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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Aug 15. 2024

아빠의 육아휴직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12월이 되면 학교는 다음 해 운영을 위한 계획이 시작된다. 이맘때쯤 휴직을 희망하는 경우 사전에 말씀을 드리고 승인이 나면 다음 해 3월부터 신청한 기간만큼 휴직이 된다.

이것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규칙이다. 출산휴가를 쓰고 돌아와서 관리자분들께 미리 말씀을 드렸다. 12월이면 많이 바쁜지라 눈치를 보며 말씀을 드렸는데 바로 답을 주시지 않고 한 주 정도가 지나서야 휴직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휴직 신청서를 처음 작성했는데 내용엔 '아빠의 달'이라는 항목도 보였고 휴직 기간을 얼마나 할 것인지, 해당 자녀는 누구인지 등에 관한 내용들이 있었다.

간단한 서류였으나 작성하는 내내 '내가 먼저 쓰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도 엄마보다 아빠인 내가 먼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더 이득이 많기도 했다.

육아 휴직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한정하면 안 된다.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나 혼자 아이를 본다는 것보다 더 크게 와닿는 것이 바로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그동안 받았던 월급여의 1/3 토막난 금액으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아무튼 내가 받는 육아휴직 수당으로 필수 공과금과 보험료, 어머니 병원비 등 일부를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도 1년까지는 유급이지만 2년부터는 무급이라 2년 이상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아빠인 내가 먼저 육아 휴직을 쓰고 이어서 아내가 쓰면 휴직 신청서에 나와 있던 '아빠의 달' 혜택을 3개월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되었다.

'아빠의 달'은 부부가 이어서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되면 3개월 간 육아 휴직 수당을 더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돠는 것이 아내가 사용하게 되더라도 받을 수 있는 건데 굳이 '아빠의 달'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점이다. 아무튼 당장 올해 내가 혜택을 못 보더라도 아내가 모든 혜택을 누리니 그것으로 되었다.


12월부터 시작된 육아휴직 신청은 올해 2월이 되어서야 승인이나 3월부터 나는 1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는 부담되는 육아휴직 기간일 수 있지만 나는 솔직히 먼저 쓰게 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그러니까 처음 육아휴직을 사용하겠다고 마음먹고 논의할 때 내가 아내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오빠가 20살이 되고 나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알바를 하거나 임용시험을 준비하거나 해서 쉬어도 쉰 것이 아니라 이번에 먼저 육아휴직을 쓰고 싶어.'

아내는 '육아휴직이 쉬는 건 아닐 텐데.... 괜찮겠어?'라고 물었다.

나는 그냥 내가 하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일을 해도 좋다는 생각이 더 커서 문제없을 것으로  보았다.

또 다른 이유로는 출산 후 산후조리원과 집에서 독박 육아를 했던 아내에게 '육아우울증'이라도 생기면 안 되기에 먼저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우리는 1년은 아빠가 다음 1년은 엄마가 육아휴직을 쓰게 되었다.


처음에 육아휴직을 쓴다고 했을 때 '남자가 무슨 애를 키우냐?'라는 이야기와 '우리 때는 남자가 육아 휴직을 쓰는 것이 어려웠는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그러니 잘 쉬고 오라'고 응원해주는 분도 계셨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남자가 즉,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눈치 보지 않고 나의 의지에 의해 육아휴직을 쓴 첫 사례가 되었다. 학교라는 곳이 보수적인 곳이라고는 하지만 국가 정책을 모범생처럼 반영하기에 눈치를 보지 않는 점은 장점인 것 같다. 물론 학교보다 더 많이 지원해 주는 사기업들도 있겠으나 영세한 기업이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큰 도전이고 책임감이 필요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배려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저출산 국가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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