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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Aug 14. 2024

괜찮다. 다 괜찮다...(100일까지)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한 주간 장모님께서 함께 해 주셨고 이후엔 산후도우미를 신청하여 한동안 함께 지냈다. 이 기간 동안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안도감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혹시 잘못하더라도 경험 많으신 분들이 알려 주시고 도와주시니 큰 걱정이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출산휴가로 집에서 계속 아기와 있어야 했지만 나 같은 경우엔 직장에 있는 동안은 떨어져 있었기에 부담감이 아내보다는 덜 했던 것 같다. 이후 산후도우미 기간이 끝나고 그동안 쓰지 못했던 남편 출산휴가를 2주간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엔 며칠 뒤 방학이 시작되어 사실상 출산휴가부터는 둘이서 온전히 육아를 전담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의 게으름으로 이때 한 참 논문을 정리하느라 큰 도움이 못되어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아내와 아기가 함께하는 하루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으며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아침 6시~8시 사이 아이가 울면서 일어난다. 보통 이 때는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이다. 우는 것 외에 의사소통 방법이 없으니 최선을 다해 울 수밖에... 아침 분유 혹은 수유를 하고 나는 설거지 및 집안 정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잠을 제대로 못 자다 보니 정리를 하는 중에도 늘 신경이 날카로워 그냥 한 말에도 투덜대기 일쑤였다. 여하튼 그렇게 아침을 먹이고 깨어 있는 동안 신생아 스트레칭을 하거나 안아서 2시간가량을 함께 있는다. 그러다 보면 아기는 다시 잠이 들어야 하는데... 문제의 '등센서'가 발동하는 것이다. 아기가 아내나 나의 품 속에 있다가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 울기 시작하는데 결국 품속에서 재우다가 우리 침대에 같이 누워 아기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있어야 했다. 원래는 아이가 잠들면 부부는 그동안 밀린 집안일이나 쉬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야 체력적으로 부담이 덜 하고 아기가 깨어있는 순간 더 잘 볼 수 있다. 그러나 등센서는 부모가 계속 피곤한 상태로 지내는 악순환을 만들어 냈다. 결국 아내와 내가 교대로 아기를 재우고 쉬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잠을 잘 때 깊이 잠들면 2시간 아니면 1시간 정도 잤다. 그러면 또 일어나서 잠깐 놀다가 분유를 먹였다. 분유를 먹고 또 쉬기를 반복한다 잠이 들면 같이 잠들고 깨어나면 이전에 했던 행동들을 반복한다. 이렇게 저녁 6시~7시 정도 되면 아기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뒤 분유를 먹이고 재운다. 보통 잠이 드는 시간은 9시~10시 사이였던 것 같다.

문제는 낮이 아니라 새벽이었다. 아기가 잠이 들고 새벽 1시가 넘어가면 배가 고파서 울기 시작한다. 평소 같으면 우리는 계속 잠을 자는 시간인데 아기가 우니깐 둘 다 일어나 분유를 타고 먹인 후 다시 재웠다. 그리고 새벽 4시경 다시 아기가 울기 시작한다. 우리는 새벽 1시 때 그랬던 것처럼 일어나 분유를 타고 먹인 뒤 다시 재웠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평소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런 생활이 100일 동안 반복되는 것이다. 100일까지는 외출도 하지 못해 아내, 아기와 나는 늘 같은 시간을 보냈다. 매일 같은 생활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이 시기엔 다양한 일들도 일어나기 마련이며 잠깐이지만 교대로 외출을 하기도 했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엔 집 앞 마트에 장 보러 갈 때가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아내와 나의 반복되는 삶의 루틴이 문제가 아니라 아기에게 생기는 변수들... 그것이 정말 힘겨운 것들이었다.


50일쯤 될 때까지 아기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먹성도 좋아서 늘 분유나 모유를 먹고 모자라 울기도 했다. 나름 집에서 50일 기념촬영도 하고 재미나게 지내고 있을 때 아기가 소파에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아기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한참을 달랜 뒤 괜찮아졌는데 아내는 속상한지 눈물을 보였다. 다음 날 안 되겠다며 집 앞 소아과 병원을 가야겠다고 했다.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라 큰 병원만 접수가 가능했는데 1월 날씨가 어지간히 추운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예약을 하겠다며 새벽같이 일어나 떠났다.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할 무렵 아내의 지령에 맞춰 아기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일요일이라 아픈 아이가 정말 많았는데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지금이 저출산 시대라고 하는데 예전에 한 집에 3명 이상 있을 때 병원은 진짜 정신없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예약을 했었고 우리는 초진이라 그나마 병원의 배려로 2시간 정도 대기 후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큰 이상은 없다는 소견을 듣고서야 집으로 왔는데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혼자서 놀다가 머리도 부딪치고, 넘어지고, 울고 하는데 예전만큼 놀라진 않는 것 같다.-

아기의 손과 발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1월 중순이 되었을 땐 아내의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근 들어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다양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결국 아기와 함께 장례식장에 갈 수 없어서 우선 3일 동안 아이에게 필요한 짐들을 싸고 장례식장 근처에 있는 이모님 댁으로 갔다. 그리고 아내가 아기를 돌보기로 하고 나는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을 돕기로 했다. 그래도 아내가 할아버지 입관식은 봐야 할 것 같아서 교대해주고 내가 아기와 함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동일한 조건.. 변한 것이라고는 우리 집에서 이모님 댁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아기는 분유를 먹고 나서도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장례식장으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혼자서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했으나 아기의 울음은 쉽게 그치질 않았다. 평소 달랠 때 불러주던 노래도 스쿼트도 안 통했다. 배가 고플 일도 없는데... 그렇지만 결국 다시 분유를 조금 더 타서 먹이고 난 뒤 달래기를 1시간 이상 하고 나서야 울음이 멈췄다. 그리곤 아기는 곤히 잠들었다. 아마 내가 달래서가 아니라 지쳐서 잠이 든 게 아닐까...

이렇게 1월에 큰 외출이 두차례 있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평소와 같은 시간들을 보낸 뒤 개학이 찾아와 내가 먼저 출근을 했고 아내도 출산휴가가 끝나 출근을 해야 했다. 약 3일 정도 우리의 근무일이 겹쳤는데 이 때도 하는 수없이 아기를 장모님 댁에 맡겨놓기로 했다. 그리곤 둘 다 출근을 하고 그날 저녁 만나서 외식을 하는데 아기 없이 둘이 밥 먹은 지 90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특이했던 것은 밥을 먹는 내내 나와 아내 모두 아기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잘 지내고 있을까?, 별일 없겠지?' 큰일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먼저였다. 결국 아내는 내일 고생할 각오하고 다시 장모님 댁으로 내려갔고 나는 집에서 정리 및 청소를 하고 출근을 했다.

그렇게 백일이 되었고 아내 가족들과 백일 기념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돌잔치만 생각했지 백일상은 큰 생각이 없었다. 파워J 성향의 아내는 그게 아니었는지 꼼꼼하게 준비해해 줬고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100일이 지나도 우리 아기는 동일한 생활 패턴을 보였다. 그러다 120일쯤 되니 밤 9시 이후부터 다음날 새벽 6시 전후로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사이 분유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살도 통통하게 올라 '미쉐린'같이 되어 있었지만 괜찮았다.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크게 아픈 것도 없었고 건강하게 잘 자랐으니 말이다. 100일이 지나기까지 생활을 돌이켜보면 살아보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책으로만 봤던 아기의 수면패턴, 함께 식사할 수 없는 환경,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부모의 삶, 나의 삶이 중심이 아닌 아기의 삶이 중심이 되는 시간들, 소아과 병원에서의 모습들, 예상을 벗어나는 아기의 행동 등... 이런 일들이 아기에겐 당연한 것들이겠지만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부모들에겐 특별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어렵다고 할 수도 없고 쉽다고 할 수도 없다. 단지 하루의 삶이 그저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뿐이다. 그 시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잘 해내가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도 아기는 우리의 예상밖을 벗어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그렇지만 그런 예상밖 모습에서 부모인 아내나 나 모두 성장하고 진짜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조금씩 갖춰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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