌출혈도 있었고 젊어서 무거운 것을 많이 드셔서 그런지 무릎 연골도 다 닳아서 인공관절 수술도 하셨다. 젊어서는 어떻게 사셨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엄청 고생을 하셨다는 점은 알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부터 고난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덕분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겠지만 분명 당신의 삶은 없으셨으니... 내가 8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때 자식들이 다섯이었다. 제일 큰 형이 중학교를 막 졸업한 시기였다. -자식들을 소유물로 여겼던 아버지는 고등학교 대신 노동의 현장으로 보냈다. 아마도 계속 살아 계셨으면 나 역시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렇게 홀로 자식들을 키우셨는데 형 둘은 외지로 나가 있었고 누나 2명과 나 이렇게 셋을 홀로 키우셨다. 배운 것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식당일을 겨우 찾아 하셨는데 어릴 때 어머니를 기다리던 것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다 식당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아파트 청소일을 시작하시더니 가정도우미 일도 찾아서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돈 안 되는 일을 많이 하셨다. 그래도 자식들을 굶기며 살지 않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셨다. 자식들은 말썽이라도 안 부리면 좋은데 나는 초등학생 때 여러 큰 사건들을 만들었고 어머니는 일도 하시고 수습도 하시느라 힘드셨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다 내가 20대가 되어 어느 날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때 어떤 분이 그랬다고 한다.

"아니 저 사람(어머니)이 애들 버려두고 집 나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작은 아버지라는 분이 대답하길 "애새끼들 다 고아원에 보내 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차마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낼 수가 없어 혼자서 그렇게 키웠다고 하셨다. 당장 살던 곳에서 이사 나와 다른 곳에 방을 구하고 일도 구하셨다고...

이 말을 듣는데 피가 거꾸로 쏟는 느낌이었다. 당시 계속 봐 왔던 그 아버지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더 이상 '어른'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친척이라는 분들과 모두 연을 끊고 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많이 배우시지는 못했고, 자식들을 풍족하게 키우지 못했고 늘 볼품없어 보였던 어머니가 대단해 보였고 고마웠다. 말썽을 피웠어도 잘 키워 냈으니 말이다. 자식들 생일과 같은 기념일을 챙기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고 왜 그렇게 말씀이 많이 없으신지도 이해가 됐다.

가끔 험한 말을 하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잔정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경상도 특유의 과묵함과 잔정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여러 이유로 힘든 삶을 사셨고 자식들을 어떻게 키웠는지도 알기에 노년이 되어서는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지금은 몸도 성한 곳이 없어 더욱이 나에게 신경을 안 썼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아기에게도 할머니로서의 좋은 모습은 안 보이셔도 크게 상관없다. 가끔 안부나 묻고 좋은 말만 해줘도 감사하다. 현생에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그저 당신의 건강만 잘 챙기시고 큰 걱정 없이 사시다가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랄 뿐이다.


#2. 용인 할머니

사위로서 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만 큰 장모님. 작은 형은 나에게 늘 말한다.

"어른들께 잘해라"

나도 그러고 싶고 노력은 하는데 어떤 마음이신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 아기를 너무 예뻐해주시고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님과 결혼하시고 두 딸을 너무나도 잘 키우셨다. 가사를 전담하시다 늦게 일을 시작하셨는데 현재 하고 계신 일이 어린이집 교사이시다. 60이 넘으셔서 몸이 조금씩 힘들다고 하시지만 현업에 계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기들에 대해선 우리보다 훨씬 전문가이시기도 하다. 각 개월 수나 나이 대에 어떤 행동들을 보이는지, 아기들이 잘 먹는 음식은 무엇이고 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셔서 도움을 받을 때가 많다. 가끔은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좋은 의미로 이야기해 주시는 것이기에 흘려들을 수가 없다. 자주 용인으로 내려가는데 갈 때마다 우리 아기를 직접 먹이시기도 하고 놀아 주시기도 하셔서 육아 현장에서 조금은 수고로움이 줄어들기도 한다.

몇 해째 어머니를 보고 있지만 나에게 어려운 점은 우리 어머님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 많으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시는 것도 그렇고 음식이나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신다. 물론 나이차이도 있고 살아오신 환경도 다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 너무 많으셔서 놀랄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표현하는 것인데 이 것은 아무래도 아내의 집 분위기가 그런 것 같다. 우리 집의 경우 지역색이 잘 드러날 만큼 좋은 일이 있어도 큰 반응이나 별 말없이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쁜 일은 또 그렇지가 않다. 하지만 아내 집은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 동생 모두 크게 반응하는 편이다. 좋은 일은 좋은 대로 안 좋은 일은 또 서로 걱정하면서 말이다. 이런 분위기가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여태껏 이렇게 살아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만약 그렇게 한 다면 아마도 연기가 50%는 될 것이다. 뭐가 됐든 이런 모습들이 보기 좋고 사람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더 드는 것은 사실이다. 꼭 우리 아기도 배웠으면 하는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첫째 딸이 아내인데 아버지, 어머니는 '왜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반대를 안 하셨을까?' 결혼은 현실이라는데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나이는 많은데... 우리 아기가 나중에 커서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어머니처럼 인정할 수 있을까?

아무튼 늘 감사하면서 늘 죄송하다. 더 잘하는 사위가 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 집 아기는 아직 마산 할머니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거리가 멀어서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고 장 시간 차를 타는 것도 무리여서 첫 돌 때 가기로 했다. 그때 마산 할머니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직은 자아라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표현이 어려우니 울거나 웃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반면 용인 할머니는 자주 보고 가끔은 키워도 주시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친분이 쌓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 아기가 조금 크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세상의 부모는 모두 위대하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다. 자주 보거나 못 보더라도, 표현이 많든 적든 항상 자식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 또, 부모들이 배우고 살아온 환경에 따라 모습들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그분들이 가지는 사랑은 모두 동일하다. 단지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 상처받으면 왜 상처받았는지 이야기를 해줘야 부모도 알 수 있다. 그래야 부모도 자식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고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우리 두 할머니(어머니)는 그런 점에서 위대하시고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 여름, 질병과의 사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