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조금 언급하긴 했지만 출산일 당일을 회상하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수술실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곧 아빠를 부르는데 그 순간이 정말 떨리고 긴장되었던 것 같다.
아이를 처음 보는 순간 눈물이 나고 가슴은 먹먹했다. '아 이 아이가 우리 아이구나!'라는 생각. '와 근데 아이가 크다.'라는 생각 등등...
몸무게는 3.6kg 그램이었고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모두 확인을 한 후 사진을 찍었다.간호사 선생님께서 4시간 정도 뒤에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말씀과 함께 사라지셨다.
회복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자 또 눈물이 나고 둘이서 손을 잡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내는 부분 마취를 했는데 호흡이 곤란하여 전신마취로 바꾸는 바람에 아이도 못 보고 바로 잠들어 버렸다고 눈물을 보였다.
회복실에서도 금방 나올 것만 같았는데 무려 4시간 넘게 있었고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가 되어서 병실로 돌아왔다.병실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걷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병원에 3일간 더 있다가 산후 조리원으로 가는데 중간중간 아이를 보러 다녀왔고 아내는 젖을 물린다며 내려갔다가 모유가 안 나와서 다시 올라오기도 하였다.3일간 병원 생활은 대략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 3일 차에 병원에서 퇴원을 하였고 퇴원하자마자 인근에 있는 산후조리원으로 가야 했다. 그동안은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를 봐줬기 때문에 그렇게 긴장감은 없었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으로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 도착 전까지는 온전히 우리가 봐야 했는데 너무나 긴장되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산후조리원...
코로나-19전이라면 쓸 내용이 정말 많겠지만 팬데믹 이후로는 배우자 1인만 1주일에 한 번 총 2회 입소 및 퇴소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변경되었다. 남편 출산휴가를 써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아내와 아이가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 순간부터 출산휴가를 사용하기로 했다.산후조리원에 들어가는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우선 문이 열리면 아이를 받으러 오시는 직원분이 계셨고 곧 상담실에서 일정 및 비용 정산을 하고 아내와 아이를 두고 나오면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집으로 돌아온 뒤 첫 주말이 되어서야아내와 아이가 있는 산후 조리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 수술 후유증으로 힘겨워하는 아내는 그래도 얼굴이 밝아 보였다. 아이도 하루에 3번 정도 부모에게 인계되어 볼 수 있었다. 자고 있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울거나 싸거나 먹거나 하는 정도였다. 가끔 기분이 좋아 함께 스트레칭하는 시간도 있었다. 원룸보다 좁은 한 칸의 방에서 몸조리를 하면 애기를 보는 아내가 안 쓰러웠고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나보다 더 육아 전문가가 된 아내의 지령을 잘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할 일은 다한 듯했다. 산후조리원 내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산후조리원 부원장님께서 아이 목욕시키는 법을 보여 주셨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영상으로 찍고 배우고 한 경험들이 있다. 첫 주말을 보내고 나는 다시 출근을 위해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에서 생활을 했다.혹자는 산후조리원에 아내가 있는 이 시가기 남편이 쉴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이야기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 오랜만이라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안 았다.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고 같이 있어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계속 들어 편하진 안 았던 것이다.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기간 동안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며 마지막 주를 보냈고 산후조리원을 나온 아침부터 3인 가족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엔 장모님께서 함께 있어주셔서 큰 의지가 되었다. 아이를 키워 본 경험, 관련 업에 종사하고 계신 점 등이 우리에겐 지원군이나 다름없었다. 집에 도착한 뒤 아내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한지 능숙하게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주말에만 같이 보냈고 함께 있었던 시간도 아주 짧았기에 모든 것이 어색했고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아이와 함께한 하루는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 6번 정도 모유와 분유를 먹었는데 너무 잘 먹다 보니 부족한지 울기도 많이 울었다. 진짜 힘든 것은 새벽 수유였는데 처음 경험하는 거라 비몽사몽으로 지냈다. 보통 출근할 때 맑은 정신으로 다니는데 이 시기엔 늘 피곤이 따라다녔다. 눈을 뜨고 있을 땐 안아서 토닥토닥해주거나 집 여기저기를 보여줬다. 시력이 발달되지 않아 보이는 것도 없겠지만 우리는 익숙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안고 있는 내내 너무 작아서 혹시라도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하루 2~3차례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분유랑 모유만 먹는데 '응가'의 양과 냄새는 신기했다. 저녁이 되면 아이를 씻기는데 큰 일이라도 날 것 같아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우리의 하루는 매일 같이 반복되었으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매일 '+' 되었고 낯섬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육아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힘든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부모로서의 책임이기도 했다.